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도감·다큐 수십편 보고 작업실엔 근육스케치 한보따리 박제로 살아난 시베리아호랑이 "마치 살아 숨쉬는 듯" 감탄 국내 최초 박제사 공무원도 멸종위기종 보존에 자부심 "엄마, 두루미가 이렇게 컸어?" 아이는 전시실서 깜짝 놀랐네
윤지나 박제사와 차재헌 박제사가 서울대공원 수장고에서 시베리아 호랑이 `코아`의 박제를 다듬고 있다.
수장고에 불이 켜졌다. 눈밭을 달리던 호랑이 두 마리가 나를 향해 돌진하는 듯했다. 반쯤 벌어진 입, 곧추선 꼬리, 도약 직전 힘이 들어간 뒷다리의 모습까지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 살아 있는 호랑이와 이질감을 찾기 힘들었다. 이 두 마리의 호랑이는 각각 2016년, 2018년 서울대공원에서 폐사한 시베리아호랑이 '코아'와 '한울'의 박제다. 사망 후 오랫동안 냉동고에서 잠들어 있던 이들은 지난해 서울대공원 윤지나 박제사에 의해 새로 태어났다.
서울대공원 표본제작실에서 박제사가 호랑이 박제를 준비하며 스케치한 그림과 근골격계 해부도 등을 펼쳐보이고 있다.
서울대공원 내 표본제작실. 작업실 한가운데 바위에 올라가 앉은 호랑이 박제에 사용될 우레탄 조각이 놓여 있었다. 본래 커다란 덩어리였던 우레탄이 호랑이의 날선 콧대와 근육 모양을 따라 깎이고 다듬어져 지금은 제법 매서운 호랑이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박제사들은 이날 꼬리 모양을 어떤 형태로 잡을지 논의했다. 윤 박제사가 호랑이의 움직임과 근육 모양 등을 스케치한 자료를 한아름 들고 왔다. 보다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박제하는 동물의 도감이나 다큐멘터리를 수십 편 찾아본다고 한다. 하루 온종일 방사장 앞에 가서 동물들 움직임을 지켜볼 때도 있다.
서울대공원 표본제작실에서 박제사들이 호랑이 박제 제작 중 꼬리 모양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이 폐사하면 보존 가치에 따라 박제 여부를 결정한다. 수의사가 부검을 마치고 내장을 제거하면, 박제사는 가죽을 벗기고 남은 살점과 지방질을 덜어낸다. 가죽에는 부패를 막기 위한 특별 처리를 한다. 이 가죽을 동물 치수에 맞게 제작된 틀 위에 씌우고 눈 코 입 등 세부적인 표현을 한 후 봉합한다. 그 후 건조 작업을 거치며 변형 여부 등을 체크하고, 건조가 끝나면 색이 빠진 부위를 채색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인천 서구 국립생물자원관 전시실을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조류 박제를 살펴보고 있다.
박제 작업은 동물 크기에 따라 작게는 한두 달, 길게는 일 년 이상이 소요된다. 온습도와 직사광선에 민감한 박제는 조습 패널과 공조 설비가 갖춰진 수장고로 옮겨져 보관된다. 이곳 서울대공원 수장고에는 박제 500여 점이 보관돼 있다.
인천 서구에 위치한 국립생물자원관도 우리 땅에 서식하는 생물종에 대한 박제 작업을 하고 있다. 이곳 국립생물자원관의 류영남 박제사는 '국가공인 1호' 박제사다. 각 지방자치단체나 야생동물구조협회에 접수된 야생동물 폐사체 중 상태가 좋은 개체는 류 박제사의 손을 거쳐 박제로서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된다. 류 박제사가 만드는 박제는 1년에 80~100여 점에 이른다.
류영남 박제사가 인천 서구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갈색제비 박제 작업을 하고 있다. 갈색제비는 국내 제비 종 중 크기가 가장 작은 종이다.
국립생물자원관 내 전시실에는 우리나라의 산과 들, 강과 하천에 서식하는 생물종에 대한 박제가 전시돼 있다. 엄마와 함께 전시실을 찾은 한 어린이가 키를 훌쩍 넘는 두루미 크기를 보고 흠칫 놀란다. 동물 외형을 그대로 보존해 사람들에게 생물종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이들의 멸종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것. 그것이 '기록'으로서 갖는 박제의 의의라고 류 박제사는 말한다.
박제 작업에 사용되는 다양한 기구들로 마치 공구상을 연상케 하는 작업소.
또 박제는 생물들이 갖는 생물학적 고유성을 남겨 연구 자료로서 가치도 지닌다. 실제로 국립생물자원관 내 불갑산 호랑이 박제에서 채취한 DNA 표본으로 대한민국 호랑이와 시베리아호랑이가 같은 종이라는 정보를 얻은 사례가 있다. 일부의 편견에도 박제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