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페어플레이어] SSG 랜더스 김상수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상대의 눈빛과 말씨에서 자연스럽게 그의 ‘선함’이 읽힐 때가 있다. 비교적 날카로운 인상에 마운드를 호령할 법한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외모와는 별개로 마음씨만은 누구보다 선하고 섬세한 SSG 랜더스 김상수를 좋은 예로 들 수 있겠다. 인터뷰 내내 주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 그의 따뜻한 인품은 몇 년간 행해온 선행들로 조금씩 알려지다, 지난 8월 중순 SSG 공식 SNS 계정을 통해 팬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됐다. 본업인 야구에 온 힘을 다할 뿐 아니라 뜻깊은 사회공헌 활동부터 정성 어린 팬서비스까지 야구 외적으로도 무던한 노력을 펼치는 그를, 단순히 야구인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을 수밖에 없었다.

Photographer Mino Hwang Interview Sangeun Yeon Editor Yoonjeong Jeon Location Incheon SSG Landers Field

근래 KBO리그는 최악의 난관에 봉착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방침으로 현장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은 가운데, 2020 도쿄올림픽 전후로 연이어 터진 일련의 사건으로 팬들의 마음마저 차갑게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동문서답을 내놓는 일부 선수들, 이러한 분위기를 묵인한 채 겉으로 드러난 일탈에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KBO의 형식적인 태도에 팬들은 다년간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다.

연예계나 정치계에서 숱하게 보이는 사례를 생각해보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이미지를 쇄신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미 비호감 스포츠로 낙인찍혀 버린 KBO리그 역시 통렬한 반성과 획기적인 혁신 없이는 결코 쉽게 이미지를 회복할 수 없을 거라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암흑기 속에서 작지만 따스한 불빛 하나를 밝힌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SSG의 김상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8월 12일, 한 뉴스 보도가 시청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인천에 있는 모 피자가게에서 딸의 생일을 맞아 외상으로 주문한 한부모 가정의 아빠에게 흔쾌히 피자를 선물했다는 사연이 알려진 것이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너도나도 해당 업체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돈쭐’ 행렬을 벌이고 사연 속 가정에 후원금을 보내는 등 선한 발걸음을 함께하기도 했다. 김상수 역시 피자 20판을 주문해 SSG 유소년 야구 교실의 어린이들에게 선물하며 선한 영향력의 범위를 야구계로 넓혔다. 이에 소속팀에서는 피자 30판을 추가로 주문하고 인천SSG랜더스필드 구장 광고판에 해당 업체의 광고를 실어 그의 선행에 동참했다.

김상수와 SSG가 보여준 선행은 각종 사건, 사고로 만신창이가 돼버린 KBO리그의 이미지에 소중한 연고를 발라줬다. 우리는 암흑 속에서 작지만 따뜻하게 밝혀진 불빛을 봤고, 그의 마음이 KBO리그 전반에 번져나가 언젠가는 야구계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따스하게 팬들을 반길 수 있기를 바라게 됐다. 이처럼 모두에게 박수받을 만한 일에도 한없이 겸손하고 담담한 그를 8월의 페어플레이어 수상자로 선정하고 연상은 아나운서가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KBO리그 월간 페어플레이어 8월의 수상자는 SSG 김상수 선수입니다. 축하합니다! (9월 7일 인터뷰)

감사합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부끄럽습니다. (어떤 이유로 받게 됐을까요?) 근래에 착한 일을 한 게 하나라서요. 자영업자분을 도와 유소년 선수단에 피자를 선물한 일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맞습니다. 바로 최근 화제가 됐던 ‘착한 피자집’에서 피자 20판을 주문해 유소년 야구 교실에 전달한 훈훈한 사연 때문인데요. 피자집 돈쭐 행렬에 동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요즘에는 SNS에 글이나 영상이 많이 올라오니까 거기서 봤고요. 지역이 인천이라는 것도 알게 됐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은 일을 함께 해볼 수 있을지 구단 홍보팀과 상의해 실현된 거예요.

구단 SNS를 통해서 선행이 알려졌어요. 솔직히 기분이 어땠나요?

부끄러웠습니다. (내심 뿌듯하진 않았나요?) 밝혀진 것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좋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이런 일을 더 자주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전까지는 김상수 하면 반듯하고 모범적인 이미지보다는 마운드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를 떠올렸거든요.

잘은 모르겠지만, 경기할 땐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런 모습이 비쳤나 봐요. 마운드에서 내려와서는 주위 사람들이 항상 잘 웃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해요.

키움 히어로즈에서 주장을 맡던 시절부터 후배들에게 팬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들었어요.

프로 생활을 15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하면서 팬분들이 퇴근길까지 기다려주고 응원도 해주시는데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항상 했어요. 그래서 선수로서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결론을 냈죠. 사인해드리거나 사진을 찍어드리는 것도 있을 테고, 팬분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알려주는 영상을 만드는 것도 보답이라고 생각했고요.

SSG로 이적한 뒤 구단 유튜브와 김상수의 조합이 기대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실제로도 케미가 잘 맞던가요?

지금은 자주 못 보여드리고 있어요. 야구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서요. 시즌이 끝나면 더 재미있는 영상으로 찾아뵙지 않을까요?저보다는 다른 동료들도 다양하게 비추면 좋을 듯해요. 팬분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구단 측에 먼저 댓글 이벤트를 제안하기도 했어요. 콘텐츠에 진심인 듯한데, 혼자만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하나만 슬쩍 소개해볼까요?

우리 팀 선수들은 아직 브이로그를 많이 안 찍어본 것 같아서 해 봤으면 좋겠고요. 나중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으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는 퀴즈 콘텐츠도 괜찮겠네요. (브이로그가 가장 재밌을 것 같은 동료는요?) 팬분들이 제일 궁금해할 인물 1위가 아마 최주환 선수이지 않을까요? (최)정이 형 브이로그도 궁금해하실 테고요.

지금은 아쉽게도 팬들과 비대면으로만 소통해야 하잖아요. 코로나19가 끝나면 팬들과 직접 만나서 해보고 싶은 이벤트나 팬서비스가 있나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어요. 선물도 하고 싶고, 사진도 찍고 싶고요. 또 같이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도 하면 좋겠어요.

은퇴하고 나서 구단 유튜브 PD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하는 건 어때요?

두 가지 꿈이 있는데요. 솔직히 방송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고요. 또 다른 하나는 투자자요. 관심이 많기도 하고 공부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방송 일이라는 건 본인이 직접 출연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은 건가요?)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영상 제작은 그 분야의 최고인 사람들이 하는 게 맞는 거로 생각하고, 제가 그걸 잘 표현하는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SG로 이적하고 나서는 누구와 가장 마음이 잘 맞았나요?

이 자리를 빌려서 말하자면 감독님께 가장 감사하고 있습니다. 위로를 제일 많이 해주셨거든요. ‘괜찮다. 잘할 수 있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 하는 얘기를 들어서 지금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그리고 다른 코치님들이나 친구들, 형들 다 정말 고맙죠. (그럼 제일 친한 선수는 누구예요?) 음… 일단 신재영 선수랑 가장 친하고요. 근데 지금은 다 친하지 않나?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는데.

경기 외적인 모범으로 페어플레이어 상을 받았습니다. 김상수에게 페어플레이란 무엇인가요?

페어플레이란… 깨끗하고 정직한 거 아닐까요? 사실 좀 민망해요. 더 큰 박수를 받을 만한 사람이 많은데 과연 제가 수상해도 되나 싶고요. 이번 상을 계기로 앞으로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라는 뜻이라고도 봅니다.

‘타자 김상수에게 뒤지지 않는 투수 김상수만의 매력은 이거다!’ 할 만한 게 있을까요?

같이 커피 한 잔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고민거리를 들어주거나 힘들면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이요. 옆에 있으면 재미있고 좋은 기운을 줄 수 있어요. 팬들에게도 동네 사람처럼 친근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묻기도 하고요. 어린 친구들이 저를 좋아한다고 하면 이유를 물어봐요. 좋아하는 선수가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이름이 뭔지도 모르면 좀 서운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팬이 지나가면 이름도 불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해요. (왜 좋아하냐고 물어봤을 때는 이유가 뭐라고 하던가요? 잘생겼다고 하나요?) 그런 분도 있고 멋있다고 하는 분도 있어요. 그냥 이런 캐릭터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나 봅니다.

구단 유튜브에서 춤과 노래를 즐긴다고 했어요. SSG가 우승하면 대규모 댄스파티를 기대해봐도 될까요?

사실 춤이나 노래를 잘하지는 않지만, 느낌 있게는 하는 것 같아요. 원래 항상 라커룸에 스피커를 갖다 놓고 경기 들어가기 2, 30분 전에 텐션을 올려야 한다며 노래를 크게 틀어놨어요. 그러고 연패에 빠졌을 때는 이럴수록 더 재밌게 하자고 나선 적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잘 웃게 되고 경기도 술술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집에서도 분위기가 처지면 신나는 노래를 듣곤 합니다. (오늘은 라커룸에서 어떤 노래를 틀 계획인가요? 비도 오고 추적추적하잖아요.) 요즘은 비가 자주 오니까 헤이즈 씨의 ‘비도 오고 그래서’요. 감수성을 끌어올릴 때도 있어야죠. 너무 신나는 노래만 틀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비 오는 날엔 촉촉하게.

올 시즌 후반기가 한창 진행 중이에요.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아무래도 가을야구를 하는 게 제일 간절하죠. 전 못해도 되는데 팀은 잘해야 해요.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지금부터는 점수를 안 주고 싶어요. 이제껏 너무 많이 줘서요.

페어플레이어 부상으로 지급되는 상금은 어디에 쓰고 싶어요?

벌써 생각해놨습니다. 피자를 먹고 싶다고 했던 어린 친구에게 주고 싶어요. 가지고 있다가 뭐 먹고 싶을 때 사 먹었으면 좋겠거든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가 받아야 할 상금은 아니니까요. 저한테는 이런 인터뷰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히 크죠. 잘했다고 칭찬받은 거니까 그거면 됐습니다. (김상수의 선행이 앞으로 널리 번져나간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친구는 ‘뭐 저렇게까지 하냐. 뭐 저렇게 티를 내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야구인들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들을 하고 있다고 알려야 팬분들도 좋아해 주실 거로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선수들도 마음을 모아서 선행을 자주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오늘 인터뷰는 정말 감동적이네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제 인터뷰도 잘 봐주시고 요즘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성적은 조금 안 좋지만, 열심히 극복해서 팀이 이기는 데 많은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까지 응원해주시면 SSG가 가을야구를 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파이팅! 감사합니다.

***

지금까지 KBO리그가 보여준 태도에 단 한 번도 실망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김상수를 비롯한 일부 야구인들이 보여주는 선한 영향력이 더욱 밝게 빛나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다가도 이렇듯 훈훈한 일화를 접했을 때 “세상 아직 살 만하다”라고 하는 것처럼, 반복되는 배신감과 실망감에 지쳤다면 어둠 한 편에서 따스한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그들의 선행을 잠시 바라보는 건 어떨까. 김상수가 밝힌 선한 등불이 KBO리그 전체로 번져나가 팬들의 마음에서 환하게 빛나는 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길 고대하며, 그에게 펼쳐질 앞날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 더그아웃 매거진 126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1년 126호(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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