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항아리에 1억..씨간장, 그 이상의 가치 [푸드 플러스-씨간장의 모든 것]
5년 이상 진간장 중 '좋은 맛' 골라
'맛 지키려는 노력의 시간' 더해져
단지 '오래 묵은간장' 의미는 아냐
씨간장 발효 미생물 '효소 선순환'
햇간장 넣으면 '풍미 더하는 이유'

간장 1리터에 500백만 원? 믿기지 않지만 실화이다. 지난 2006년 한국골동식품예술전에 초대된 간장을 한 대기업 회장집이 1리터에 5백만 원을 주고 구입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한 항아리에 1억 원 값이 매겨지는 이 간장은 충북 보성 선씨 종가의 ‘씨간장’이었다.
지난 2007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때에는 외신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 국빈 만찬에는 ‘350년 된 씨간장’으로 만든 한우갈비구이가 제공됐고, 이에 외신들은 ‘미국 역사보다 오래된 간장’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낯설은 이 ‘씨간장’ 개념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고가에 팔리기도 했지만 사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우리 고유의 귀한 장(醬)문화이다.

보성 선씨 종가집의 간장은 놀라운 가격이 책정될 만큼 오랫동안 지켜온 가문의 솜씨와 정성이 담겨있다. 해마다 콩으로 메주를 쑨 뒤 1년 이상 묵힌 천일염 간수를 섞어 ‘햇간장’을 만들고, 여기에 무려 350년 째 내려오는 ‘씨간장’을 부어 만든다. 충남 논산 파평윤씨 노종파 종가와 전남 담양 장흥고씨 종가에도 이 씨간장이 존재한다. 가문마다 간장 비법을 몇 백 년째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담근지 오래된 묵은 간장을 모두 ‘씨간장’이라 부르지 않는다. 씨간장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오래된 간장’으로 여기는 것이다. 간장의 씨앗이 될 정도로 ‘맛있어야’ 씨간장이 된다.
그래서 씨간장은 짧게는 수년에서 수십 년, 수백 년까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씨간장의 중심에는 ‘맛’이 있고, 그 맛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시간’이 더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씨간장은 ‘오래된 간장’이 아닌,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간장’으로 표현돼야 맞다.
우리나라 명인이나 유명 요리사들은 한식 맛의 비결 중 하나로 이 맛있는 씨간장을 꼽는다. 특유의 감칠맛을 통해 음식의 풍미를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씨간장은 어떻게 수백 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이는 ‘겹장’이라는 방식을 통해 가능하다.
간장은 발효 기간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있다. 막 담근 새 간장은 햇간장, 1~2년 정도 숙성시킨 간장은 청간장, 3~4년 된 간장은 중간장, 5년 이상 묵힌 간장은 진간장이라 한다. 진간장 중에서도 가장 맛이 좋은 것을 골라 오랫동안 유지해온 간장이 바로 ‘씨간장’이다.
간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은 강해지고 염도는 낮아진다. 자연적으로 수분이 증발해 소금 결정과 같은 모양으로 굳으며, 보다 부드럽고 진한 풍미와 단 맛을 낸다. 이러한 씨간장에 새로 담근 햇간장을 붓는 것이 ‘겹장(되메기장)’이다.
마치 커피를 블렌딩하듯, 묵은 간장과 햇간장을 섞으면 종균이 일정하게 퍼져나간다. 즉 겹장을 통해 새로 담근 간장도 씨간장의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빵 반죽을 만들 때 전날 만든 반죽의 일부를 섞어 빵 효모의 씨를 잇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종가에서는 마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것처럼 씨간장을 귀하게 지켜왔다. 지난 2018년부터 청와대 관저의 전통 장을 담당하고 있는 고은정 한국간장협회 이사는 “씨간장을 새로 담그는 간장에 넣으면 발효된 미생물들이 더 많이 모이게 되므로 햇간장의 맛이 깊어지고 더 좋은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햇간장에 씨간장을 더했을 때 풍미가 높아지는 이유는 씨간장에 존재하는 발효 미생물 때문이다. 지난 2019년 한국교통대학교 식품공학과 연구에서는 발효작용을 하는 세균과 곰팡이, 효모 수, 그리고 감칠맛에 영향을 미치는 유리 아미노산(아스파트산과 글루탐산 등)의 함량이 1년 미만 간장보다 7년 정도 숙성할 경우 더 증가했다. 이는 콩 발효시 미생물들이 다양한 효소를 분비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효소들은 뜨거운 열을 가하면 파괴되지만 적절한 환경에서는 효소가 포자를 형성하면서 다시 효소를 분비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며 씨간장의 맛이 끄떡없이 유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 간장의 품질 규격화는 어려운 문제다. 오랜 제조 시간, 그리고 맛에 영향을 미치는 날씨와 온도 차이 때문이다. 특유의 쿰쿰한 냄새도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개량식 양조간장에 효소 활성이 강한 코지(Koji) 종균을 사용하면 이러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연구(2018)가 나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조선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장해춘 교수팀은 전통 씨간장으로부터 향미가 우수한 종균을 추출, 개발해 이를 양조간장에 첨가하자 쿰쿰한 냄새는 사라지고, 감칠맛이 더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 씨간장의 계승 측면에서 발전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장(醬)을 빼고 한식의 맛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간장은 한국적인 맛을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나라의 장 문화는 같은 두장(豆醬) 문화권에 있는 중국과 일본과는 구별된다. 메주를 띄운 다음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종류 장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씨간장을 이용해 겹장의 형식을 거친다는 점이 다르다.
더욱이 간장은 한식에서 된장, 고추장과는 다르게 모든 음식의 ‘간’을 담당한다. 소금처럼 짠 맛만 내지 않고, 감칠맛, 단맛, 신맛 등 복합적인 맛으로 음식의 맛을 살린다. 지난 2018년 국민영양통계에서는 ‘한국인이 주로 섭취하는 식품’으로 쌀, 마늘, 파, 소금에 이어 간장이 5위에 올랐다. 고추장은 16위, 된장 25위를 차지했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이웃과도 그 간장 맛을 공유해왔다. 간장 맛이 이전보다 좀 못하면 잘 숙성된 간장을 ‘젖동냥’ 하듯 구해다가 섞어 먹었던 것이다. 고은정 한국간장협회 이사는 “죽은 조상 귀신이 제삿날 씨간장 냄새를 맡고 온다는 민속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씨간장은 우리 고유의 음식 맛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씨간장은 한 종가와 마을전체를 넘어 오랫동안 전통 한식 맛의 뿌리 역할을 해왔다. 씨간장이 값을 매길 수 없을만큼 상품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이유이다.
육성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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