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비전 그란 투리스모,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가득 담다


반짝이는 헤드램프와 잔뜩 부푼 펜더, 부드럽게 흐르는 루프라인. 세계적인 스포츠카 제조사 포르쉐의 특징이다. 2도어 쿠페와 세단, SUV, 순수 전기차 등 형태는 다양하지만, 모두 설립 당시부터 고집해온 포르쉐만의 색깔을 품고 있다. 그런데 최근, 포르쉐 디자인의 ‘정석’을 살짝 벗어난 콘셉트카가 나타났다. 바로 포르쉐 비전 그란 투리스모(Porsche Vision Gran Tourismo)다.

이 순수 전기 콘셉트카는 소니의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에 등장할 예정이다. 즉,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가상의 스포츠카다. 그란 투리스모 모델은 지금까지 메르세데스-벤츠와 맥라렌, 재규어, 푸조, BMW, 현대 등 다양한 제조사가 발표해왔다. 의미 없는 1회성 콘셉트카들이 아니다. 디자인과 파워트레인 등에 각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담고 있다.



따라서 포르쉐 디자이너들도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우선 둥글둥글한 헤드램프부터 버렸다. 타이칸의 주간 주행등만 쏙 뽑아낸 모양새다. 순수 전기차답게 과격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없다. 마주 오는 공기를 다스릴 통로만 범퍼와 램프 양 끝에 뚫었다. 뒷모습은 비교적 익숙하다. 좌우로 길게 자리한 리어램프와 빵빵한 뒤 펜더가 영락없는 포르쉐다.


운전석에 타는 방법은 평범하지 않다. 앞 유리와 지붕을 통째로 열어야 하는데, 자동차보단 오히려 전투기에 가깝다. 덕분에 유리 및 차체 패널 경계선이 줄어 부드러운 곡면이 한층 돋보인다. 실내는 군더더기 없는 경주차 분위기로 꾸몄다.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와 티타늄 구조물을 엮어 만든 대시보드에 레이스를 위한 필수 부품만 남겼다. 각종 버튼은 운전대 위로 자리를 옮겼다.


다만 포르쉐의 전통은 그대로 지켰다. 투명한 커브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속 원형 다이얼이 좋은 예다. 타이어 공기압과 현재 속도, 배터리 잔량, 남은 주행거리 등을 직관적으로 띄운다. 운전대 왼편 시동 버튼도 마찬가지. 과거 르망 레이스에서 재빨리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다. 주행 모드 다이얼은 오늘날의 포르쉐처럼 운전대 위에 남겼다.

파워트레인은 경이로운 수준. 최고출력 1,115마력 전기 모터를 심어 네 바퀴를 굴린다. 지난 9월 공개한 1,088마력 미션 R 콘셉트보다 한수 위다. 부스트 모드와 런치 컨트롤까지 쓰면 1,292마력까지 치솟는다. 이를 통해 0→시속 100㎞까지 2.0초, 시속 200㎞까지는 5.4초 만에 도달한다. 배터리 용량은 87㎾h며, 1회 충전 주행거리는 WLTP 기준 500㎞다.

정작 포르쉐는 성능보다 ‘디자인’에 더 만족스러워하는 듯하다. 흔히 양산차 디자인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싸운 결과물이라고도 부른다. 멋진 비례를 따르다 보면, 부품을 도저히 집어넣을 수 없을 정도로 내부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 그러나 포르쉐 디자이너들은 양산 계획이 없는 전기 스포츠카를 그려내면서, 머릿속에 담아뒀던 상상력을 제약 없이 뽐낼 수 있었다. 마이클 마우어 부사장은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창조적인 과정을 경험하기에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포르쉐는 EA 게임즈의 독점 계약이 끝난 2017년부터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에 합류했다. 포르쉐 비전 그란 투리스모는 내년 3월 출시하는 ‘그란 투리스모 7’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 서동현 기자
사진 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