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때 온라인에서 큰 논란을 불러온 사진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신발 사진인데요. ‘회색 천에 민트색 신발 끈’으로 보인다는 측과 ‘핑크색 천에 흰색 신발 끈’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대립한 건데요. 실제 사진의 주인이 ‘분홍색&흰색’의 운동화라고 밝히며 ‘회색&민트색’을 주장하던 이들이 큰 혼란에 빠졌죠.

그리고 또 한 장의 사진. ‘파란 바탕에 검은 레이스’로 보인다는 쪽과 ‘흰색 바탕에 금색 레이스’로 보인다는 의견이 갈린 이 사진 역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왜 물체의 색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걸까요? 애초에 색이라는 개념은 빛이 반사하는 정도에 따라 시각이 감지하는 성질의 차이에 따라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우리의 눈에 ‘분홍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물체가 정말 분홍색을 지닌 물체인지는 알 수 없다는 의미죠. 논란이 된 사진들 역시 각기 다른 조명에서 볼 경우 색이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세기 어느 날, 어떤 그림을 두고 이와 비슷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바로 이 그림인데요. 그림의 오른쪽 하단, 강에 몸을 담근 아이의 모자를 볼까요? 모자가 어떤 색으로 보이나요? ‘빨간색’이라고 답했다면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여러분은 똑같은 착각을 한 셈입니다. 이 그림은 색을 연구한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쇠라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라는 작품입니다.
빨간색이 분명한 이 그림을 그린 쇠라는 실제로 그림을 그릴 때 빨간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가까이 대고 다시 한 번 그림을 살펴보세요. 실제로 모자에는 빨간색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황색과 푸른색의 작은 점들이 각각 진했다, 연했다를 반복하며 무수히 많이 찍혀 있습니다. 두 색이 서로 섞이지 않은 채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우리 눈에 ‘빨간색 모자’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죠.
당시, 프랑스의 색채 이론가였던 미셸 외젠 슈브뢸은 세상 모든 색은 인접한 색에 영향을 받으며, 특히 보색 관계의 색이 함께 있으면 두 색이 더욱 선명하게 인식된다고 주장했는데요.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조르주 쇠라는 이 주장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고자 오랜 시간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쇠라는 팔레트 위에서 색을 섞는 기존 방식을 버리고, 캔버스 위에 원색의 점들을 찍어 대비시키면 감상자의 눈을 거친 인식 속에서 그 두 색이 혼합되어 자신이 의도했던 색을 탄생시키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인데요.

오랜 연구 끝에 2년 간 한 작업에 몰두하며 비로소 걸작을 탄생시킵니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 쯤은 봤을 그림,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입니다. 쇠라의 작업 방식을 알고 난 후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지 그려집니다. 이러한 관찰은 결코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대상을 바라보고 현혹되어 마음을 뺏겨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죠. 바로 이것이 쇠라가 가진 진가입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오래 살피고, 미리 계획하고, 엄밀하게 계산한 ‘극도의 계획성’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가 이토록 한 장면에 오랜 시간 붙들려 치열하게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어쩌면 이는 대상에 대한 사랑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무 말 없이 2년간, 하루하루의 빛을 관찰하고 담아낸 이 그림이 현대까지도 여전히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지독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 책 《널 위한 문화예술》 예약 판매 시작!
지금 온라인 교보문고, 알라딘, Yes24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예약판매 중 구매하시면 명화 스티커를 보내드려요 :)
예약판매 바로가기 > https://bit.ly/3h8SIb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