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 의례용 공예품 '은제이화문합'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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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예박물관은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은제이화문합'(銀製李花紋盒)이 6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된다고 밝혔다.
은제이화문합은 서울공예박물관 상설전시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중 '대한제국의 공예'(전시1동 2층) 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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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중앙에 대한제국 상징 오얏꽃 문양
신기술 프레스 기법 도입한 최초 사례
문화재위원회 심의 후 등록여부 결정
![은제이화문합. 뚜껑 손잡이 주변으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이 양각돼 있고, 뚜껑 측면에는 만수무강(萬壽無疆)이라고 쓰여있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9/06/ned/20210906090429792tigd.jpg)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서울공예박물관은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은제이화문합’(銀製李花紋盒)이 6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된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재청을 통해 한 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등록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서울공예박물관(종로구 율곡로3길 4)이 소장 중인 이 유물은 대한제국 황실 전용 공예품 전문 제작기관 ‘한성미술품제작소’(1908~1913년)에서 만든 의례용 공예품이다.
이 합은 은으로 만든 뚜껑이 있는 발(鉢)로 음식을 담을 수 있는 탕기(湯器)의 일종이다. 일상용 그릇이 아닌 대한제국 황실의 행사나 의례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됐다. 높이 12.4cm, 지름 18.2cm로 1908~191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은제이화문합은 서울공예박물관 상설전시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중 ‘대한제국의 공예’(전시1동 2층) 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뚜껑 중앙에 연꽃봉오리 모양의 꼭지가 달려있고 꼭지를 중심으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이화문장)이 화려하게 양각돼 있다. 뚜껑 측면에는 ‘만수무강(萬壽無疆)’이 고전적인 전서체로 도금돼 장식되어 있다. 문자와 문자 사이에는 도교 사상을 담은 칠보문양이 새겨져 있다. 동체에는 글자 ‘길상여의(吉祥如意)’를 전서체로 넣었다.
![은제이화문합. [서울공예박물관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9/06/ned/20210906090431074ltdm.jpg)
‘은제이화문합’의 바닥면에는 ‘한성미술(漢城美術)’이라는 상표가 새겨져 있어 제작처와 제작시기를 규명할 수 있다. ‘은제이화문합’ 외에 국내에 현존하는 ‘한성미술’ 제작 공예품은 5점에 불과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1점(‘은제한미명초두’),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3점(‘한성미술명발’, ‘한미명이화문잔대’, ‘한미명이화문잔’), 충남역사박물관 기탁보관 1점(‘한미명이화형잔탁’) 등이다. 이밖에 일본 학습원 대학에 소장품이 있다고 전해진다.
은제이화문합은 당시 해외 신기술인 프레스 기법을 도입해 만든 최초 사례다. 프레스 기법은 공예품의 형틀을 만든 뒤 강한 압력으로 금속판을 눌러 형태를 만드는 것으로 오늘날 그릇 제작에도 사용한다.
한성미술품제작소의 후신인 ‘이왕직미술품제작소’(1911~1922년)에서 제작한 ‘은제이화문탕기’(국가등록문화재 제452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와 비교해보면 ‘은제이화문합’의 형태‧문양구성 등이 유사하게 이어지지만, 프레스 기법이 아닌 전통방식으로 회귀, 단조기법으로 제작해 공예사적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은제이화문합. [서울공예박물관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109/06/ned/20210906090432362tsot.jpg)
당시 매일신보 기사(1911년 2월 23일)에 따르면 대한제국은 ‘조선의 고유한 전통적 공예미술의 계승과 진작을 위해 제조법은 개량할지라도 의장(意匠)은 모두 조선식으로 할 것’이라는 취지로 한성미술품제작소를 설립했다. 이후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조선미술품제작소’ 등으로 점차 민영화된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는 한성미술품제작소가 내홍을 겪으면서 새로 개편된 공예제작 공장으로 1922년까지 운영됐다.
서울공예박물관은 “대한제국 황실이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조선왕실 공예품의 형태‧장식을 계승함으로써 정통성 확립에 적극적으로 나섰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은제이화문합’은 근대 공예제작기술과 산업화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사례로 우리나라 금속공예 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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