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낮의 술은 눈부시고 밤의 술은 잔잔하다
술을 마시다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낮의 술’과 ‘밤의 술’을 구분해야겠다고. ‘봄의 술’이나 ‘겨울의 술’보다 이렇게 술을 나누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이쪽이 뭔가 더 인생의 심오함과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한 건 낮의 술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술을 당시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인애플과 코코넛, 패션프루트를 넣었다는 맥주였다. 향기도 좋고 맛도 좋은 그 술을 마시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이거, 낮의 술 같지 않아?” 맥주에서는 열대의 풍부함이 느껴졌기에 나는 생각했다. 이건 낮의 술일 수밖에 없겠다고.
나만의 독창적인 구분법은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낮의 책과 밤의 책으로 책을 구분하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을 듣고 ‘아, 그런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정리하는 뾰족한 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별이나 출판사별로 책을 구분하는 건 싫은데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방황하고 있다. 책이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방 저 방 책이 넘치는 형편이므로 이런 말을 들으면 머리에 전구가 켜진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 사람은 말했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만큼 신났던 적은 없었다고. 한숨도 잘 수 없어 밤낮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건 뭐…. ‘여간해서 읽기 어려운 책을 읽으려면 감옥에 가야 한다’라는 말만큼이나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데,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서다. 책에 나오는 인물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마리클로드.

낮을 위한 책이 있고, 또 밤만을 위한 책이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척이나 공감했다(그녀는 전혀 호감이 가는 인물은 아닌데도 말이다). 더욱이 그녀가 밤만을 위한 책이라며 예를 든 게 스탕달이었다. 스탕달은 밤의 작가라며 일장 연설을 하시는 그녀…. 나도 스탕달을 집었다 밤을 새워서 읽은 적이 있어서 스탕달이 밤의 작가라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또 공감할 수만은 없는 게 ‘일장 연설’이라고 내가 표현한 그녀의 태도 때문이다. 누군가는 스탕달을 낮에 읽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모두가 스탕달을 밤에 읽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사람이 온건하면 지루하지만, 우악스러운 건 고통스럽다. 그런 건 참아주기가 힘들다.
다시 낮의 술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때는 마침 낮이기도 했고, 나는 마셔보지도 않은 그 술을 냉장고에서 발탁해온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남국의 정서에 젖었다. 나는 열대 국가라고 할 만한 데를 가본 적이 없지만 느낄 수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과 뜨거운 바람, 또 원색 파라솔의 흥취를 말이다. 술 속에서 일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밤과는 어울리지 않는 술이었다. 그 술에는 그림자나 어둠, 헤아리기 어려운 복잡함 같은 게 없었다. 나는 그래서 그 술이 좋았다. 명랑하고 단순하고 쾌활하고 상냥한 그 술이 말이다.
낮의 술은 낮술로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둘이 완벽히 일치하는 건 아니다. 낮술은 낮에 먹는 술이고, 낮의 술은 낮의 기운을 가진 술이다. 밤에 오래 깨어 있고 싶다거나 신나게 놀고 싶다면 낮의 술을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무슨 상관인가 싶다. 낮술이라고 하든 낮의 술이라고 하든, 낮에 술을 마신다는 즐거움이 더 하고 덜 하고 한 게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낮술과 낮의 술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분해서 쓰기로 한다.
낮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맥주다. 라거든 바이젠이든 인디아 페일 에일이든 다 좋다. 와인이나 사케보다는 맥주가 낮술에 적합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또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이탈리아나 프랑스에 있을 때를 생각해보면 거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낮술로 와인을 마셨다. 맥주보다 와인 리스트가 풍부하기도 했거니와 아예 맥주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하우스 와인을 한 잔 시켜 홀짝대며 다른 테이블을 보면 잔이 아닌 병으로 시킨 걸 알 수 있었고, 술을 따르며 흡족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오늘은 한 잔만 마셔야겠다는 결심이 흔들리곤 했었다.
그리고 ‘밤의 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겠지. 밤의 술이라고 하면 위스키 아니면 코냑이다. 밤의 풍부함을 잘 풀어내 준다고 할까? 방을 어둡게 하고 소파에 파묻혀 위스키나 코냑 한 잔을 마신다고 생각해보자. 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아니, 술병을 여는 순간 풀려나오는 아로마 향은 단순하지 않다. 그렇기에 맥주처럼 벌컥벌컥 마실 수가 없다. 약간을 입에 흘려 넣고 입안에서 굴리며 조금씩 삼킨다. “목 넘김이 부드럽다” 같은 말은 맥주처럼 들이붓는 술에야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면서.
맥주가 기분을 들뜨게 한다면 위스키나 코냑은 묵직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묵직해져야 잠에 도달할 수 있다. 눈꺼풀이든 의식이든 묵직하게 끌어내려야 한다. 정신의 추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런 술들을 영미권에서 ‘나이트 캡(night cap)’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나이트 캡은 말 그대로 잠잘 때 쓰는 수면 모자다. 어릴 때 봤던, 페로의 동화 ‘빨간 모자'를 그림책으로 만든 버전에는 빨간 모자 할머니를 잡아먹은 늑대도 나이트 캡을 쓰고 있다. 할머니의 나이트 캡을 쓰고 할머니인 척하고 있는 건데, 나는 이 나이트 캡을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오랫동안 말이다.
밤에 손질한 머리가 흐트러질까 봐? 옛날에는 위생 상태가 안 좋았으니까? 심적 안정감을 위해? 등등의 이유를 생각했었는데 최근에 나이트 캡을 쓰는 절대적인 이유는 보온을 위한 거라 들었다. 난방이 되지 않았던 시절의 사람들은 머리를 따뜻하게 감싸며 체온을 보호했다고 말이다. 술이 나이트 캡이라고 불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역시 보온이 아닐까 싶다.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나이트 캡을 마셨던 거라고. 현대인은 그런 이유로 나이트 캡을 마시지 않겠지만 여전히 이런 술들을 나이트 캡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밤의 술’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알고 있다. 오늘은 낮의 술이었던 게 내일은 밤의 술이 될 수도 있다고. 누군가는 나이트 캡을 오전 열 시에 마실 수도 있는데, 그게 나란 법은 없지 않냐고 생각한다. 나이트 캡을 오전에 쓴다고 해도 비난할 수는 없지 않나 싶다. 좀 웃기거나 괴상하기는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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