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공감·AI]미생물 세계의 복잡한 퍼즐 AI로 푼다

조승한 기자 2021. 12. 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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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재 광주과학기술원(GIST)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인간의 미생물 유전체를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중이다. 연구원들이 마이크롬바이오 분석을 통해 나온 미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남윤중 제공

미국 정보기술(IT)기업 IBM은 올해 초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사람의 피부 조각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흡연 습관이나 나이를 알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여성의 경우는 폐경 시기까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다. 비밀은 인간 세포 크기의 1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미생물에 있었다. 인간의 미생물 유전정보를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중의 하나인 피부 마이크로바이옴의 유전자를 AI로 분석했더니 피부 건조도는 90%, 흡연 습관은 85%, 나이도 85% 정확도로 알아냈다. 

인간의 정보를 담고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최근 인간의 특성을 밝혀낼 ‘제2의 게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의 몸에는 순수한 인체 세포 수의 10배가 넘는 수백조 마리의 미생물이 인간과 공생하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 유전자 수의 100배가 넘는 수백만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전 세계 프로젝트를 통해 13년 만에 완성된 인간 유전자 지도의 100배가 넘는 규모다. 말 그대로 인간 특성에 대한 엄청난 정보가 숨겨져 있는 빅데이터인 셈이다.

인간마다 제각기 다른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의 모든 활동에 영향을 주며 질병에도 큰 영향을 준다. 과학자들은 최근 AI의 발달을 무기로 마이크로바이옴이 감추고 있던 인체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이선재 광주과학기술원(G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은 한명은 사바나 초원이라면 한명은 툰드라일 정도로 생태계가 각자 다르다”며 "AI를 이용하면 사람마다 가진 마이크로바이옴이 각기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서 최근 AI가 주목받는 이유는 마이크로바이옴이 마치 우주에 엄청난 양이 존재하나 외부와 상호작용이 없어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암흑물질’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미생물은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외부로 꺼내 보면 바로 죽는 경우가 많아 특성을 확인하기도 어렵다”며 “너무 수가 많아 어떤 것이 사람의 몸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선재 GIST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과 같은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할 때 인공지능이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남윤중 제공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서 사람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연관성을 빠르게 분석해내는 AI는 마이크로바이옴과 인간 사이 관계를 찾아내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로 꼽힌다. 이스라엘 와이스만연구소 연구팀은 2015년 이스라엘에서 800명의 식이패턴 4만 6898건과 마이크로바이옴, 연속혈당을 AI로 분석한 결과 사람마다 혈당을 올리는 음식이 모두 다른 것을 확인해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AI가 혈당 변화에 관여하는 미생물들을 하나씩 솎아내고 사람마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를 추천하는 데 성공했다.

AI는 마이크로바이옴과 인체의 생각지 못한 연결고리를 찾아내 인체를 치료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 교수팀은 간경화를 일으키는 환자에게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치료하는 항생제인 리팍시민이 잘 듣는 이유를 AI 분석으로 밝혀내 9월 ‘저널 오브 헤파톨로지’에 발표했다. 의사들은 리팍시민이 이상하게도 간경화에 잘 듣는 약인 것은 알았지만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써 왔다.

연구팀이 마이크로바이옴을 분석한 결과 다른 곳에서 문제가 확인됐다. 간경화 환자는 구강 미생물이 장까지 침투해 장과 연결된 간에 염증을 일으키는 현상이 확인된 것이다. 구강미생물은 산성 환경인 위로 막혀 있어 장으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 간경화 환자는 이와 달리 구강미생물이 장으로 넘어와 문제를 일으켰다. 리팍시민이 바로 장에 들어온 구강 미생물의 침입을 막아 간경화를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 교수는 “AI를 적용하면 질환별로 마이크로바이옴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선재 GIST 교수팀은 간경화 환자에게 잘 듣지만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던 항생제인 리팍시민의 작용 원리를 마이크로바이옴 기능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GIST 제공

마이크로바이옴 분야는 2015년 DNA를 잘게 부숴 다시 조합해 원래 DNA를 찾아내는 ‘샷건 메타게놈’ 기법이 활발해지면서 엄청난 데이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이크로바이옴 하나에서만 나오는 유전체 데이터는 최근 페타바이트(PB·1PB는 1024테라바이트) 용량까지 커지고 있다.

AI는 미생물 별 DNA를 심층학습해 거대한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 속에서 발견된 DNA 조각들이 어떤 미생물로부터 왔는지를 찾아낼 수 있다. 이 교수는 “미생물이 대사활동으로 신약이 될 수 있는 물질을 많이 만드는 것에 주목해 AI로 DNA 중 물질과 관련된 DNA만 찾아내 신약 물질을 발굴하는 모델도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한국인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정밀 조사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GIST는 지난 10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와 5년간 200억 원 규모의 AI 연구 6개를 수행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팀도 여기 참여해 마르지에 가세미 MIT 교수와 공동으로 마이크로바이옴 빅데이터 분석과 신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미생물과 사람은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를 이루는데 최근 도시화로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공진화가 깨지고 있다”며 “도시화가 진행된 나라와 덜 된 나라는 마이크로바이옴이 확실히 다른데 한국은 데이터가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과 중국은 미국과 비슷한 부류로 나뉘고 가장 공진화가 깨진 지역으로 분류된다”며 “한국도 어떤 지역인지 이번 연구를 통해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에 적용되는 AI는 최근 주목받는 ‘정밀의학’을 이룰 하나의 퍼즐 조각으로 꼽힌다. 정밀의학은 개인별 환경이나 유전학적 특성을 고려해 개인별로 질병을 예측하거나 맞춤진료를 하는 연구를 뜻한다. 이 교수는 “사람이 약물을 섭취하면 이미 늦은 것”이라며 “AI 분석으로 개인의 이력을 알고 위험요소를 미리 예측하면 병을 예방하거나 식습관이나 운동패턴을 바꿔 마이크로바이옴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람들이 의학이 발전한 것을 알지만 건강식을 찾거나 하는 건 뭔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는 것"이라며 "치료제가 나와도 100명 중 20명은 듣지 않는 걸 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치료제가 듣지 않는 20명의 원인을 찾아줄 수 있는 하나의 열쇠로 꼽힌다.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팀은 지난해 3세대 암 치료제로 주목받는 면역항암제의 효능을 장내미생물이 높여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백신의 효능을 높이는 마이크로바이옴 특성을 찾아내는 연구도 최근 시작됐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연구팀은 AI로 코로나19 백신 효과가 높은 사람과 마이크로바이옴 간 연관성을 찾는 임상 실험을 시작했다고 8월 밝혔다. 뉴질랜드에서도 비슷한 임상이 실시되고 있다. 이 교수는 "가장 외부 물질을 많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장은 인체 면역세포의 70%가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생명과학 분야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생명과학 분야에서 AI와 같은 데이터과학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담당하면서 이익의 80%를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발렌베리 재단은 연구비 중 10%를 데이터 기반 생명과학에만 투자한다고 결정했다. 이 교수는 “노벨상을 주는 스웨덴처럼 기초와 전통을 중요시하던 유럽조차 최근 데이터 과학의 중요성을 알고 투자를 시작하고 있다”며 “한국도 지금이 분야를 이끌어가느냐 아니면 후발주자가 되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선재 GIST 교수팀은 생명공학 연구를 진행하지만 실험실에서 생명체를 만지는 대신 컴퓨터로 생명체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실이다. 남윤중 제공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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