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존재, 방탄소년단 진
21세기 그룹 최초 6주 연속 빌보드 싱글차트 1위(2021년 7월 7일 기준)를 기록한 방탄소년단의 맏형, ‘월드 와일드 핸섬(World wide handsome)’이라는 고유명사를 가진 지구 대표 미남, 생일 기념 라이브 방송을 1,300만여 명이나 시청하는 성층권 셀러브리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특별하고 비범해 보이는 방탄소년단 진은, 그렇지만 보통의 존재다. 그는 현실에 두 발을 튼튼히 내디디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다.
그가 손대중으로 주꾸미삼겹살볶음 양념장을 만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요리하는 모습에선 ‘요섹남’ 같은 매끈한 수사가 연상되지 않는다. 좁은 숙소에서 동생들에게 음식을 직접 해 먹이는 시절을 지나며 몸에 밴, 자기 살림을 해본 사람 특유의 살뜰함이 느껴진다. 그는 스스로를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다.
진은 콘서트 회 차를 늘려달라는 팬의 요청에 회사와 상의해보겠다며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다. 큰 소리로 웃고 수시로 실없는 농담을 던지지만 대체로 과묵하며, “생각을 하지 않고 살려고 해요.”라고 자주 말하지만 경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중심이 있는 사람 특유의 천진함과 낙천성이 있다. 그는 귀엽고 활기차다. 방탄소년단이라는 거대한 배가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 이유는 맏형인 진이 현실이라는 이 배의 키를 단단히 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월드 와일드 핸섬’ 실물 영접기
진은 잘생겼다. 나는 그를 아주 가까이에서 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인생을 아이돌로 배운 나는, 30대에 덕질을 다시 시작하면서도 ‘내가 이 나이에’를 별로 따져본 적이 없는데, 그중에 이건 절대 못 하겠다 싶은 게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음악방송 출근길에 가는 것이다. 그러나 때는 2018년 6월.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전 지구적인 규모가 되면서 국내 스케줄이 많이 줄어든 시기였다.
방탄소년단이 너무 보고 싶어서 여의도 KBS홀로 향했다. 학창 시절, 선착순인 음악방송 입장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약간 쉰내 나는 김밥을 먹고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찾아 뛰었던 그곳을 20년 만에 다시 찾았다. 감회가 남달랐다. 당시 나는 KBS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그 골목의 어디에 개방 화장실이 있는지 속속들이 아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인생이란 참 오묘하다.
수능 날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나서 첫 지하철을 타고 국회의사당역으로 갔다. 6시 반쯤 도착했는데 등교 전에 온 학생과 기자들로 벌써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대열의 끄트머리에서 혼자 민망해하며 두어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차원이 다른 술렁임 속에서, 의전 요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천천히 진입하는 검은 승합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탄소년단이 탄 차가 분명했다.
캐주얼한 파란색 후드티를 입고 차에서 내리는 진을 본 순간, 잘생긴 사람을 보면 왜 시력이 높아진다고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눈으로 에너지파라도 쏠 것처럼 부릅뜨고 0.1초 단위로 그의 움직임을 좇았다. 살면서 가장 많은 시력을 쓴 순간이었다. 실물을 조금 설명하자면 진은 세상 어딘가에는 있는 게 분명하지만, 결코 나와는 아무 인연이 없을 현실적인 미남의 느낌이었다. 마치 로또처럼. 살면서 공덕을 많이 쌓으면 중고거래나 별로 친하지 않은 직장 동료의 결혼식 사회자 정도로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적적인 잘생김이랄까.
“안녕하세요. 잘생긴 진입니다”의 의미
5초 동안 본 얼굴을 나도 그의 잘생김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데, 매일 거울을 보는 그가 자신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아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는 “안녕하세요. 잘생긴 진입니다.”라고 인사한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레드카펫에서든 스타디움 콘서트에서든 정말 늘 이렇게 인사한다. 그러나 그의 말투와 태도에는 나르시시즘이 배어 있지 않다. 담백하고 정갈하다. “안녕하세요. 잘생긴 진입니다.”는 외모 자랑이라기보다는, 사활을 건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긴장을 풀기 위해 던지는 유머에 가깝다.
진이 손키스를 하며 ‘월드 와이드 핸섬’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면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민망한 듯이 웃는 게 하나의 밈(meme)으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이렇게 한 번 웃고 나면, 보고 있는 팬들마저 몸을 긴장하게 하는 어려운 영어 인터뷰도 훨씬 부드럽고 수월하게 진행된다. 진은 분위기를 읽는 세심한 눈과 다정한 공감 능력으로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든다.
진은 본인이 행복하기 위해 남들을 웃게 해주는 거라며 계속해서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자신을 허문다. 맏형이라고 무게를 잡거나 대접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가장 나중에 자기 방을 고르고, 다섯 살 어린 막내 정국과 친구처럼 지낸다.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불쑥 깨달을 때가 많은데, 그중 내가 가장 감동하는 순간은 나이 어린 멤버들이 그를 너무 좋아하며 끌어안고 매달리는 장난을 칠 때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온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보고 있으면 기분 좋은 웃음이 번지는 방탄소년단만의 따스하고 목가적인 팀워크는 진이 없었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마냥 밝고 해맑은 사람은 아니다. 그의 솔로 곡 ‘Epiphany’나 ‘Abyss’를 들으면 알 수 있다. 고통을 홀로 이겨낸 사람만이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6개월 만에 다시 1천 명을 넘어섰다(2021년 7월 7일 기준). 한 달여 전, 방탄소년단 온라인 팬미팅 ‘소우주’를 볼 때만 해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이 완화되며 머지않아 공연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는데 다시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괜찮다. “너 자신의 수고는 너만 알면 돼.”라고 스스로를 다스리며 제 몫의 삶을 꾸준히 살아가는 진처럼, 나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 눈 건강을 열심히 챙기며 기다려야겠다.
글, 사진제공/ 최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