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기자의 여사친 취향존중 데이트 : 구슬, 이런 매력적인 츤데레를 봤나

오리배에 꽂혀버린 기자는 당장 구슬을 차에 태워 오리배 선착장이 위치한 청라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온몸에 땀이 뻘뻘 흐르는 나머지 기자는 오리배에 꽂혀 “오늘 이거 꼭 타야한다”며 구슬을 구슬(?)렸다. 구슬은 소위 말하는 ‘츤데레’처럼 마지 못해 부탁을 들어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니나 다를까 싫은 척하면서도 마지못해 오리배 선착장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긴다. 이런 매력적인 츤데레를 봤나.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오프시즌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는 바로 ‘영화’다. 선수들의 경우, 시즌 중에는 빡빡한 경기 일정으로 인해 취미생활을 즐기기 힘들고, 오프시즌에는 그간 보지 못했던 지인들도 만나야 하므로 오롯한 취미를 가지기 어렵다. 때문에 가장 만만한 게 영화다.
구슬 역시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유행인 넷플릭스를 보는 걸 ‘진짜 되게’ 좋아한다고. ‘진짜, 되게’라는 표현에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시즌 중에는 이동시간이 길 때 혹은 호텔에 머물 때 영화를 보곤 한다고. 여기까지는 그런가보다 싶다. 근데, 좋아하는 장르가 의외였다. 웬지 로맨스 혹은 코미디를 좋아할 것 같았던 구슬의 취향은 SF판타지란다.
그는 “요즘 넷플릭스 보는 걸 좋아해요. 로맨스나 코미디류의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해요. 판타지류의 영화를 좋아하긴 하는데, 눈물샘을 자극하며 뜨거운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특히 제가 가족 이야기에 유독 약하거든요. 가족을 건들면 눈물이 안 날수가 없어요. 얼마 전에도 ‘귀멸의 칼날’이라는 만화에 빠져서 10번 넘게 돌려 봤던거 같은데 다 울었어요”라고 했다. 코트 위에서 표정 변화 없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걸 보면 웬만한 장면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에게서 ‘아 이런 면모도 있구나’ 싶었다.
그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에서 코쥬로가 싸우다 죽는데, 그 때 탄지로가 울면서 소리치는 장면이 기억에 제일 남아요. 그걸 보면서 엉엉 울었어요. 그리고 그 중 코쥬로가 망을 불태우라고 한 말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귀멸의 칼날 이건 꼭 봐야해요”라며 기자에게도 추천했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집에서는 어떤 딸인지도 궁금해졌다.
“상전이 따로 없죠(웃음). 집에 있으면 밥 다 될 때까지 쇼파에 누워서 기다리고 아직은 철없는 어린 애에요”라고 말하더니 갑자기 감정이 복받치는 듯 고개를 잠시 숙이기도 했다. 받은 사랑을 깨닫는데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일찍이 알고서 그 사랑을 다시 나누는 데 시간과 정성을 쏟는 모습에서 깊고도 넓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저희 집 삼 남매 중 둘째에요. 요즘 와서 느끼는 건데 처음 농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위에 언니와 밑에 동생이 저 때문에 희생을 많이 했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집에서 항상 모든 관심은 저에게 쏠렸거든요. 아마 언니, 동생이 알게 모르게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을 거에요. 이제는 제가 그동안 가족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돌려주고 싶어요.”
여기서 잠깐. 앞서 말했듯이 코트 위에서 워낙 포커페이스인 구슬. 몇 시즌에 걸쳐 코트에서 혹은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그를 봤지만, 웃는 모습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도 잘 알고 있다. “사람 성향인거 같아요. 뭐랄까 제 성격도 성격인데 어렸을 때부터 좀 얼어 있던 게 가장 컸던 거 같아요. 오죽했으면 팬들께서 제가 경기장에서 웃으면 그 장면을 캡처해서 ‘구슬 웃었다’라며 희귀템처럼 갖고 계실 정도이니 말이죠. 저도 코트 안에서는 좀 더 밝게 임하려고 하는데, 막상 또 코트 안에 들어가면 그게 쉽게 되지 않네요. 하하.”

‘미적 감각’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림 그리기가 취미라는 구슬은 인스타그램 부계정(@kubuk_e)을 통해 평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업로드하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아마 농구공을 잡지 않았다면 화가를 꿈꾸고 있었을 거에요. 하하.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 시작한 건 올해 초였던 것 같아요. 아 왜 계정 아이디가 구북이냐고요? OK저축은행 시절 정상일 감독님께서 ‘너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거북이’라며 별명을 붙여주셨어요. 제가 선수들 사이에서 좀 느린 편에 속하거든요. 처음에는 듣기 좀 그랬는데, 자꾸 듣다 보니 익숙해지는 거에요. 그림은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요. 주로 그날 제 기분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편이에요. 아, 그런데 요즘 들어 한 가지 고민이 생겼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에 주위에서 ‘나도 좀 그려달라’며 부탁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지난번에 이훈재 감독을 그린 뒤에는 선수들 사이에서도 부탁 쇄도가 들어와 더 난감했던 적도 있고요. 취미는 취미에서 끝나야지 일이 돼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리려고 해요.”


구슬과의 인터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또 있다. 바로 친구다. 농구팬들 사이에서 구슬은 1994년생 동갑내기 KB스타즈 김민정, 우리은행 최이샘과 절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매 시즌이 끝나면 함께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만들곤 한다. 이번 오프시즌 휴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 활동적인 성향의 이들은 드라이브를 즐긴다.
“여자농구에 유독 1994년생 선수들이 많잖아요. 다들 친한 편이긴 한데 저희 셋은 어렸을 때부터 워낙 잘 어울리기도 해서 지금까지 우정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은퇴할 때쯤 저희가 결혼 못하면 셋이 강아지 한마리 씩 키우면서 한 동네에서 살자는 얘기까지 해요. 또 세 명 모두 못나기도 했잖아요. 어렸을 때는 누가 더 이쁜가를 놓고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하하. 저희 셋은 어렸을 때부터 허튼 행동 안 하고 건전하게 놀았어요. 지금도 그냥 시간 맞을 때 차 타고 카페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 떨며 노는 편이에요. 세 명 모두 노는 코드가 비슷하기도 해서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세 명이 밖에서 놀면 지출은 누가 더 많이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구슬은 친구들 사이에서 ‘절약의 아이콘’으로 통한다고. “솔직히 세 명 중 지출은 (최)이샘이가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김)민정이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저는 많이 얻어먹고 받기만 하는 거 같아요. 하하. 대신 어디 놀러 가면 운전은 제가 다 하는 편이에요.”
다음 질문으로 화제를 전환하려 할 때, 구슬은 이 인터뷰를 빌어 두 친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애들이 외모적으로 변한 게 없어요. 특히 민정이는 좀 문제에요. 운동선수면 그래도 대중에게 보여지는 직업이고 해서 자기 자신을 꾸밀 줄도 알아야 하는데, 걔는 정말 노력을 안 해요. 제가 늘 민정이한테 말해요. 민정아 ‘넌 코를 해야 된다’라며. 민정이가 사실 얼굴도 작고 비율도 좋아서 조금만 가꾸면 인기가 많을 스타일인데 말이죠. 제가 우스갯소리로 ‘5만원 손에 쥐어줄테니 성형외과 좀 다녀와’라고 얘기하는데, 본인은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얼굴 그대로 살겠다고 하네요. 어쩌겠어요. 얘들아 우리도 좀 바뀌어야 해”라며 친구들에게 바라는 점을 얘기했다.
은퇴는 서른 셋에, 박수칠 때 떠나고파
그의 나이 어느 덧 스물 여덟. 여전히 청춘을 즐길 나이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시기이기도 하다. 구슬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유니폼을 벗는 시기도 내심 정해놓은 구슬이다. 그는 미래 계획과 관련해 “솔직히 선수로서는 길게 보고 있지는 않아요. 딱 33살에 은퇴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정)선화 언니랑 친한데, 선화 언니가 말년에 무릎에 물이 차서 고생하셨던 걸 생각하면 최대한 좋은 기량을 펼치고 있을 때 은퇴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시기가 33살인 것 같아요. 5년 정도 남았는데 그 때까지는 적어도 구슬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바짝 불태워보려고요”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최근 떠오르는 ‘욜로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욜로(YOLO)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그의 말에서도 느껴지듯, 인생관도 ‘좋아하는 걸 하고 살자’는 주의였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33살 은퇴 이후에는 어떤 삶을 그리고 있을까.
“제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은퇴 후에는 카페 하나 차려서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커피 내리면서 손님 맞이를 하고 싶어요. 내 시간을 가지고, 무기력할 때 그림도 그리고 힐링을 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아 정말 상상만 해도 행복하네요.”
“오늘 데이트 어땠나요?”란 기자의 질문엔 “이런 컨셉은 처음이었는데 나름 신선했던 것 같아요. 아 물론 오리배 타는 것만 빼면요. 오늘 오리배 페달까지 밟았으면 아마 서키트 훈련할 때 쓰러졌을 거에요”라고 답했다.(*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뒤 구슬은 곧바로 체육관으로 이동해 고강도 서키트 훈련을 실시했다고. 참고로 이날 오리배 페달은 기자 혼자 열심히 밟았다.) 같은 질문에 기자는 “오늘 데이트를 하면서 많이 가까워 진 것 같아요”라면서도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구슬은 “다행이네요”라며 웃었다.

2013-2014시즌 KDB생명에서 데뷔했던 구슬은 지난 시즌까지 원클럽맨이었다. 한때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KDB생명의 농구단 운영 포기와 OK저축은행의 이름을 달고 뛴 연맹 위탁 운영 기간, 그리고 BNK의 농구단 인수로 시작된 부산에서의 새로운 출발까지. 구단 이름은 바뀌었지만, 같은 구성원들과 한 팀에서 함께 했다.
하지만 지난 5월 하나원큐로 트레이드되면서 새로운 노선으로 갈아타 커리어를 이어가게 됐다. 구슬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자신이 아버지와 지키지 못한 약속을 고백했다. “(하나원큐 이적이)아빠는 조금 서운하셨던 것 같아요. 말로는 ‘잘 됐어 잘 됐어’ 하시는데, 프로 초기 때였나 아빠와 한 약속이 생각나더라고요. 아빠가 당시에 ‘네가 정말로 필요로 해서 다른 팀으로 가는 게 아니라면, 꼭 한 팀에서 커리어를 마쳤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늘 한 팀에서 뛰는 모습만을 바라셨는데, 그 약속이 깨지게 된거잖아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서운해 하시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냉정히 말해 구슬은 아직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한 상태다. 늘 가지고 있는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듣곤 했다. 이제는 꼬리표 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는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하나원큐에서 터닝포인트를 만들고자 한다.
“만년 유망주라는 수식어도 팬들께서 그만큼 저를 좋게 봐주셨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까지 커리어를 돌이켜보면 내가 뭘 보여준 적이 있었나 싶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 감춰왔던 재능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또 이제는 좀 잘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하하. 욕심도 더 크게 가지려고요. 이훈재 감독님께서 오프시즌 훈련 지도를 하시면서 저에게 ‘주도적으로’, ‘욕심을 갖고’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셨어요. 성공, 실패 여하를 떠나 공격 롤도 이전보다 더 많이 가져보려고 해요. 진짜 잘하고 싶어요.”
# 사진_ 홍기웅, 서호민 기자, 본인 제공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