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한 정의: 고(故) 변희수 하사 전역처분 취소 판결
작년 1월 22일 육군본부는 군 복무 중 성확정(전환) 수술을 받은 고 변희수 하사에게 강제전역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아직 ‘법적으로’ 남성이었던 변희수 하사를 성확정수술을 받은 여성이 아닌 ‘음경/고환결손’, 즉 신체가 훼손된 남성이라고 판단한 지점부터가 잘못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변 하사 전역처분 취소 판결의 의미를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박한희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변 하사는 육군을 상대로 전역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 결과를 보지 못하고 올해 3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변 하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7개월이 지난 10월 법원은 육군의 전역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복잡한 법리도, 육군의 판단을 정당화할 어떠한 여지도 없는 분명한 판결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허무합니다. 군은 자신의 잘못을 이제라도 깨닫고 변희수 하사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합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피고(육군참모총장)가
망 변희수에 대하여 한
2020. 1. 23.자 전역 처분을 취소한다.”
10월 7일 법정에서 재판장이 위 주문 낭독을 들으며 정말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판단이 이루어졌다는 안도감, 그럼에도 그 판결이 나오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가 함께 하지 못했다는 슬픔, 이후에 남겨진 과제에 대한 고민 등이 복합적으로 떠올랐다. 아마 법정 밖에서 그리고 언론 등을 통해 결과를 지켜본 많은 시민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2020년 1월 16일, 육군에서 성확정수술(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군인에 대해 전역심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당초 A하사로만 알려졌던 그는 1. 22. 전역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통해 ‘변.희.수.’라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며,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계속 남고 싶다고 호소하였다. 그럼에도 1월 23일 육군은 변희수 하사에게 전역처분을 내렸다. 성확정수술을 받은 것이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사유인 ‘음경/고환결손’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변희수 하사는 인사소청을 제기했으나 기각을 당해 2020년 8월 11일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소송제기 후 400여일이 지나 마침내 법원은 육군의 전역처분이 위법하여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의 우여곡절에도 정말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해당 판결의 주요 쟁점과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소송수계(소송 이어받기) 인정한 이유
소제기 후 약 8개월이 지나 2021년 4월 15일 첫 기일이 진행된 재판은 시작 전부터 그 진행이 가능할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너무나도 안타깝게도 소송의 원고인 변희수 하사가 망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소송 진행 중에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에 민사소송법은 ‘소송수계’라는 절차를 두고 있다. 상속인이나 법률에 따라 당사자를 이어 소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소송을 이어받아서 진행하는 절차이다. 이 사건에서는 변희수 하사의 부모님이 상속인으로서 새로운 원고가 되어 소송수계 신청을 하였다.
문제는 해당 재판에서 다투는 것이 변희수 하사의 군인으로서의 지위이며, 이는 타인이 상속할 수 없는 일신전속적인 것이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상속인이 이를 이어받아 재판으로 다툴 수 없고 그렇기에 소송을 종료해야 한다는 것이 피고 육군 측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법원 역시 군인으로서의 지위가 상속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전역처분이 취소된 경우에는 변희수 하사가 전역처분이 있었던 2021년 1월 23일 후로 계속해서 복무한 것이 인정되고, 따라서 그 기간의 복무에 대한 급여를 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급여청구권은 재산으로서 상속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소송수계를 인정하여 전역처분의 위법성을 다투는 것이 원고들의 권리를 두텁게 보장하는 것이라 보았다.
나아가 법원은 변희수 하사 외에도 군 내에서 트랜스젠더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성확정수술을 받고 전역처분을 받는 일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므로 행정의 적법성 확보와 그에 대한 사법통제, 국민의 권리구제 확대 등을 위해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사건을 하나의 예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 구조 속에서 지금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명쾌한 판결: 여성 변희수에게 남성의 심신장애 사유 적용한 것은 위법
이렇게 소송수계를 인정한 법원은 육군의 전역처분이 위법한지 여부에 대해서도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판단을 내렸다. 변희수 하사는 전역심사 당시 법률적으로 여성으로 평가되어야 하는데, 육군이 남성의 심신장애 사유인 ‘음경/고환상실’을 적용한 위법이 있다는 것이다. 즉, 애초부터 사유 자체를 잘못 적용하여 전역처분을 내린 이상 다른 문제를 살펴볼 것도 없이 그 전역처분은 위법하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변희수는 여성이므로 남성의 심신장애 사유를 적용할 수 없다. 한 줄로 요약될 수 있는 판결의 요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적지 않다. 육군이 변희수 하사에 대해 남성의 심신장애 사유를 적용한 이유는 전역심사 당시 변희수 하사가 아직 법원의 성별정정 결정을 받지 못하여 법적으로는 남성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즉, 군은 변희수 하사의 성별정체성 및 신체상태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신분증상의 성별에 따라 기계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변희수의 성별을 여성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 변희수가 성정체성장애 또는 성전환증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았고, 별다른 후유증 없이 회복이 된 점
- 수술 이후 여성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성정체성을 인식하고 있던 점
- 사회통념상으로도 변희수를 여성으로 볼 수 있는 점
- 전역처분 이후 2020년 2월 10일 청주지방법원이 변희수의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정하는 등록부정정(성별정정) 허가했고
- 피고(육군)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던 점
위와 같은 점들에 비추어, “전역처분 당시 변희수의 성별은 여성으로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법원은 보았다. 즉, 법원은 신분증상의 형식적인 성별이 아니라 변희수의 성정체성, 신체 상태, 사회 생활 등 정신적·신체적·사회적 요소를 종합하여 그 성별을 판단하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변희수를 단지 고환/음경수술을 받은 남성으로 보고 전역처분을 내리고, 재판 진행 과정에서도 계속적으로 그의 성정체성을 부정하며 명예를 훼손해 온 육군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기도 하다.
판결 이후의 과제들
마지막으로 법원은 트랜스젠더가 성확정수술을 받은 후 군복무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입법적·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 말처럼 현재 트랜스젠더의 복무와 관련하여 어떠한 정책도, 기본적인 연구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이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논의와 대응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해당 판결 이후 국방부와 육군은 항소를 통해 무익한 법정다툼을 이어가겠다며 법무부에 소송지휘를 건의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가 항소포기를 지휘함으로써 이 판결은 확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어떠한 사죄도 없던 국방부와 육군이 이후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힘을 보태어 이 변화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변희수 하사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했던 이 말은 올해 초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추모행동을 했을 때 외친 구호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용기가, 목소리가 만든 변화가 사법부의 마땅한 판결로 이어진 지금, 앞으로 국가는,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누구나 성별·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없이 존엄한 개인으로서 복무하기 위해 군대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이번 판결을 통해 정말 더 많은 논의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고(故)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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