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檢, 중대재해법 논의 과정서 빠진 '발주처 대표'까지 겨눈다.. 수사지침 검토 중

김종용 기자 2021. 11. 29. 06: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검 중대재해TF 학술대회서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고' 사례 검토
발주처에도 책임 묻는 방향으로 검토 중"
현장실습생 사고 발생 시 폭넓게 해석해 적용 '고심'
/연합뉴스

검찰이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국회 논의 과정에서 빠진 건설·설비 등 공사 발주처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쪽으로 수사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대재해처벌법에는 발주처에 대한 처벌 조항과 공기 단축 관련 조항들이 제외됐는데, 발주처가 실질적으로 사업장을 지배·운영 한 것이 입증된 경우에는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관련 조항을 폭넓게 해석해 발주처에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29일 조선비즈가 단독 입수한 대검 중대재해처벌법안 대응 태스크포스(TF) 학술대회 자료집에 따르면 문호섭 광주지검 검사는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 수사 사례를 통해 본 중대재해처벌법 수사의 시사점’ 세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면 발주처와 시공사의 대표이사 또는 임원 등을 경영책임자로 특정해 책임을 물을 여지가 있다”는 취지로 발표했다.

앞서 대검은 지난달 29일 중대재해법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했지만, 수사 가이드라인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토론 내용과 자료집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중대재해법TF는 형사 실무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출범, 현재 벌칙 해설서를 만들고 양형기준을 확립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중대재해 사건의 처리 기준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앞으로의 수사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검찰이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주목한 이유는

중대재해법TF는 지난해 발생한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에 주목했다. 이 사고는 대피로를 폐쇄해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표적인 중대산업재해로 꼽힌다. 검찰은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TF 팀장(상무보) A씨를 대피로 설치·유지에 대한 지시·감독 미흡 등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 의무 위반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로 재판에 넘겼지만, 지난 25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은 발주처가 공사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고, 통행로를 폐쇄하는 등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원은 한익스프레스의 주의 의무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한익스프레스가 도급인이 아닌 ‘발주자’라는 점에서 안전 조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문 검사는 “발주자는 위험성을 내포한 공사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면서도 안전 관리 업무와는 분리됐다는 이유로 대형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 그 자체로 불합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법 규정 및 제도의 보완을 통해 발주자의 책임 범위에 관한 적극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발주처·시공사 대표도 경영책임자 특정 가능”

검찰은 향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발주처와 시공사, 하청업체의 대표까지도 재판에 넘길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임원 현황과 의사결정 구조 등을 토대로 최종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자를 검토해 한익스프레스의 대표이사 또는 그에 준하는 임원을 ‘경영책임자 등’으로 특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질적 지배·운영 관리 사업장’에서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산업재해 4조·시민재해 9조) 검찰은 폭넓은 해석을 통해 발주처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 점에 착안해 발주처가 시공사와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발주처의 직원이 공사현장의 발주나 자금조달 등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발주처가 유해·위험 요인을 인지·파악해 통제 행위를 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면 발주처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된 한익스프레스 사건을 보면 ▲사고 발생 이전에 2회에 걸쳐 유사한 화재 사고가 있었고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유해위험방지 계획서 내용에 따르면 ‘화재·폭발 관련 특별교육 미실시’ 등이 지적 사항으로 기재됐다. 문 검사는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으로 인한 사상의 결과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주요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울러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 등’으로 특정돼 있는 시공사의 대표이사나 임원에 대한 처벌도 검찰이 눈여겨 보고 있는 부분이다. 검찰은 당시 시공사가 전국에 수십여개 현장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대표이사가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의 안전보건 총괄 책임자로 현장소장을 임명하는 등 권한과 의무를 위임해 재판에 넘기지 못했다.

문 검사는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 위반으로 인해 바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경우라도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이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의 원인이 되고 순차적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단계적 방식으로 입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5일 오후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진보당 광주시당 김주업 위원장(오른쪽)과 민주노총 광주본부, 광주 청년진보당 등 관계자들이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고(故) 홍정운 군을 추모하기 위한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현장실습생, 사업주와 종속 관계...적용 검토”

검찰은 또 이날 학술대회에서 현장실습생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종속 관계라고 판단해 중대재해법을 적용하는 쪽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현장실습생은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며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가 아니므로 중대재해처벌법상 종사자에 해당하지 않아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여수에서 발생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를 포함해 매번 학생들이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지만, 중대재해법으로 처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일찍부터 제기된 바 있다.

박경화 광주지검 순천지청 검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보호 대상인 종사자의 범위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개념보다 넓게 보고 있어 형식적으로는 현장실습생에 해당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종사자로 볼 수 있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장 실습에서 벗어나 사업주와 종속 관계라고 판단되는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밖에도 검찰은 산업재해 중 신체가 절단되거나 장해가 생기는 등 치료 기간이 6개월보다 짧은 경우, 중대재해가 적용되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박 검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실무에서 더 많은 내용이 문제가 돼 법 시행 직후에는 많은 혼란이나 시행착오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사례와 판례가 축적되고 그에 따라 구성요건 등이 명확해지는 등 입법적으로도 보완이 되면서 산업재해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검찰이 조속히 수사 관련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패널로 참석한 한 변호사는 “수사기관에서 기업에 과도한 자료 요구를 하거나 압수수색하는 경우에는 기업 경영에도 큰 장애가 초래될 수 있어 과잉 수사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검찰이나 수사기관에서는 조속히 수사 관련 지침이나 가이드라인 등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경우 법률이나 시행령 규정이 불명확해 수사기관에서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명분으로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며 “죄형법정주의라는 형사법의 대원칙 아래에서 엄밀한 법 해석과 적용을 통해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