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AI가 쓴 장편소설? "구성은 사람이, AI는 대필 작가"
[경향신문]

출판사 파람북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AI)이 쓴 장편소설을 출간했다고 25일 밝혔다. 국내에서도 2018년 AI를 이용한 엽편소설 공모전이 열린 적 있지만, AI가 단행본 장편소설 작가로 ‘데뷔’하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라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다.
파람북은 AI 소설가 ‘비람풍’이 쓴 장편 <지금부터의 세계> 출간 기자회견을 이날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었다. 비람풍은 스타트업 ‘다품다’가 개발한 AI로, 개발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김태연 다품다 대표가 ‘소설 감독’ 자격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AI 소설이 시도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러시아에서 AI가 쓴 단행본 소설이 나왔고, 2016년 일본에선 AI가 쓴 단편소설이 문학상 1차 예심을 통과한 일도 있었다. 국내에서도 2018년 KT가 주관하는 ‘인공지능 소설 공모전’이 열렸다. 다만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이번 소설이 독보적 수준이라는 것이 출판사의 설명이다. 파람북은 “명망 있는 중견 소설가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작”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AI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7년간 작업했기에 감회가 남다르다”며 “문학적 평가는 독자 몫이지만, 한국 소설 폭을 넓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품다가 개발했다는 AI가 소설 전체를 창작한 것은 아니다. 수학·컴퓨터공학 전문가인 김 대표가 주제와 소재, 배경, 캐릭터를 설정하고 스토리보드를 짰다. 도입부와 서문, 후기도 그가 썼다. AI가 한 것은 문장 집필로, ‘대필 작가’에 가깝다. 다만 문장력이 거의 교정을 보지 않아도 될 수준이고, 고유한 문체도 어느 정도 구현 가능한 수준이란 설명이다. 김 대표는 “놀라운 것은 대필 작가의 수준이 때론 의뢰인을 아연실색하게 할 정도”라며 “앞으로 머지않은 시일 내에 인간 작가가 집필이라는 작업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소설 쓰기’의 시대가 아닌, ‘소설 연출’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출판사 측은 “문학사의 새 장을 여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홍보했지만, 정작 이날 회견에서 AI 개발 과정과 주체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김 대표는 자연어 처리(NLP) 스타트업 ‘나매쓰’와 협업해 소설을 쓴 AI를 개발했다고 밝혔지만, ‘나매쓰’는 가명으로 실제 협업한 업체 이름은 “그쪽에서 원치 않는다”며 밝히지 않았다.
AI에 사용된 기술이나 학습한 데이터의 양, 집필 방식, 투입된 자본금 규모 등에 대한 답변도 거부했다. “기술은 노하우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기본적 설명과 검증 없이 이 소설을 AI가 썼다는 점을 독자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내가 다 감수할 부분”이라고 답했다.

1960년생인 김태연 대표는 <폐쇄병동> <그림 같은 시절>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등을 출간한 작가다. 연세대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했고, 대학 4학년 때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는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에 참가해 수학자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AI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이듬해 AI 소설 스타트업 ‘다품다’를 출범시켰다고 했다.
소설은 수학자 등 다섯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자리에서 수학을 매개로 존재의 비밀을 탐구하는 내용이다. ‘비람풍(毘嵐風)’이라는 이름은 우주 성립의 최초와 최후에 분다는 거대한 폭풍이라는 뜻이다. 문학사에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불러일으킨다는 취지로 작명했다고 한다. 소설가 이문열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가본 사람만이 창작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이 책의 추천사를 썼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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