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로 연 매출 120억.. 동구밭이 비누 만드는 진짜 이유

발달장애인들의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한 회사가 있다. 설거지 워싱바, 고체비누 등 친환경 제품으로 이름이 알려진 '동구밭'은 발달장애인들을 채용하기 위해 제품을 만든다. 자체 브랜드 제품과 고객사에서 의뢰받은 제품을 제작하는데, 월간 생산되는 비누만 40만 개에 이른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2배 증가한 12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사업을 시작한 이후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고 규모가 커졌지만 초기 미션만은 그대로 지켜가고 있다. 동구밭 직원의 절반은 꼭 발달장애 사원으로 채운다. 노순호 동구밭 대표는 "'발달 장애인은 왜 오래 일하지 못할까'에 대한 해답을 기업의 방식으로 풀어보고자 했다"며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서울 성수동 동구밭 사무실에서 노순호대표(좌)와 박상재 부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출처 인터비즈

농사에서 비누로, 비즈니스 모델 변경
'친환경' 트렌트 타고 인지도 높아져

동구밭은 처음에 장애인-비장애인 매칭 서비스로 시작했다. 발달장애인들이 텃밭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농작물을 키우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제일 많이 운영할 때는 30곳 텃밭에서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매년 250~300명이 참여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곧 존폐 위기에 놓쳤다.

"결론적으론 망한 거죠. 매출이 안 나오니까 유지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무엇보다도 프로그램 취지가 사람들이 채용되도록 돕는 건데, 일을 잘한다고 아무리 추천을 해도 데려가겠단 회사가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고용으로 생각을 바꿨어요. 10명을 채용하더라도 이들이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생각했죠."

사업 초기 운영했던 텃밭을 소개하는 영상. 출처 동구밭

직접 고용을 위해 비누 제조로 사업 모델을 바꿨다. 지금은 규제가 바뀌었지만 2016년 당시만 해도 비누는 공산품에 해당해 누구나 집에서 만들어 팔 수 있었다.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 업계가 정체되어 있어 조금만 다른 특징을 내세워도 눈에 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화장품을 고체로 만들겠다고 하니 "왜?"란 답이 돌아왔다. 짜서 쓰는 제품이 훨씬 편하고 제품력도 좋고 심지어 더 싼데 왜 고체로 만드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고체 화장품은 '결국 그냥 비누 아니냐'며 빨리 다른 사업을 알아보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표는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공장을 세팅하고 본격 비누 생산에 들어갔다. 처음 생산한 건 저온숙성(CP)비누였다. 만드는 방식의 차이뿐 아니라 고급 오일을 추가하는 등 재료에 있어서도 차별화 포인트가 있는 제품이었다. 노 대표는 "화장품 회사에서 비누를 만든다고 하면 이런 타입의 제품을 납품받고 싶어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다행히 예상이 적중했다"고 설명했다.

출처 동구밭

공장 문을 열고 2017년 3월 첫 납품을 했는데, 그때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처음인 대학생 창업가는 비누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공방도 쫓아다니고 전문가도 영업해 봤다. 문제는 대량생산. 몇 백 개 단위까진 만들 수 있었지만 수 천 개를 한 번에 양산하자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졌다. 제품 제조 특성상 만든 다음 날에야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수개월 동안 하루 종일 만든 걸 다 버려야 하는 나날을 보냈다. "처절하게 버텼다"는 노 대표의 말처럼 피 말리는 시간들을 보내고 안정적인 제작이 가능해지자 매출 10억 원까지는 무난히 달성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CP비누 시장만으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웠다. 제품군 확대를 위해 친환경 '설거지 워싱바' '고체 샴푸' '고체 린스' 등을 잇따라 출시했다. 또, 모든 제품에 대해 프랑스 이브비건 인증과 미국 농무부 USDA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던 때, 코로나19로 환경 이슈가 불거졌다.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판로가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회사에서 동구밭에 제작 문의를 해왔다. 워커힐 등 호텔에서 어메니티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동구밭 제품을 입점시키겠다는 유통 채널도 늘었다.

자체 브랜드 확대로 성장 동력 마련

동구밭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주문자개발생산(ODM) 외에도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제조사가 자사 브랜드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고객사와 이해관계가 부딪칠 수 있어서다. 또 브랜딩 역량과 브랜드 전략 부재라는 한계도 있다. 동구밭 브랜드를 총괄하는 박상재 부대표의 합류는 자사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널리 알림으로써 회사 성장의 계기가 됐다.

2020년 박 부대표가 합류하기 전에도 자체 제품은 있었다. 처음엔 고객사에 샘플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했다. 노 대표는 "타사 제품을 샘플로 주는 게 싫어서 저희 자체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그러다 보니 기왕에 만든 거 팔아볼까 했는데 이런 형식의 제품이 많을 때가 아니라 그런지 생각보다 잘 팔렸고, 팔아주겠다는 곳들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우리 제품을 만들어 팔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품이 동구밭이란 브랜드로 인식되게 하기 위해 박 부대표는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드는'이란 본질에 '지속 가능한 일상을 제안한다'는 메시지를 덧붙여 '친환경 브랜드=동구밭'이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또 하나 마케팅할 때 신경 쓴 부분이 설명이었다. 고체 샴푸라는 개념이 낯설 수 있기 때문에 고체 샴푸가 왜 비누가 아니고 샴푸인지, 사용해보면 어떤지, 이것이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알리는 데 주목했다.

박 부대표는 "화장품 회사에서 전략 총괄을 하면서 제조사들이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하는데 실패하는사례를 많이 봤다"며 "동구밭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선 제조와 브랜드 조직을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고 판단해 필요할 땐 함께 회의하지만 평소엔 다른 회사처럼 움직인다"고 말했다.

올해 기준 매출에서 자체 브랜드 판매 비중이 50%에 육박한다. 내년에는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표는 "여전히 OEM, ODM이 중요하지만, 일정 시점에 이르러 자체 브랜드가 우리의 차기 성장 동력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동구밭은 제품 카테고리를 기존 피부 세정 제품에서 세탁 세정제, 화장실 청소용품, 방향제 등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소셜 벤처 성장 위한 제도적 뒷받침 필요
동구밭과 같은 고용 모델 회사 더 나왔으면

'동구밭'하면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들이 가장 핵심으로 삼는 키워드는 발달장애인 고용이다. 현재 약 8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그 중 절반 가량이 발달장애 사원이다. 전체 직원의 50%를 발달장애인으로 채용하는 것을 내부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비장애 사원이 필요한 경우 장애 사원을 먼저 채용하고 비장애 사원을 뽑는 방식으로 비율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비율만 맞추는 게 아니라 이들이 지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든다. 공장 위치를 선정할 때도 발달장애 사원들이 원활히 출퇴근할 수 있도록 지하철 역에서 도보 20분 내에 있는 곳을 우선시 한다.

출처 동구밭

매년 2배씩 성장하고 있지만 노 대표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현재 고용 모델을 유지하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할 방법에 대해 고심 중이다.

"과연 미션이 장애인 고용인 회사에 투자할 곳이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투자 안 받고 운영했어요. 감사하게도 매출을 내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구조가 일찍 만들어졌거든요. 앞으로 매출 1000억 원대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인데 그러려면 공장 증설 등 투자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기업이 과연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SG가 키워드로 떠올랐지만 민간에만 맡겨서는 사회적기업이 크게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노 대표의 현실적 고민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령 기업이 낸 장애인고용부담금을 기금 형태로 쌓기보단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에 지원하는 게 장애인 고용을 현실적으로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월 평균 상시 1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고용인원의 3.1%를 장애인으로 채용해야 한다. 채우지 못할 경우 이행하지 못한 수에 부담기초액(고용의무이행수준에 따라 다름)을 곱해 부담금을 납입해야 한다. 2020년 말 기준 장애인고용기금 규모는 1조600억원에 이른다.

노 대표는 "장애인 고용을 늘리려면 다양한 영역에서 동구밭과 같은 고용 구조를 가진 회사가 나와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정책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작 박은애
디자인 조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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