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작가 "실패 덕에 여기까지 왔다"

조회수 2021. 9. 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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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폴 경(Sir Paul)을 만나러 런던에 갑니다. 딸 스텔라 매카트니가 50세 생일 파티를 하거든요. 매년 6개월씩 얼굴을 보다 코로나19로 1년 반이나 못 봤더니 걱정되고, 보고 싶기도 해요.”

2008년부터 폴 매카트니(79)의 전속 사진작가를 맡고 있는 MJ KIM(본명 김명중·49)은 유쾌하게 말했다. 마이클 잭슨, 콜드 플레이, 푸 파이터스, 스팅, 비욘세, 조니 뎁, 내털리 포트먼, 에마 스톤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사진을 촬영한 그는 “재미있어서 푹 빠져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며 수줍게 웃었다.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1일 그를 만났다.

MJ KIM은 “폴 경과 전 세계 공연을 다닐 때 호텔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외로움이 밀려왔다. 어느 날 호텔 창밖의 낯선 풍경을 찍다 보니 영감이 떠올랐고 혼자 있을 때의 유익을 생각하게 됐다. 외로움은 영감의 원천이다”라고 말했다(왼쪽 사진).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그는 숱한 실패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왔다고 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미국 유학을 가려 했지만 비자 발급이 거부됐다. 알고 보니 여대에 지원한 것. 그 정도로 영어를 못했단다.

영국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지만 외환위기로 공부를 접어야 했다. 우연히 사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영국 언론사에 견습사원으로 들어가 기자가 됐다. 게티이미지 유럽지사 사진가로도 일했다.

자신감에 차 2007년 프리랜서가 됐지만 6개월간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스파이스 걸스의 사진 촬영 제안을 받자 무조건 수락했다. 까다로운 다섯 멤버가 모두 만족하는 사진이 나오기까지 그는 찍고 또 찍었다. 스파이스 걸스를 ‘견뎌낸’ 그를 눈여겨본 이가 매카트니의 전속 작가로 추천했다.

“절박함이 상대방의 호감을 사도록 애쓰게 만들었어요. 영어도 짧아 늘 웃으며 몸을 낮추고 최대한 좋은 사진을 찍으려 노력했죠.”

MJ KIM이 촬영한 ① 폴 매카트니 ② 콜드 플레이 ③ 푸 파이터스의 공연 사진. ⓒMJ KIM

매카트니와의 작업이 순조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매카트니는 “MJ, 네 사진이 더 이상 나를 감동시키지 않아”라고 말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매너리즘에 빠진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매카트니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기억나는 작품으로 2010년 매카트니가 미국 의회 도서관이 수여하는 거슈윈 대중음악상을 받으러 백악관에 초청됐을 때 찍은 사진을 꼽았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 매카트니가 나란히 앉았는데, 그의 자리는 뒤에 배치돼 뒤통수만 보였다.

“공연 때는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지만 백악관은 지정한 자리에서만 촬영해야 했어요. 고민하고 있는데 공연을 위해 앞쪽에 둔 드럼이 보이더라고요. 드럼에 원격 카메라를 설치해 한 손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원격 조종기를 계속 눌렀죠.”

오바마 대통령이 매카트니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올리고 활짝 웃는 명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매카트니는 “이건 백악관도 못 찍은 사진이잖아. 이게 바로 ‘록&롤’이야!”라고 외쳤다.

가장인 그는 매카트니와의 계약이 끝나면 생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늘 불안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매카트니의 모든 공연이 중단되면서 우려는 생각보다 더 일찍 현실이 됐다. 그런데 한국 기업으로부터 작업 제안이 들어왔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단편 영화 ‘쥬시걸’도 찍게 됐고요. 지금은 ‘쥬시걸’을 장편영화로 만들고 있어요.”

지난해 그는 서울 을지로 일대 공업소 거리 사장 33명의 얼굴을 찍어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많은 것을 이뤘지만 그는 아직도 얼떨떨한 게 적지 않다고 한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 이날 마련한 ‘CCF2021문화소통포럼’에 참가한 그는 “국내외 명망 있는 분들이 참석하는 행사에 초청받은 게 신기하다”고 했다.

스타들의 무대 위 화려한 모습은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고뇌, 쓸쓸한 뒷모습까지 본 그는 삶이 진솔하게 담긴 얼굴을 찍는 게 참 좋다고 했다.

“가장 잘 나온 사진은 진짜 삶, 진짜 감정이 나타난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직업, 나이에 상관없이 ‘진짜’를 찍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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