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만족도는 40대 중반에 바닥쳐?.. 커리어의 위기와 마주하는 법

MIT대 언어학 및 철학과 교수인 키어런 세티아는 어느날 문득 사는 게 지겨워졌다. 그는 그가 꿈꿔왔던 커리어를 갖고 있었다.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 종신교수 자리와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를 극복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지만, 시간이 흐르고 해가 바뀌어도 같은 일을 계속할 거란 예감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는 앞에 놓인 커리어가 마치 터널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중년의 위기에 맞닥뜨린 것이다.

세티아 교수는 친구들에게 지금 처한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의 친구들은 농담으로 받아치면서도 자신들이 성공으로 여겼던 순간에 느꼈던 번아웃, 정체감, 후회에 대해 얘기했다. 최근 많은 연구가 대체로 중년이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말한다. 2008년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와 앤드루 오즈월드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청년기에 고점에서 시작한 삶의 만족도는 40대 중반 바닥을 친 뒤 다시 회복하는 완만한 U자 형태를 띤다. 그렇다면 커리어 중년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세티아 교수가 HBR 2019년 3-4월호에 쓴 기사를 통해 알아보자.


왜 중년에는 직업만족도가 떨어질까. 필자의 경험을 비롯해 친구들과 나눈 대화로 여러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삶에 대한 선택권이 줄어든 데 대한 아쉬움, 어쩔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 완수해도 끝없이 대체되는 프로젝트의 압박 등의 요인이 있다. 이럴 때 철학적 도움에 기대보자. 고대와 현대의 철학자들은 우리의 직업이나 커리어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볼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늘 그렇진 않지만 위기는 기회가 된다. 또 지금 그 자리에 머물면서도 좌절과 후회를 치료해 성공을 돕는 방법이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

철학에서 얻은 통찰 중 하나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안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과거에 내린 결정은 발목을 잡는다. 우리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해도, 어떤 선택을 내린다는 것은 다른 대안들을 버리는 결과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선택하지 않았던 삶을 떠올리고 그 상실을 아쉬워하는 시기가 보통 중년이다. 누구나 지난날 자신이 가지 않았던 길을 되돌아본다. 때로는 안도하고, 때로는 후회한다. 철학이 이런 아쉬움과 후회를 받아들이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후회에서 오는 불쾌함을 재구성해 문제를 해결한다. 왜 사람들은 겪지 않은 삶이나 좇지 않은 커리어에 대해 상실감을 느낄까. 우리는 심지어 일이 잘될 때조차 상실감을 느낀다. 각각 다른 선택에 의해 실현된 가치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자리를 제안한 두 회사 중 한 회사를 급여가 높다는 이유로 선택한다면, 선택에 따른 상실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패션업계에서 일할 기회를 포기하고 금융업계를 선택한다면, 설사 옳은 결정이라고 확신하더라도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후회가 뭔가 잘못됐음을 암시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결과가 좋아도 어떤 면에서는 후회가 들 수 있다. 후회는 피해야 할 일이 아니다. 후회는 당신이 많은 활동에 가치를 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금융업 대신 패션업을 선택했더라도 다른 면에서 역시 후회했을 것이다. 아무 후회도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가지 일에 매달려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인생은 질적으로 가난해질 것이다. 상실감이란 다양한 삶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해주는 능력의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실수, 불운, 실패

다른 종류의 후회도 있다. 실수, 불운, 실패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드는 후회다. 모든 커리어에는 방향을 잘못 잡을 때가 있기 마련이고, 어떤 사람은 다른 이보다 그런 일을 더 많이 겪는다. 그러고는 중년이 돼서 그때 그랬어야 한다며 비탄에 잠겨 후회한다. 친구 하나는 기업 변호사가 되기 위해 전도유망한 음악가의 길을 포기했다. 10년이 지난 뒤 그는 직업이 몹시 지겨워졌고, 이제라도 진로를 바꿀 방법을 궁금해하기 보다는 과거의 결정을 바꾸고 싶어 했다.

당시 어떻게 했어야 하고 무엇을 선택했어야 하는가와, 지금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구분해야 한다.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이 두 가지는 명확히 구별된다. 친구가 음악가의 삶을 포기한 일에 슬퍼할 때, 나는 그가 법대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고, 딸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란 사실을 일깨워줬다. 사랑은 후회의 반대편에 달린 균형추다. 우리가 추구하는 우정, 일, 활동에서 얻은 성취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호한 세상이 아닌 분명한 세계에 산다.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을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가정에 반해, 지금의 커리어가 좋다는 구체적 측면을 제시할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애착뿐 아니라 다른 삶이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관계와 성취에 대한 애착도 있다. 물론 후회가 항상 부적절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외부에서 관찰하듯이 자신의 삶을 조망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후회는, 당신이 선택한 커리어에 따르는 소중한 사람, 관계, 활동에 몰입적으로 집중함으로써 소거될 수 있다.

현재에 대한 공허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우리가 U자형 곡선에 나뒹굴 때 마주하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필자에게 가장 큰 커리어 중년의 위기는 과거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현재에 대한 공허였다. 가르치고, 연구하고, 글 쓰는 데 가치를 느끼고 여전히 일은 보람 있어 보였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반복적인 프로젝트에는 뭔가 구멍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은퇴할 때까지 한 가지 일만 할 것 같은 예감에 스스로 무너졌다.

커리어 중년의 위기를 불러오는 한 가지 이유는 실존적 가치, 즉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구하는 대신 해고나 나쁜 결과를 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기분 좋은 활동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다. 직장에서 몇 년 동안 미뤄뒀던 관심 있는 프로젝트에 돌입하거나, 회사 밖에서 좋아하던 취미활동을 재개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라. 취미는 직업보다 덜 중요하겠지만, 실존적 활동은 개선적 활동이 갖지 못한 가치를 지닌다. 인생에 이런 즐거움을 위한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

어떤 커리어 중년의 위기는 프로젝트에 대한 과도한 투자를 유발한다. 프로젝트는 끝없이 다음, 또 다음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은 명확하고 비물질적 의미를 갖는다. 핵심은 우리가 참여하는 활동을 두 종류로 구별하는 것이다.

프로젝트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최종 상태를 목표로 하는 '텔릭(telic)' 활동이다. 텔릭활동은 스스로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고객설명회를 준비하고 발표한다. 거래를 협상하고 계약으로 마무리한다. 콘퍼런스를 계획하고 개최한다. 목표 달성은 만족의 순간을 가져오지만, 그 다음엔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간다. 또 다른 활동은 내재된 목적이 없는 '아텔릭(atelic)' 활동이다. 아텔릭 활동은 고갈되지 않는다. 항상 미래나 과거의 성취로 완성되는 프로젝트의 공허함을 환기시키지도 않는다. 아텔릭 활동은 현재에 충분히 실현된다.

직장에서 우리는 텔릭 활동과 아텔릭 활동을 모두 한다. HR보고서를 작성하거나(텔릭), 동료로부터 피드백을 받는다(아텔릭). 대부분의 텔릭 활동은 의미 있는 아텔릭 활동을 포함한다. 거래를 진행할 때 회사의 성장 전략도 함께 발전시킨다. 콘퍼런스를 개최하면 업계 관계자들과 교류한다. 따라서 당신은 선택권이 있다. 텔릭 활동이나 아텔릭 활동, 즉 프로젝트나 프로세스 중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 방향을 수정해 프로젝트에 덜 집중하면, 현재 진행하는 업무나 효율성을 훼손하지 않고도 현재의 공허함을 없앨 수 있다.


다시 진단의 문제로 돌아가자. 중년의 위기는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법을 바꾸라는 신호가 아니라 커리어에 변화를 줘야 할 때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언제인가. 현재 하는 업무가 당신의 재능과 잘 맞지 않거나, 관심이 달라졌거나, 승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불만을 느끼는 걸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전략을 썼을 때 자기 커리어의 한계를 넉넉히 수용할 수 있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면 커리어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 중년은 늦은 시기가 아니다.

설령 그렇게 방향을 바꾸더라도, 불안을 이겨내고 일의 즐거움을 되살리는 방법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놓쳐버린 것들을 아쉬워하는 감정은 피할 수 없으니 저절로 사라지리라 기대하지 말라. 애착이 후회의 반대편에 있는 균형추라는 사실을 이해하라. 실존적 가치가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삶에 여유공간을 마련하라. 프로젝트나 제품만이 아니라 프로세스에도 가치를 부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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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적 경영 저널 HBR 2019년 3-4월 호
필자 키어런 세티야
정리 인터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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