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우여곡절 많았던 현대자동차 전기차 개발 스토리


지난 6일, 현대차가 경기도 고양에 자리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마스터토크 #헤리티지’를 개최했다. ‘현대 전기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주제로 사내외 전문가와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전기차 개발사와 현대차 초기 전기차 개발사, 헤리티지 시리즈 개발 스토리 및 미래 전기차 라이프스타일 등 총 3부에 나눠서 진행했다. 권규혁 현대차 책임 매니저와 한장현 대덕대학교 교수, 이충구 전 현대차 사장, 이봉호 전 현대모비스 상무, 이성범 당시 전기차 개발 담당자, 하학수 상무(현대 내장 디자인 실장)가 패널로 참석해 전기차의 과거와 미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었다.


①내연기관과 비슷한 시기 등장했던 전기차, 경쟁에서 뒤쳐진 이유는?


1부는 권규혁 현대차 책임매니저와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 겸 대덕대학교 교수가 전기차의 역사를 다루는 시간을 가졌다. 흔히 ‘전기차’ 하면 최근에 만든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100년 넘는 역사를 가졌다. 18세기에 증기기관차가 등장하고, 19세기 후반에 내연기관이 나왔다. 전기차는 내연기관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다.

1900년 미국 판매량에 따르면, 전기차는 38%(1,575대)를 차지할 정도로 흔했다. 40%를 기록한 증기기관차(1,681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긴 충전 시간과 짧은 주행거리가 발목을 잡았지만, 냄새가 적고 변속기가 없어 쉽게 운전할 수 있었다.

참고로 당시에는 내연기관이 가장 인기가 낮았다. 출력이 낮고, 운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 점화장치를 켜고, 밖에 나가 쇠꼬챙이를 끼워 돌리는 방식으로 시동을 걸어야 하는 불편함은 덤. 이 과정에서 손을 다치는 일도 빈번했기 때문에 작업용 장갑을 비치해야 했다. 차 안에 장갑을 수납하는 서랍을 이때 만들었는데, 이는 훗날 ‘글러브 박스’로 진화한다.


그러나 1924년부터 전기차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장거리를 달리는 운전자가 늘면서 내연기관이 치고 올라왔기 때문. 충전이 끝나거나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증기기관차&전기차와 달리 짧은 시간 안에 주유를 끝마칠 수 있어 각광받았다. 전기차보다 오래가는 주행거리도 한몫했다. 같은 시기,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포드 모델 T가 등장하면서 전기차의 인기도 자연스럽게 식었다.


한동안 뜸했던 전기차는 1959년 르노 도핀(Dauphine)의 차체 부품으로 만든 소형차 헤니 킬로와트(Henney Kilowatt)를 통해 다시 등장했다. 다음 해 성능을 높여 1회 충전으로 100㎞를 달릴 수 있었다. 최고속도는 시속 100㎞. 2년 동안 47대를 팔았는데, 그중 대부분은 전기 관련 회사에서 샀다.

비슷한 시기, 각 제조사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다양한 전기차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1966년 GM이 개발한 일렉트로베어 2(Electrovair 2)가 대표적. 2세대 콜베어(Corvair)를 개조한 모델로, 최고출력 115마력을 내는 전기 모터를 얹었다. 532V 은아연 배터리를 넣어 129㎞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다음 해, 영국 포드는 커뮤타(Comuta)를 선보였다. 당시 판매하던 코티나의 절반 길이에 달하는 소형 전기차다. 최고출력 5마력을 내는 전기 모터와 납축 배터리를 얹었다. 수제로 소량 제작했지만, 낮은 최고속도(시속 60㎞)와 짧은 주행거리(60㎞)로 인해 양산까지 가진 못했다.


1967년, 아메리칸 모터스 컴퍼니(American Motors Company, AMC)는 모터 및 동력계 전문 제조업체 걸튼 인더스트리(Gulton Industries)와 합착해 아미트론(Amitron) 콘셉트를 개발했다. 리튬 니켈 배터리를 넣어 1회 충전으로 240㎞까지 갔다. 회생제동 기능도 이때 처음 생겼다. 그러나 기술 및 제조원가 문제로 양산 개발에는 실패했다.


2년 뒤, GM은 ‘프로그레스 오브 파워(Progress of Power)’ 이벤트를 통해 다양한 동력을 쓰는 시제차를 공개했다. 총 네 대를 공개했는데, 그중 한 대가 전기차였다. 당시 GM은 “지금의 기술로는 내연기관이 가장 우수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다양한 동력계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1970년대부터 전기차는 시티 커뮤터 등 제한적인 용도로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뮌헨 올림픽 마라톤 선도차로 쓴 BMW 1602e가 대표적이다. 20년 뒤, 미국 51개 주 중 가장 공기질이 나쁜 캘리포니아에서 ‘ZEV(Zero Emission Vehicle) 정책’을 발표하면서 전기차가 다시 조명 받기 시작했다. 1996년, GM EV1을 시작으로 토요타 RAV4 EV, 혼다 EV 플러스 등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전기차 계보를 다시 이었다.


②당사자가 전하는 현대자동차 전기차 개발 스토리



전기차 개발 역사에 관한 예습을 거친 후, 2부에선 현대자동차 EV 개발 스토리를 들었다. 직접 개발을 이끌었던 이충구 전 현대차 사장, 이봉호 전 현대모비스 상무, 이성범 당시 전기차 개발 담당자가 과거 이야기를 전했다.

1980년대 말, 포니 엑셀을 시작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현대차는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배출가스 규제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이 규정을 어떻게 맞출지 아는 사람이 없어 어려운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험실 환경도 열악했다. 배출가스 시험 규정에는 온도를 25°로 맞춘 상태에서 측정해야 했는데, 장비가 고장 나 온도를 맞출 수 없었다. 또한, 시스템을 제어하는 컴퓨터도 말썽을 일으켜 울산에서 서울까지 가져가 밤새 수리하고, 다음날 돌아와 연구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잦았다.

우여곡절 끝에 현대차는 당시 개발 중이던 알파 엔진을 캘리포니아 규제에 맞춰 설계해 판매했다. 그런데 1990년 1월, 캘리포니아 주가 ZEV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모든 자동차 제조사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단계적으로 생산 및 판매하는 모델의 2~10%를 무공해차로 채워야 했다.

현대차는 당시 미국 시장에 진출한지 4년을 맞이했다. 저렴한 가격 대비 넓은 공간 등을 앞세우며 초반에는 선전했다. 그러나 잦은 고장과 열악한 사후 관리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국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던 현대차는 생존 방법으로 전기차를 골랐고, 1990년 1월부터 개발에 착수했다.

초기 목표는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넣은 차가 움직이는지 보자’였다. 이를 위해 납축 배터리부터 니켈-메탈 하이드라이드 배터리까지 다양한 전지를 넣었다. 지게차를 비롯한 중장비용 배터리까지 가져와 심어봤다.



당시 제작한 프로토타입은 총 네 대. 1호와 3호는 Y2 쏘나타, 2호는 엑셀, 4호는 스쿠프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내연기관 부품을 모두 걷어 내보니 배터리를 넣을 공간이 없어 센터 터널을 파고, 새로운 시트를 달았다. 지게차 배터리와 충전기를 쓰고, 전기 모터는 산업용 모터를 넣었다.


아찔한 에피소드도 있다. 전기 모터와 배터리, 배선, 컨트롤러를 모두 조립했음에도 차가 움직이지 않는 일이 있었다. 시험 주행에선 잘 달렸는데, 막상 ‘윗분’에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면 말썽을 부렸다. 결국 다시 분해해 조립 및 확인하는 과정을 수차례 거쳤다. 한번은 배터리 전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커넥터를 잘못 분해했다가 불꽃이 길게 튀어 큰 사고가 날 뻔했다고 한다.



3년 뒤, 현대차는 전기차 일부를 울산시청에 기증했다. ‘무공해차’라는 상징성 때문에 울산시청에서 공해 단속 용도로 쓰길 희망했다고 한다. 당시 현대차 연구원이 직접 울산에 가서 충전소를 설치하고 자동차 관리도 했다. 그러나 전기 모터와 배터리 성능이 시간이 갈수록 줄었고, 1회 충전 주행거리도 60㎞에 불과해 6개월 만에 회수했다. 충전을 대충 하고 나갔다가 차가 멈추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배터리 충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기였으니 그럴 수밖에.

수소연료전지 개발은 1998년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빅3(포드, GM, 크라이슬러(현 스텔란티스)가 ZEV 준비를 안 하는 바람에 ZEV 규제는 사실상 무효 상태였다. 그 사이 토요타와 혼다가 발 빠르게 프리우스와 인사이트 등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이며 자리를 잡았다. 이를 지켜본 남양 연구원은 “수소연료전지가 2020년~2030년대에 들어서면 ZEV 대안으로 나올 수 있다”라고 판단해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 뒤, 현대차는 싼타페 FCEV를 선보였다. 75㎾ 연료전지 스택을 얹었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124㎞에 달했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160㎞. 15대를 하와이 주 정부와 미국 공군, 지역 전기 회사에 기증했다. 국내에는 2003년에 제주도에서 시범 운영을 거쳤다. 이듬해 아테네 올림픽 대회 운영차로 활동했다.


일찍 수소차 개발에 힘쓴 현대차는 2013년 세계 최초의 양산 수소연료전지차 투싼 FCEV를 선보였다. 5년 뒤 후속 넥쏘를 출시하며 수소연료전지차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충구 전 현대차 사장은 “전기차 및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을 일찍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노력과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지금의 아이오닉 5와 넥쏘같은 차도 없지 않았을까 짐작한다”라고 말했다.


③ 미래의 현대차는 어떤 모습?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회사 업무부터 휴식까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마지막 3부는 하학수 상무(현대 내장 디자인 실장)가 미래 모빌리티의 변화와 헤리티지 시리즈의 제작 과정 및 콘셉트에 대해 설명했다.

하학수 상무는 “운전자가 길을 느끼며 차를 제어하는 재미가 목적인 과거와 달리, 지금은 차 안에서 얼마나 세상과 소통하고 연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모빌리티 비전(Mobility Vision)’이다. 집과 차를 연결했을 때 어떤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진행했다.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운전자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승객은 차가 움직이는 동안 게임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 상무는 “운전이 아닌 휴식을 위한 공간에 걸맞은 시트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최종 목적은 ‘이동’에 있다. 이를 위해 편안하게 탈 수 있는 만든 시트 콘셉트를 선보였다. G80의 리어 서스펜션 어셈블리에 의자를 얹었다. 사람의 무게에 따라 저울처럼 올라가거나 내려가 두 사람이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할 수 있는 점이 특징. 시트커버는 에어백과 시트에 쓴 가죽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이어 3년 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H-스페이스(H-Space)’ 콘셉트에 대해 소개했다.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실내 구성과 옵션을 자유자재로 고를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만들었다. 고객의 취향에 맞춰 시트를 고르고, 투명 스크린을 통해 원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도록 설계했다.


다음으로 포니와 1세대 그랜저 전기차 콘셉트의 제작 과정을 공개했다. 제조사의 역사를 다양한 방면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해외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포니 콘셉트. 하 상무는 “개인적인 추억이 깃든 모델이어서 포니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한국에는 1세대 포니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파나마에서 차를 가져왔다고 한다.


예전 상태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디자이너의 감각을 살려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길을 택했다. 겉모습은 디테일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앞 펜더에 자리한 사이드미러는 디지털 방식으로 바꿨다. 뒤쪽엔 아이오닉 5처럼 파라메트릭 픽셀 패턴과 리어 램프 그래픽을 더했다.


실내는 한층 현대적이다. 원형 게이지 세 개가 있던 계기판은 진공 튜브에서 영감을 받은 디지털 방식으로 거듭났다. 운전대는 기존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을 다시 재해석했다. 앞뒤 좌석은 퍼포먼스 시트로 꾸몄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1세대 그랜저 전기차 콘셉트. 각진 외모 덕분에 흔히 ‘각그랜저’라고 부르는 차다. 기존 디자인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앞뒤 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범퍼 반사판에 넣은 파라메트릭 픽셀 패턴이 대표적이다. 방향지시등은 독특한 애니메이션과 함께 양옆으로 뻗는다. 차체를 감싼 몰딩은 은색으로 마무리했다.





실내는 사운드와 조명을 중심으로 새롭게 다듬었다. 풍성한 사운드를 위해 우퍼를 미드 우퍼와 메인 우퍼로 나누고, 곳곳에 스피커 18개를 달았다. 앞좌석 스피커는 실내 중앙을 향해 45° 꺾었다. 천장과 도어 트림, B 필러에는 음악에 따라 빛이 움직이는 브론즈 색 조명을 마련했다.


앞으로 나올 새로운 헤리티지 시리즈 2종에 대한 힌트도 공개했다. 한 대는 갤로퍼를 바탕으로 만들 예정이다.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를 주제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성하는 중이다. 두 번째 모델은 스텔라를 베이스로 한다. ‘인터스텔라’라는 테마로 가상과 현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메타버스 콘셉트로 진행할 계획이다.

글 최지욱 기자
사진 각 제조사, 최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