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으로 떠나는 이야기 있는 도가 여행 [여행+]

1996년 7월 초판이 나온 ‘문경의 명산’은 문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옛 선비들은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산세 험한 새재를 넘었다. 요즘에는 모노레일을 타고 단산에 올라 풍경을 감상한다. 그리 오래지 않은 탄광의 흔적을 모은 박물관과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에코렐라도 생겼다.





문경시는 호산춘(湖山春)을 산채비빔밥, 약돌돼지구이, 송어회, 민물매운탕과 함께 5미(味)로 꼽는다. 호산춘은 조선초 황희(黃喜, 1363~1452)의 증손 정(珽)이 이곳에 집성촌을 이루면서 장수(長水) 황씨 종택에서 이어져 내려온 가양주(家釀酒)다. 황씨 집안에서 빚어 제사 때나 손님에 내주던 게 대중화한 것.
알코올 도수 18도로 담황색이다. 달달하면서 솔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술을 담는 잔(전통주 잔, 와인 잔), 술의 온도(10도, 15도, 20도)에 따라 맛이 천지차이다. 술은 음식이라 종부들에게 술 빚는 법이 전수됐지만 지금은 황희 정승의 23번째 손자인 황수상(42)씨가 문경호산춘의 대표다.

호산춘을 황씨가 도맡은 건 세월 탓이다. 호산춘으로 1991년 무형문화재가 된 황씨의 할머니 권숙자씨는 2012년 돌아가셨다. 20년째 암투병 중인 어머니 대신 호산춘을 빚던 아버지 황규욱씨마저 2017년 세상을 떠났다.
문경호산춘의 이름이 전국으로 퍼진 계기도 남다르다. 호산춘 사업자는 1990년 7월에 나왔다. 그로부터 1년 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에서 전화해 “만찬주로 쓸 것이니 호산춘을 올려보내달라”고 하자, 황씨 아버지는 “술을 파는 집이 아니니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황씨는 “당시 가정집에서 술 담그는 게 불법이었다. 밀주였다”면서 “며칠 후 청와대 사람들이 검정색 밴을 타고 와서 항아리째 밀봉해 가져갔다”고 전했다. 한·미 대통령의 만찬주라는 건 그때 알았다.

호산춘은 2∼3개월 발효를 거쳐 한 번에 2000병쯤 나온다. 이마저도 황씨 혼자 집안 대소사를 다 챙기다보니 술 담그는 날이 자꾸 미뤄지고 있다. 호산춘 인기는 확실하다. 인터뷰하는 도중 찾아오는 손님이 여럿이다. 대개 “술 남았느냐”고 묻는다. 생산량이 많지 않다는 걸 아는 단골들이다. 이젠 다른 업체를 통해 온라인 판매도 하지만 더 비싸다. 호산춘 공장 문턱이 닳는 이유다. 얼마 전부터 체험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산과 술을 사랑한 공무원, 그리고 가나다라브루어리
문경의 대표 수제맥주 업체인 가나다라브루어리로 향했다. 특이하게 한옥 형태다. 윤영기 과장은 “수제 맥주에 빠진 젊은층 외에도 동네 어른들도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는 맥주를 만들자는 방향성이 있다”며 “생산량이 늘면 시설을 추가하고 현재 건물은 여행스팟 형태로 꾸밀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설명자료에는 “문경청년 김억종 양조사와 창업을 꿈꾸던 서울청년 배주광 대표가 만나 2016년 12월 시작됐다”고 소개됐다.

아버지 권유로 농고와 농대를 나온 억종씨 형제는 한때 가나다라에서 함께 일했다. 억종씨는 “중3 때 인문계 고교 입시를 준비했는데 산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나중에 농업하는 게 더 행복할 것’이라면서 농고 진학을 사실상 강제했다”며 웃었다. 오래전 아버지와 함께 만든 점촌IPA는 가나다라에서 오리지널이라는 이름을 덧달았다. 점촌은 문경의 옛 이름이다. 가나다라의 상징인 일월오봉도는 산세 좋은 문경을 표현했지만, 억종씨 아버지의 손길이 밴 책이 먼저 떠오른다.

수제맥주는 전통주보다 힘들다. 주조가 전통방식이거나 재료가 모두 국산이어야 전통주로서 인터넷 판매가 가능한데, 수제 맥주에 쓰이는 맥아는 국산으로 100% 대체하기 어려워 대면거래만 가능한 탓이다. 거래처가 전국 900여곳에 달하는 배경이다. 지난달에는 울릉도에 새로 문을 연 레스토랑 ‘고맨디즈’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가나다라에서 시음은 무료다. 맥주 제조공정을 보고 싶으면 10명 이상 예약하면 된다.

탄광이 한창이던 1960년대 전통시장을 현대화한 가은 아자개장터에 두술도가가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원래 도가를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5년쯤 전부터 순순, 장남, 경실, 형규, 영자, 짱구, 영화, 떡배, 배목, 을구, 호기 등 희양산마을영농조합법인의 농부들은 자연스레 ‘술 테스터’가 됐다. 술이 나오면 바로 나누며 장단점을 확인했다. 두술도가의 막걸리들이 달지 않은 것은 시음을 한 이들과의 논의 끝에 결정된 듯싶다.

지난달에는 장터에 희양상회가 문을 열었다. 희양산 젊은 농부들이 정성스레 지어낸 곡물을 소량 판매하고, 문경 술도 판다. 두술도가에서는 희양산의 쌀로 빚은 막걸리 9도와 15도짜리, 오미자막걸리 오미자씨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조만간 희양상회와 함께 더 깊이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내놓을지도 모르겠다.




문경=글·사진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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