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가불 좀" 알바생 요청으로 고민하다 대기업 사표내고 벌인 일
임금채권 기반 급여 선지급 서비스 '페이워치'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계약직 혹은 임시직이 인력시장의 중심이 되는 '긱 경제'(gig economy) 시대다. ‘평생 직장’이란 말이 사라져갈 만큼 이직도 잦다. 노동시장은 빨리 변하고 있는데 변화가 더딘 영역이 있다. ‘금융 시장’이다. 긱 워커들이 경제생활의 주축이 되고 있는데, 기존 금융권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금융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대출받는 일조차 쉽지 않다.
핀테크 스타트업 페이워치코리아는 긱 워커, 아르바이트생 등 시급제 근로자를 위한 금융 플랫폼 '페이워치'를 서비스한다. 급전이 필요한 근로자에게 곧 받을 임금을 가불(假拂) 해준다. 월 50만원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선지급 받을 수 있다. 페이워치코리아의 김휘준(53)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관광가이드로 학비 벌었던 미국 유학생
1991년 미국 오리건주 루이스 앤 클락 칼리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유학 시절 제일 아쉬웠던 게 사회 초년생을 위한 금융 상품의 빈자리였다.
- 유학 생활이 어땠길래요.
“부모님은 법학을 전공하길 원했지만 저는 다른 길을 택했어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갈등하면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됐어요. 타지에서 용돈을 스스로 벌어야하는 상황에 처한거죠. 결국 현지 관광 가이드로 돈을 벌었어요.
해외에서 혼자 의식주를 해결하다 보니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 자주 발생했어요. 월급날이 오기 전 카드값, 월세 등에 쫓기는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죠. 월급날까지 재정난에 시달리는 ‘월급고개’를 너무 어린 나이에 경험한 것입니다.”
- 졸업 후 어떤 일을 했나요.
“1995년 귀국해서 학창 시절 고생한 게 무색할 정도로 바쁘고 즐겁게 일했어요. 음료 브랜드 매니저로 입사해 2년 정도 일하면서, 국산 콜라 브랜드를 론칭했고요. 1999년 유니레버의 마케팅 담당으로 이직해 도브 샴푸를 개발했죠. 한국 지사에서 개발한 제품인데 반응이 좋아 해외에서도 출시됐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금융계에 몸담았어요. 2001년 씨티은행 카드 마케팅 담당을 시작으로 2005년 HSBC은행의 전무로 이직했고, 2009년부터 2017년까지는 마스터카드 선불 부문 지사장으로 근무했어요. 유니레버 재직 당시 고려대 경영학 석사 과정(MBA)도 졸업했습니다. 16년 동안 카드 등의 금융상품 기획 뿐만 아니라 제작, 마케팅 등 전 과정을 관활하며 업력을 쌓았습니다.”
◇어렵사리 가불 요청한 알바생 고충에서 착안
20년 가까이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핀테크 분야 창업에 관심이 갔다. 모바일 뱅킹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것을 보고 이제 실물 수표, 카드는 없어지고 이머니(E-money)의 시대가 도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안정적인 생활을 스스로 박찼네요.
“개인적인 계기가 있어요. 퇴직 전 사이드 잡으로 잠시 와인바를 운영했었는데, 그 당시 알바생 친구들이 월급날 전에 조심스럽게 찾아와 가불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하더군요. 유학 시절이 떠오르며 돈 걱정했을 직원의 마음에 공감이 됐어요. 그때부터 이미 일한 만큼의 급여를 미리 제공할 수 있는 핀테크 사업을 해볼까 구상하고 있었어요.”
- 아이디어 구체화 계기는요.
“2018년 퇴직 후 6개월 간 사업 실현 방법을 찾아다녔어요. 마침 지인이 페이워치코리아라는 회사를 창업해 ‘알바워치’라는 근무시간 입력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이 시스템에 월급 가불 서비스를 접목하면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2019년 공동대표로 페이워치코리아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국내 최초로 급여 선지급 시스템 개발
2020년 10월 베타 버전을 공개했다. 금융과 앱 개발을 함께 아는 인력이 없어 앱 사용성이 너무 떨어졌다. 시장 반응도 미미했다. 1년의 준비 기간을 날린 셈이 돼 허탈했다. 결국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정공법’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앱 디자인 전문 업체를 섭외해 앱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2021년 6월 급여 선지급 서비스 페이워치의 정식 앱을 출시했다. 근로자가 일한 만큼의 월급을 미리 인출할 수 있는 서비스다.
- ‘선지급 서비스’에 주목한 이유는요.
“작년 사람인이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직장인의 60.7%가 다음 월급이 들어오기 전 모든 급여를 소진한다고 해요. 그런데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일수록 신용점수가 낮아서 대출 문턱이 높아요. 결국 고금리 대부업자의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고금리 상품이 성행하면 가계부채가 늘어나 국가 경제에도 타격을 줘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 어떻게 선지급을 받나요.
“페이워치 서비스를 도입한 기업에 전용 QR코드를 만들어줍니다. 근로자가 출퇴근 시 QR코드를 스캔하면 일한 시간만큼의 급여가 근로자의 페이워치 앱 속의 디지털 지갑에 쌓입니다. 이후 급전이 필요할 때 디지털 지갑에 쌓인 급여를 인출하면 됩니다. 협력사인 하나은행을 통해 급여가 근로자의 통장으로 들어와요. 1일 한도는 10만원이고, 월 최대 50만원까지 인출할 수 있어요. 인출 횟수 제한은 없고, 한번 인출할 때마다 500원의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 담보나 보증은 필요없나요.
“이미 일한 부분의 급여를 가불하는 서비스입니다. ‘임금채권’이 설정된 셈입니다. 노동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죠. 근로자들이 고금리 대출 상품을 사용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 만큼, 올바른 금융 습관을 형성하는 데 방점을 맞췄죠. 거기에 제1금융권을 통한 서비스라서, 자금 흐름에 문제는 생기지 않고 있습니다.”
- 기업은 어떤 이점을 누릴 수 있나요.
“일종의 ‘기업복지’로 작용합니다. 이자 없이 월급을 가불해줄 수 있으니까요. 직장 내 QR코드만 있으면 되니 운영하는데 번거롭지도 않고요. 간단하게 근로자의 애사심을 고취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 진출 준비중, 사회 안전망 되는 게 목표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해 SK 사회적가치연구원의 사회성과 인센티브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최근엔 이지웰 복지몰과 제휴해서, 페이워치를 쓰는 기업은 이지웰 복지몰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 페이워치 출시 후 성과는요.
“현재 앱 가입자가 3000명을 돌파했습니다. 주요 이용자는 기업의 아르바이트생이나 계약직 근로자입니다. 월 평균 6회, 40만원 정도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고요. 페이워치를 도입한 기업이 곧 20곳을 넘어요. 처음엔 이 회사, 저 회사 직접 다니면서 서비스를 설명하고 다녔는데, 요즘은 업체들에서 먼저 도입 문의를 해와요.
가장 큰 성과는 급전이 절실히 필요했던 이용자의 후기입니다. 자녀 병원비처럼, 계획에 없던 급한 지출이 필요할 때 저희 서비스를 요긴하게 사용했다는 싱글 맘의 후기가 기억에 남아요. 제가 창업이라는 가시밭길을 택한 이유를 상기시켜준 순간이었죠.”
- 앞으로 계획은요.
“현재 말레이시아 홍릉은행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올 12월 말레이시아, 내년 4월엔 홍콩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거든요.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폴 등 다른 아시아 지역 진출 계획도 있습니다. 아직 급여 선지급 서비스 개념이 생소한 아시아권에 진출해 서비스망을 넓히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사회 안전망’ 으로 거듭나고 싶어요. 고금리 대출상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고, 일만 하고 있다면 최소한 의식주는 어려움이 없도록요. 추후 무보증 주거 월세, 자동차 렌탈 관련 업체들과 협력해 사업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 예비 창업자, 핀테크 꿈나무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많은 금융업 종사자들이 핀테크 스타트업에 도전하고 있는데요. 금융 지식만으로는 사업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페이워치도 앱을 개발하는데 애 많이 먹었어요. 꼭 기술 지식을 쌓고 창업에 도전하기 바랍니다.”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