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여행하고 노래하라?..안전한 '요즘 예능' 작법 따른 김태호PD '먹보와 털보'
[경향신문]

“야, 너무 좋은데?” 지난 11일 공개된 넷플릭스 <먹보와 털보>에서 비(정지훈)와 노홍철은 연신 “너무 좋다”고 경탄한다. 좋지 않을 리가 없다. 두 사람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누비는 여행코스는 멋진 경관, 맛있는 음식, 좋은 음악까지 감각적 만족을 주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먹보와 털보>는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MBC 김태호 PD의 ‘넷플릭스 데뷔작’으로 눈길을 모았다. 김 PD는 비와 노홍철 간 친분의 의외성,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캐릭터를 지켜보는 재미가 프로그램의 시청 포인트라고 언급했다. 거기에 시각·청각·미각 요소를 ‘안전장치’로 더했다. 풍광은 아름답고, 음악은 서정적이며, 공들여 찍은 음식 영상은 식욕을 자극한다. 김 PD는 “오아시스 같은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즐겁지 않을 수가 없는 이 프로그램은 말초감각 자극으로 꽉 차서 역설적으로 공허하다. 예능 프로그램은 여러 종류의 재미를 추구할 수 있고, 여행 예능과 ‘먹방’ 예능이 주는 감각적 흥미는 시청자에게 ‘먹힌다’는 것이 검증됐다. 중요한 건 그런 프로그램이 이미 충분히 많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선은 그 너머로 향한다. 여행을 다니며 식도락을 즐기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김 PD의 이름은 그런 기대를 받을 만큼 충분히 유명하다.

하지만 <먹보와 털보>는 기존 예능 프로그램에도 쓰이던 ‘여행’ ‘식도락’ ‘음악’이라는 흥미 요소를 더 세련되게 보여주는 선에서 그쳤다. 여행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정성 들여 찍었고, 요리 프로그램 못지않은 그림으로 밥상을 담아냈다. 음악인 이상순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했고, 총 10편의 프로그램에 10곡이 쓰였다. “멋있다” “맛있겠다” “좋겠다” 외에 시청자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달리 없다.
김 PD는 두 출연자의 캐릭터가 새로운 재미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화려한 맛과 멋으로 꽉 찬 러닝타임에 두 사람 간 관계와 작용이 끼어들 공간은 협소해 보였다. 김 PD는 두 사람 간 친분에 대해 “연예계 톱티어(비)와 홍철이가 어떻게, 왜 친하지?”라는 호기심이 들었다고도 했는데, 이 친분의 의외성은 시각·청각·미각의 향연에 금세 휘발된다. 대신 두 사람의 캐릭터는 김 PD의 전작들에서 각자 보여준 선을 넘지 않는다. 자기관리가 철저하지만 어딘가 덜떨어져 보인다는 비의 캐릭터, 늘 요란한 ‘돌아이’ 노홍철의 캐릭터가 익숙하다. ‘김태호 유니버스’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이효리·이상순 커플이 가끔 심심한 빈자리를 채운다.


‘여행’과 ‘식도락’이라는 재료를 쓰면서도 말초감각 이상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을 시청자들은 이미 보았다. 나영석 PD는 ‘힐링 예능’을 기치로 사람들 간의 관계와 대화를 편안하게 곁들인다. 반면 이 요소들을 고민 없이 버무린 프로그램들은 실패하기 어려운 재료들을 갖고도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다. <먹보와 털보>의 재미도 감각의 형태로만 영상을 겉돌다 보니 ‘먹보’와 ‘털보’가 외치는 말은 “맛있다” “미쳤다” “너무 좋다” “죽인다”의 반복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호의호식을 구경하는 620분 동안 크게 남는 것은 없다.
화면에 자막이 등장하는 방식은 새롭다. 여러 색깔의 자막이 여행지에 입체적으로 덧씌워지고, 인물의 주위에 말풍선처럼 등장한다. 별도로 제작된 ‘털보’와 ‘먹보’ 캐릭터가 영상에 등장하기도 한다. 영상미를 신경 쓴 흔적도 짙다. 탁 트인 시야를 보여주는 드론 촬영, 풍경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색 보정, 길 양옆으로 벚꽃이 흩날리는 컴퓨터그래픽(CG) 등이 눈에 띈다. 이러한 영상미가 바로 김 PD가 넷플릭스 작업에 대해 “그동안 패스트푸드만 만들다가 한정식을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 부분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유 있는 제작환경이 영상미라는 결실을 맺는 데 그친 셈이다. 노홍철의 끈덕진 ‘넷플릭스 구애’는 웃음코드로 보이기도 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자막과 디자인 작업에 훨씬 돈과 시간을 들였다는 생각은 들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풍광 위에 ‘돈칠’을 했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두 출연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쿨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국 예능은 사람 사이 관계와 ‘케미스트리’에서 나오는 재미 요소가 중요하다”며 “정서적 공감대가 바탕에 깔리지 않은 ‘힐링’ 예능이 시청자들에게 소구되지 못했다”고 봤다.
결국 <먹보와 털보>는 볼 만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프로그램이 됐다. 시청자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감각으로만 가득한 ‘오아시스’가 아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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