
여러분은 이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시나요?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
색감 때문인지 원숭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초점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눈
납작하게 눌려버린 코
누군가 급하게 손으로 문지른 것처럼 흐물흐물한 입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이 그림.
사실 이 그림 속 형체는 예수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처음에 그려진 모습과도 다르죠.

처음 그려진 그림의 모습을 보면, 예수의 형상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이 그림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연이 많아보이는 예수의 벽화,
마르티네스의 <에케 호모>입니다.

이 벽화는 스페인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 '보르하'에 한 성당안에 있습니다.
20세기 초 엘리아스 마르티네즈라는 화가가 이 성당에 이 그림을 헌납했죠.
사실 처음 그려졌던 당시에는 별달리 주목을 받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화려한 성당의 모습에 비해 이 벽화는 작고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작품이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벽화는 약 100년의 세월 동안 관리가 잘 안돼, 손상을 입기 시작했는데요.
군데군데 뜯겨져나갔고, 습기와 공기 오염으로 색도 변화해갔죠.
결국 2012년, 한 사람이 팔을 걷고 나섭니다.

마을의 아마추어 화가였던 81세의 할머니, 세실리아 히메네스는
성당에 허가를 받고 복원작업을 진행하는데요.
신앙심이 깊었던 히메네스는 평생 열심히 다니던 성당의 벽화가 손상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죠.
그는 사람들이 예수의 얼굴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두 팔을 걷어붙여 하루만에 회화를 복원하였습니다.
하지만 복원작업이 완료된 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예수의 숭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어린이가 장난쳐놓은 것만 같은 원숭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죠.
충격적인 그림이 그려졌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스페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언론은 이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하였죠.
그림을 그린 히메네스에 대한 비난과 조롱도 이어졌습니다.

뜻과는 반대로 그림이 이렇게 되자, 히메네스는 큰 죄책감에 빠져 고통스러워했죠.
하지만 진짜 사건은 지금부터였습니다.
망가진 벽화의 사진이 여러 해외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떠돌게 되면서
그 ‘우스꽝스러움’ 때문에 엄청난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벽화는 '몽키 그리스도'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게 되었는데요.
에케 호모를 다른 얼굴에 합성하는 밈이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FrescoJesus’라는 트윗 계정도 만들어져 작품에 대한 소위 ‘짤’들도 퍼저나갔죠.
그리 유명하지 않던 작품이었지만, 사건으로 인해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림의 원작자인 마르티네스의 후손들은 격분했습니다.

"에케 호모"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라틴어 어구로, “이 사람을 보라”는 뜻입니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의 십자가 책형을 재판할 당시
초라한 예수의 행색을 두고 비아냥거리기 위해 군중에게 외쳤던 말이라고 알려져 있죠.
형을 앞둔 예수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채찍질을 당하는 중에도 영예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그리스도가 고통과 수난 속에서 최후의 길을 걷는 모습을 다룬 이 장면은
기독교 미술에서 널리 묘사되었습니다.
피 흘리는 머리, 채찍 자국으로 덮인 상체와 결박당한 손목의 특징들을 통해
예수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티치아노, 렘브란트, 만테냐 등
다양한 화가들에게 사랑받았죠.

마르티네즈의 원래 <에케 호모>는 이 장면의 숭고함을 극대화한 그림이었습니다.
굴곡진 예수의 이목구비와 고통을 상징하는 가시 면류관을 섬세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예수의 눈빛에서는 자신에게 욕을 퍼붓고 있는 로마 시민들까지도 구원되기를 바라는 연민의 정이 느껴지죠.

하지만 히메네스가 덧칠한 벽화에선 그러한 예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관객은 그림 속 인물의 눈에서 어떠한 감정선도 느낄 수가 없고, 텅 빈 검은색 눈동자만을 마주하게 되죠.
<에케 호모>가 전달하고자 하는 숭고함을 상실해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림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 손녀는 결국
그를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고 나섰습니다.
벽화는 당시 보르하 시의 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되어 있었는데요.
소송이 제기되면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성당과 시 당국에 대한 비난 또한 덩달아 커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던 중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조용한 시골마을에 히메네스가 그린 우스꽝스러운 벽화를 보기 위해
하루에 2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르하 시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
시 당국은 1유로의 입장료를 받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이 원숭이 벽화에는 보호 아크릴까지 씌우게 되었죠.
사건이 발생한 그해 2012년에는 무려 7만여명의 관광객들이 보르하 시를 찾았고,
입장료 수익만 1억원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

복원은 실패했지만 마치 기적같은 일이 보르하 시에 벌어지게 된 것이죠.
마을사람들은 포도주와 머그컵, 열쇠고리, 자석 등에 히메네스가 그린 예수의 얼굴을 붙여 관광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항공사 라이언 에어는 보르하 시로 가는 특별항공편까지 개설하였는데요.
작은 도시였던 곳이 관광도시로 특화되며, 마을은 더욱 더 붐비었습니다.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보르하 시 주변의 상권마저 활성화되었죠.
그 결과 히메네스는 그림을 망친 범죄자에서 단숨에 마을의 영웅이 되었죠.

수익금은 벽화 복원과 지역 노인들을 위한 요양 시설에 사용되기에 이르렀는데요.
문제는 벽화 복원을 반대하는 청원 사이트까지 생겨나
무려 2만명의 사람들이 서명을 했다는 점 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당국은 한가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손녀 마르티네즈의 소송을 막기 위해서는 벽화를 원작대로 복원해야 하지만,
복원하게 되면 찾아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게 되죠.
그러면 활성화된 시의 수익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당국과 성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보르하 시와 화가 유족 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죠.
사실 이 복원이 실패한 이유는 단순히 할머니의 그림 실력이 나빠서는 아닙니다.

작품의 원작은 프레스코화로, 석고를 사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요.
벽 위에 바른 석고가 말라 굳어지기 전에 빠르게 그림을 그리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이 즐겨쓰던 방식이었는데요.
천재예술가들도 자주 실패작을 낳을 정도로 어려운 기법이 필요했죠.

하지만 그림을 복원한 히메네스는
일반 그림과 전혀 다른 프레스코화의 성질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벽 위에 덧칠만 하는 오버페인팅으로는 프레스코화를 제대로 복원할 수 없었던 것이죠.
히메네스는 평소 자신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던 방식대로 작업을 진행했고,
벽화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복원을 한 당사자 히메네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각에서는 공공의 재산을 훼손한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문화당국에서는 히메네스가 벽화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파괴할 의도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음을 인정해 처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후 전 세계 방송들은 앞 다투어 히메네스를 인터뷰했고, 그는 간혹 눈물을 비치기도 했지만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당당한 모습을 보였죠.

성당 입장료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하기도 하였는데요.
그는 에케 호모의 저작권을 인정받아 그림에서 나오는 이익의 49퍼센트를 분배받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히메네스의 뻔뻔함을 비난했지만, 그림의 수익금을 자선사업에 사용하기로 발표하면서 비난은 사그라들었습니다.
현재까지도 히메네스의 수익금은 그의 아들이 앓고 있는 근위축증을 치료하는 단체에 전달되고 있죠.

이후에도 보르하 시를 배경으로 한 풍경화를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낙찰시키는 등
히메네스는 화가로서의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히메네스가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재창조했다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복원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전혀 달리 만들어진 작품의 창작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 등
여러 질문을 파생하며 새로운 예술로 인정해야한다는 것이죠.

스페인의 작은 시골 성당 한 켠에는
아직도 논란이 멈추지 않은 채 이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불분명한 형체만큼 모호한 질문들은 남긴 에케 호모의 작품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것이 느껴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