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한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차에 치여서 엄청 다치면 어떡하지? 막 피 엄청 나고... 괜찮다! 우리에겐 위급한 상황에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오는 119 구급차가 있으니까. 근데 혹시... 구급차에 치이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만약 그러면 나를 친 구급차에 합승하는 건가? 유튜브 댓글로 “구급차에 치여서 다치면 그 구급차에 실려가나요?”라는 취재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119 구급차도 합승 가능할까
소방청 119 대응국의 정원연 소방위에게 물어봤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상황에 따라 다르다. 만약 이미 응급환자를 태우고 달려가던 구급차에 보행자가 치여서 다쳤을 경우, 다친 보행자는 그 구급차에는 탈 수 없고 새로운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원연 소방위
“환자가 응급상황이라고 봤을 때, 구급차는 일단 응급환자 한 명을 처치하는 기준으로 이송이 돼요. (그러니까) 일단 추가 출동을 요청하겠죠. 가장 인근 구급차를.”

구급차 한 대에 응급환자 한 명이 기준이기 때문에, 새로운 응급환자가 생겼다 해도 이미 환자가 타고 있는 구급차에 합승을 할 수는 없다는 것. 새로운 환자가 생겼다고 해서 무조건 구급차 추가 출동을 요청하는 것도 아니다. 다친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현장에 있는 구급대원들이 환자의 상태를 보고 응급환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119 상황실에 추가 출동을 요청할 수도 있고, 구급차가 아닌 다른 이송 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정원연 소방위
“응급환자가 아닌 경상환자 있잖아요. 초분을 다투지 않는 환자는 추가출동을 기다려도 되는 거고, 현장의 다른 이송 수단 이용해도 되는 거고. 근데 정말 중증 환자인 경우, 자차나 다른 교통수단으로 이송 불가능하고 구급차 이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추가출동 요청해서 조치하는 게 맞죠.”

만약 응급환자가 타고 있지 않은 빈 구급차에 보행자가 치여서 다쳤다면, 이 경우에는 현장 구급대원들의 판단 하에 새로운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사고를 낸 구급차에 환자를 태울 수도 있다. 119 구급차 취재 예고편 영상에 어떤 왱구님이 ‘도로에서 구급차가 한 학생을 치고는, 그 학생을 태우고 다시 달려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는 댓글을 달았는데, 아마도 이런 상황을 직접 목격하신 거 같다.

그러면 119 구급차가 아닌 민간 구급차는 어떨까? 민간 구급차는 고객의 의뢰를 받아 환자를 운송하기 때문에, 의뢰받은 환자가 아닌 다른 환자를 이송할 의무는 없다. 한 민간 구급차 업체에 연락해 물어봤는데, 아직 그런 상황을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만약 겪게 된다면 119 구급차를 부를 거라고 말했다.
그럼 이렇게 달리는 구급차에 치여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소방기본법 제21조에 따르면 모든 차와 사람은 소방자동차가 화재진압 및 구조·구급 활동을 위하여 출동을 할 때에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구급차와 보행자가 충돌했다면, 보행자의 과실이 일반 자동차와의 교통사고에 비해 높게 책정될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보행자 과실이 더 큰 것은 아니다. 도로교통법 제 29조 3항에 따르면 긴급자동차의 운전자는 '교통안전에 특히 주의하면서 통행하여야 한다'. 따라서 구급차와 보행자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난다면 보행자 전용도로 여부, 보행자의 신호위반 여부 등 다양한 요건에 덧붙여 구급차 운전자가 주의 의무를 다하였는지까지 고려해 과실 비율이 책정된다.
만약 구급차가 보행자가 아닌, 다른 자동차와 충돌한다면 어떨까?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법무법인 YK 김지훈 변호사
“긴급차량의 경우에는 특별히 과실을 참작하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가) 양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실 비율을 산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긴급차가 출동하면서 사이렌을 울리고 계속 경적을 울리면서 다가올텐데 전방주시 의무를 다했다면 긴급자동차가 출동해서 오는 거를 충분히 알고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뭐 이런 취지로 과실 비율 산정이 되는 겁니다.
같은 상황이어도 구급차에게는 과실 참작이 되기 때문에, 상대 자동차의 과실 비율이 더 높게 책정된다는 것. 그러니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구급차가 보인다면, 아무리 급하다 해도 잠깐 멈추고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 그 구급차 안에는 1분 1초가 급한 한 생명이 타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도로에 구급차가 나타나면 너나 할 것 없이 길을 비켜주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랄까? 정원연 소방위에 따르면 구급차와 보행자 간에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 본인도 다쳤음에도 응급 환자 먼저 챙기라고 구급대원을 격려한 시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정원연 소방위
“간단한 접촉사고나 이런 경우는 뭐 거기 상대 차량들도 막 그래요. 일단은 사고 조치 나중에 하시고 먼저 긴급 출동 하시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말을 들으니 뭔가 마음이 따뜻해지네. 그치만 애초에 구급차에 치이는 일이 안 생기는 게 제일 좋으니까, 다들 구급차에 치이면 그 구급차에 실려가는지 아닌지 궁금해하지 말고 구급차를 보면 재빨리 비켜주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