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 대선후보 "EU와 불법 이민자에 뺏긴 프랑스를 되찾겠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입력 2021. 12. 6. 06:09 수정 2021. 12. 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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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열린 제무르의 '대선 출정식' 르포
20~30대 젊은 지지자 40% 넘어
'제무르' 이름 불릴때 마다 열광
2022년 프랑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극우 성향의 언론인 에릭 제무르가 5일 파리 외곽 빌팡트의 파크데젝스포지시옹에서 열린 첫 파리 집회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AFP

“제무르 르 프레지당! (제무르를 대통령으로!)”

내년 4월 벌어지는 프랑스 차기 대통령 선거의 다크 호스, 에릭 제무르의 첫 파리 집회는 시작 전부터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5일(현지시각) 오후 행사장인 파크데젝스포지시옹(전시공원) 6번 홀 안에는 행사 1시간 전부터 이미 수천여명의 열성 지지자가 자리를 잡고 앉아 계속 프랑스 국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제무르는 그는 극우 성향 언론인 출신으로, TV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반 이슬람과 반 이민, 반 EU(유럽연합) 등을 주장해 큰 주목을 받으며 대선 후보 물망에 올랐고, 결국 지난주 출마를 선언했다.

인파는 행사 시작이 가까워지자 순식간에 몇 배로 늘었다. 주최 측은 방송으로 “1만3000여명 이상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누군가 “에릭 제무르를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를 외치자 사방에서 벌떼같이 “와아”하는 함성이 일더니, 이 구호가 행사장 전체에서 10여 차례 이상 울려퍼졌다.

지지자 상당수가 대부분이 중장년층일 것이란 예상은 편견이었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40% 이상을 차지했다. 드문드문 10대들도 보였고, 60대 이상의 노년층도 많았다. 상대적으로 40~50대가 적어 보였다. 이민·난민 문제로 인한 일자리 문제, 사회 질서와 치안 문제 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세대가 젊은층과 노년층이라는 방증이다. 유색 인종도 없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백인 남성과 여성이었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사람도 10명 중 2~3명에 달했다. 행사 진행 요원이 마스크가 잔뜩 든 상자를 가지고 자리 사이를 오가며 “마스크를 꼭 써달라”며 당부하고 있었다.

5일 파리 외곽 빌팡트의 파크데젝스포지시옹에서 열린 2022년 프랑스 대선 후보 에릭 제무르의 파리 집회에서 한 아프리카계 지지자가 "에릭 제무르를 대통령으로"라고 쓴 구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AFP

에릭 제무르측은 행사 사흘 전인 지난 2일 장소를 파리 시내 19구에 있는 제니스(Zenith) 실내 공연장에서 파리 외곽의 이곳 전시공원으로 옮겼다. “행사 참가자가 당초 예상했던 5000여명에서 1만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파리 시내에서 에릭 제무르의 정치 집회에 반대하는 진보·좌파 단체들의 시위가 잇달아 열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교통 혼잡과 함께 만약에 있을지 모를 충돌 사태를 피하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행사장 밖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듯 시위 진압용 장비를 갖춘 경찰들이 행사장을 향하는 길목마다 지키고서 신분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이번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극우가 득세하면서 좌파 지지율은 크게 낮아진 상태다. 지난달 28일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의 여론조사에서 에릭 제무르는 14~15%의 지지율을 얻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25~28%)과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19~20%)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좌파를 대표하는 사회당 이달고 시장의 지지율(6%)의 두 배가 넘는다.

본격적인 행사는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늦어진 4시가 넘어서야 막을 올렸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에릭 제무르의 프랑스 지역 순방을 보여주는 화면이 나오자 행사장의 군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또 다시 국기를 흔들며 “제무르!”를 외쳤다. 혼잡한 상황 속에 영상이 끝나고 무대 위로 이날의 연사들이 올라오자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하지만 기대했던 에릭 제무르가 아닌, 그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찬조 연설이 시작되자 당장 야유가 쏟아졌다. 첫 연사로 나선 젊은 정치인 비제이 모나니(Monany)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연설 내내 야유가 쏟아지다, 그가 ‘에릭 제무르’를 언급할 때만 함성과 박수가 일었다.

오른쪽 위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두 팔을 벌린채 에릭 제무르에게 뛰어들고 있다. 이 남자는 에릭 제무르의 목을 낚아채자마자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끌려나갔다. /연합=AFP

국민운동 대표 로렌스 트로쉬에도 야유가 쏟아졌다. “공화당은 꺼져라” 같은 욕설도 쏟아졌다. 그는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에릭 시오티 하원의원이 발레리 페크라스에 밀려 낙선하자, 공화당 지지에서 에릭 제무르 지지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가 빅토르 위고의 글을 인용해 “자유를 질서로 완성시키고, 질서를 자유로 완성하는 이가 오리라”면서 “민중을 사랑하고, 프랑스를 사랑하는, 바로 그런 대통령 후보가 에릭 제무르”라고 하자 순식간에 함성과 박수가 쏟아지며 분위기는 일변했다. 뒤이어 그가 “프랑스에 가해지는 유럽연합(EU)과 EU집행부의 제국주의적 독재”를 언급하며 “에릭 제무르가 그 대안”이라고 외치자 행사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총 8명에 이르는 정치인들의 지지 연설로 청중들의 인내심이 다해 갈 때쯤, ‘프랑스의 영광스런 순간’과 ‘투표를 통한 혁명’을 암시하는 비디오가 나오고, 드디어 제무르가 등장했다. 행사장 뒤편에서 에릭 제무르가 모습을 드러내자, 행사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러 퍼졌다.

하지만 그가 지지자들 사이를 헤치고 무대 위로 향해가는 순간, 갑자기 한 남자가 덤벼들며 그의 목을 낚아챘다. 제무르가 중심을 잃자 주변의 경호원들이 그를 부축했고, 제무르에게 달려든 남자는 경호원과 지지자들에 둘러싸야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상에 오른 제무르가 두 주먹을 꽉 쥐고 지지자들을 향해 양팔을 들어올리며 “오늘 이 자리에 1만5000명의 애국자가 왔다”면서 “극좌 세력의 위협과 언론의 거짓 선동에 흔들리지 않고 이곳을 찾아준 올바른 정치관과 용기를 갖춘 사람들”이라고 말하자 또다시 그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행사장을 뒤흔들었다.

2022년 프랑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극우 성향의 언론인 에릭 제무르가 5일 파리 외곽 빌팡트의 파크데젝스포지시옹에서 열린 첫 파리 집회에서 자신의 대선 운동 명칭인 ‘재수복(Reconquête)’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AFP

그는 이날 약 50여분간에 걸쳐 그간 자신이 해온 주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지난 5년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이른바 다문화·다양성 정책과 친 EU 정책으로 인해 이슬람과 불법 난민이 더 극성을 부리게 되었고,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이 땅의 주인인데도 이민자와 외국인들의 뻔뻔함에 눌려 오히려 자신들이 이방인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의 자랑스런 문화와 문명이 파괴되고, 프랑스라는 나라는 빈 껍데기가 됐다는 것이다.

제무르는 또 “오늘 여러분의 지지에 힘입어, 우리는 이제 빼앗긴 프랑스를 다시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면서 자신의 대선 운동 명칭이자 당(黨)의 이름인 ‘재수복(Reconquête)’을 공개했다. 그는 “프랑스의 경제, 프랑스의 안보, 프랑스의 주권, 프랑스의 정체성, 그리고 무엇보다 프랑스라는 나라를 다시 되찾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여러분 모두가 이 운동이 동참해 달라”고 했다.

이날 행사는 프랑스 외에 유럽 내 여러 국가의 관심을 끌었다. 이탈리아 라이(Rai)와 독일 DW, 러시아RT, 스페인 RTVE 등 유럽 각국 TV매체들의 취재가 치열했다. 한 70대 여성 지지자는 외신 카메라를 모아 놓고 “지금 이 나라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젊은이들의 일자리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뺏아가고,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노인을 구타하고 돈을 갈취하고 있다”면서 “에릭 제무르가 이 모든 상황을 바꿔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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