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야생마' 이상훈 입단 동기, 원포인트 릴리프 개척자, 김지찬의 스승..라온고 강봉수 감독의 '즐거운 야구'

[스포티비뉴스=목동, 이재국 기자] "라온고의 라온이 무슨 뜻입니까."
라온고등학교. 다소 생소한 학교 이름이다. 그나마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KBO 최단신 야구선수' 김지찬(20)으로 인해 야구팬들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야구명문고가 즐비한 이 바닥에서는 여전히 변방의 학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적어도 야구계에서는 그렇다. '라온고'라는 학교 이름이 독특해 '라온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이들이 더러 있을 뿐.
그런 라온고가 8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32강전에서 일을 냈다. 강호 신일고를 5-3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16강에 올랐다.
신일고는 앞서 설명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야구 명문고. 지난해 대통령배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번 청룡기 대회에서도 안정된 전력을 구성하고 있는 팀으로 평가됐다. 이날 대진표만 보고는 대부분 승부를 지레짐작했겠지만, 뒤집힌 결과를 보고서는 모두들 깜짝 놀랐을 듯하다.
라온고의 선발투수 윤성보(3학년 우완)는 5⅓이닝 동안 4사구 없이 3안타 4탈삼진 3실점(1자책점)으로 팀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고, 이어 등판한 박명근(2학년 우완)은 3⅔이닝을 2안타 2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투수가 됐다. 키 174㎝의 '작은 거인' 성현호(2학년 좌익수)는 4-3으로 1점차로 앞선 8회말에 김지찬 같은 다부진 타격으로 벼락같은 홈런포를 터뜨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라온고 승리를 지휘한 사령탑은 강봉수 감독. 요즘 팬들에겐 강봉수라는 이름이 낯설지 몰라도, 1990년대 LG 트윈스의 마지막 우승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아~, 그 강봉수?"라고 무릎을 탁 치면서 오랜 만에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듯하다.
맞다. 그 강봉수다.

◆ 이상훈과 1993년 입단 동기…'원포인트 릴리프' 개척자
1993년 서울고-고려대 출신의 '야생마' 이상훈(현 MBC스포츠+ 해설위원)과 LG 입단 동기. 이상훈은 1차지명을 받았고, 부산고-중앙대 출신의 강봉수는 2차지명 4라운드에 줄무의 유니폼을 입었다.
같은 좌완이지만 스타일은 극과 극. 당시 신인 강봉수의 산만한 덩치를 처음 본 선배들은 '힘 좋아 보이는 대단한 녀석 하나가 들어왔다'며 불같은 강속구를 기대했지만, 첫 피칭을 하는 그를 보고는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훈과는 여러 모로 다른 유형의 투수. 이상훈이 시속 150㎞를 넘나드는 빠른 공을 던지는 '파이어볼러'였다면, 강봉수는 시속 130㎞대 '모닥볼러'였다.
선배들이 "야야, 슬슬 던지지 말고 전력으로 한 번 던져 봐"라고 하자 강봉수는 "이게 전력피칭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대답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강봉수는 신인 시절부터 입담이 대단했고, 1년 뒤 입단한 사이드암 투수 박철홍(현 대치중 감독)과 듀엣으로 LG 선수단의 개그를 책임졌다.
그러나 강봉수는 그런 구속으로도 이상훈만큼이나 씩씩하게 던졌다. 짧은 팔스윙으로 던지다보니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공은 느렸지만, '칠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배짱 좋게 타자 몸쪽 승부를 즐겼다.
이광환 감독은 마구잡이 투수 기용이 횡횡하던 그 시절, '스타시스템'이라는 신개념을 들고 나왔다. 별 모양의 꼭짓점에 선발 로테이션 5명을 정하고, 불펜도 마무리투수 한 명과 롱 릴리프, 셋업맨, 원포인트 릴리프 식으로 철저한 마운드 분업화를 만들었다.
특히 불펜의 역할 분담은 당시로선 생경한 시도. 마무리투수 김용수를 정점에 두고 차명석-차동철 등이 롱릴리프와 셋업맨으로 출격하던 그 시절, 강봉수는 '약방의 감초' 같은 원포인트 릴리프로서 LG 마운드의 황금기에 힘을 보탰다. 신인이던 1993년에는 45경기에 등판해 5승2패4세이브, 평균자책점 1.94를 기록했고, LG가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1994년에는 37경기에 나서 2승1패4세이브, 평균자책점 2.61의 성적을 올렸다. 당시 홀드라는 개념이 있었다면 그의 활약은 조금 더 세분화돼 평가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구속은 느렸지만 공끝과 무부먼트가 좋았던 강봉수는 그러나 1996년 5월에 한화 이글스 내야수 황대연과 트레이드된 뒤 구위가 급락했다. 1997년 다소 이른 시점에 은퇴했다. 이후 아마추어에서 지도자로 변신해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 '즐거운'을 뜻하는 순우리말 '라온'…라온고의 '즐거운 야구'
강봉수는 2015년 7월에 창단한 라온고 야구부 감독이 됐다. 라온고의 원래 교명은 송탄제일고. 그러나 '제일고(第一高)'라는 교명이 일제시대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지적에 따라 2017년 교명을 라온고로 바꿨다고 한다.
그렇다면 '라온'은 무슨 뜻일까. 언뜻 미션스쿨 같은 느낌도 난다. 그러나 강봉수 감독은 "라온은 '즐거운’이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라면서 "라온고 야구부도 즐거운 야구를 지향한다"고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과거 LG '신바람야구'의 전성시대에 '즐거운' 입담을 책임진 그와 어째 어울린다.
강 감독은 이날 신일고에 승리하며 16강 진출을 결정한 뒤 "오늘 등판한 윤성보와 박명근은 최고 147㎞, 145㎞를 던질 정도로 공이 빠른 투수들이다. 모처럼 서울에 와서 경기를 하니 얼어서 그런지 구속이 평소보다 나오지 않았다. 감독은 선수 시절 공이 느렸지만, 이 녀석들은 공 느렸던 감독의 한을 풀어주려나 보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강 감독은 "윤성보 박명근 외에도 우리 팀엔 좋은 투수들이 더 있다. 우리의 목표는 1승이 아니다. 끝까지 가보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라온고는 지난해 청룡기에서도 16강에 올랐다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돌풍을 넘어 태풍을 일으켜 보겠다는 각오다.

2020년 삼성 김지찬(2차지명 2라운드)에 이어 2021년 롯데 송재영(2차지명 4라운드)과 LG 김지용(2차지명 6라운드) 등 프로 선수들을 배출해 내면서 팬들에게도 점점 라온고라는 학교 이름도 익숙해지고 있다. 이러한 효과로 최근엔 좋은 기량을 갖춘 유망주들이 라온고를 찾는다고 한다.
야구부의 틀을 갖추고 조금씩 학교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라온고 선수들. 유니폼 오른팔 소매에 '평택'이라는 패치를 붙이고 경기도 평택시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야구 전용 연습장 하나 없는 열악한 조건. 학교에서 야구부에 관심을 쏟고 있지만 부지 확보에 한계가 있다. 강 감독은 "평택시와 지역사회에서 야구부 연습구장 마련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나타냈다.
현역 시절 느린 구속으로도 과감하게 정면승부를 벌이던 원포인트 릴리프. 강봉수는 감독이 되어서도 느린 걸음이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전국의 강호들과 정면승부를 벌이며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즐거운 야구'를 기치로 내건 라온고의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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