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의지부족? 그들의 치과 치료 포기 이유 살펴야"
[경향신문]
구강 건강 불평등 다룬 <아~ 해보세요> 역자 대담

미국 메릴랜드주에 사는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위한 의료보조제도) 대상 아이들 50만명 대부분은 충치가 있어도 치료를 받지 못했다. 아이 중 8%는 이가 아파 운 경험이 있다. 지난 7월 출간된 <아~ 해보세요>가 소개한 미국 사례다. 미국 의학 저널리스트 메리 오토의 <아~ 해보세요>는 미국의 구강 건강 불평등을 다룬다. 치과 진료에서 배제된 미국의 저소득층의 현실을 보여준다.
치아로 나타나는 의료 불평등은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프랑스도 저소득층의 4분의 1가량이 치료비가 없어 치과에 가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득·교육 수준에 따라 치과 진료 빈도수도 차이가 났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년 4월호).
한국의 구강 건강 불평등은 어느 정도수준일까. <아~ 해보세요>를 번역한 이동정·이정옥 치과의사와 한동헌 서울대 치의학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이들은 매일 환자를 만나거나 데이터를 보면서 치아 불평등을 고민하고 연구한다. 한동헌 교수는 <아~ 해보세요> 역자 후기에서 “구강 질환에 따른 고통, 비싸다고 여기는 치과 치료비에 대해서는 모두 알지만 그건 ‘원래 그런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라고 썼다.
역자들과 김형성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를 지난 9월 2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치과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 해보세요>로 미국의 사례를 접하고 나니 한국의 상황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이동정 “우리나라는 그래도 통증에 관한 부분은 다 보험이 되는 편이다. 신경치료 등 염증 치료 같은 것들은 국가 의료보험이 되고 의료급여를 받는 저소득층이라면 비용부담이 더 줄어든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분들은 신경치료를 받으면 살릴 수 있는 이를 돈이 없어 그냥 빼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이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다.”
이정옥 “그럼에도 여전히 사각지대는 있다. 정말 가난한데 의료 수급을 받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그것보다는 더 버는 가정에서 자라는 친구들이 종종 보인다. 의료급여 대상이 아니라 치료비 부담이 있다. 우리 동네에 큰 의료법인이 하나 있고, 거기서 아동센터 같은 걸 운영한다. 이곳에선 교정치료가 필요한 친구들을 지원하곤 한다. 우리가 교정치료를 주로 미용 목적으로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교정이 안 돼 제대로 씹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 가난하다고 교정치료가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김형성 “(치과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제법 많은 것 같다. 미국처럼 안 좋은 사례와 비교를 자주 하다 보니 더 그렇게 됐다. 진료를 하다 보면 여전히 치과 치료에서 소외된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소외된 위치로 떨어질 수도 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내가 직장에서 해고돼 소득이 확 줄 수도 있다. 이때 치과에 맘 편히 갈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한동헌 “예전에는 치과를 개업하려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에 개업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3층까지 걸어올 수 있는 환자들이 주로 와야 치과가 잘된다는 뜻이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돈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0분 동안 입을 벌리고 있는 환자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오갔다.”
이정옥 “치주질환은 유전이 많이 작용한다고도 하는데 그걸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 대학 시절이라 오래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울의 한 초등학교 두곳에 실습을 나갔다. 한곳은 경제력 있는 집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었고, 다른 곳은 그렇지 않았다. 구강 상태가 확연히 달랐다. 어금니가 하나도 없는 아이도 있었고, 이가 2개뿐인 아이도 봤다. 최근 요양시설 노인의 구강상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열악한 곳일수록 구강상태가 나쁘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여전히 치과 접근성은 떨어지는 것 같다.
한동헌 “책을 번역했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더니 미국에 있는 치과의사가 말이 안 되는 내용이라고 하더라. 연소득이 2만달러 이하면 무료에 가깝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했다. 미국도 제도적으로는 저소득층의 치과 치료를 지원한다고 했다. 일단 비용이 많이 나와도 지역 사회복지시스템에서 어느정도 지원받게 된다. 그런데도 가난한 환자들은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가지 않는다. 가난을 굳이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싫을 수도 있고, 치과 치료가 우선순위가 아닐 수도 있다.”
이정옥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근무시간에도 문제없이, 당당하게 치과에 갈 수 있는 직종도 많지 않다. 치과 치료는 보통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몇 번은 꾸준히 와야 한다. 예를 들어 쿠팡에서 배달하는 분들, 택배노동자들이 시간 맞춰 치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까 싶다.”
이동정 “내가 운영하는 치과는 오피스빌딩에 있다. 평일 연차 내고도 오고, 잠시 자리를 비우고도 온다. 야간치료도 해서 퇴근하고도 온다. 어떤 직장을 다니냐에 따라 접근성이 다를 순 있겠다.”
한동헌 “일종의 희생자 비난과 유사한 구조도 보인다. ‘저 사람은 치료받을 의지가 없어’, ‘불결하고 관리할 의지와 자세가 안 돼 있어’, ‘네가 스스로 잘 관리 안 했으니까’ 이런 게 바로 희생자 비난의 구조다. 사실 우리가 들여다봐야 할 것은 왜, 누가 치과 치료를 포기하느냐다.”
이동정 “사실 왜 사람들이 치과에 오지 않는지는 사회심리학적 측면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치과 치료를 받을 의지 자체가 특정 계층에게는 없을 수 있다.”
김형성 “우리는 건강보험에서 치과 진료를 보장하는 범위를 계속 늘리고 있긴 하다. 그런데 빈곤층은 치과를 여전히 찾지 않는다. 보장성을 높였지만 찜찜함이 남아 있다. 이유는 접근성이 낮아서다. 예를 들어 소득이 적은데 아이들 치과에 좀 보내라고 하면 부모들이 선뜻, 그리고 자주 보내줄 수 있을까? 치과 치료의 특성상 반복적·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운영하는 치과에서 환자분들께 ‘비용이 들어가는 비급여 진료 없이 급여 치료로만 할 테니 끝까지 다니시라’고 한다. 단 한명도 끝까지 치료를 마치지 못했다.”
한동헌 “사실 치과에서는 오는 사람만 받으면 되는 거니까, 오지 않는 사람이 왜 안 오는지는 고민할 동기가 없다. 오지 않는 사람들은 치료받은 이들의 데이터를 모은 자료에서 빠져 있다. 치과에 오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도 사실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치과 치료 접근성을 정의할 때는 여러 측면을 봐야 한다. 물리적 거리, 시간, 돈 등 여러가지가 있다. 환자들이 왜 치과 치료에 거리감을 느끼는지 또 다른 이유가 없는지 살펴봐야 하는 게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저소득층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계층에서 여전히 치과는 비싸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김형성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치과에 갔는데 견적이 200만원 나왔다? 그러면 이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친구들은 치료를 포기한다. 아니면 치아 1개 하고 그만두고. 1개 치료는 효과가 크지 않다. 만 19세까지 관리가 중요한데, 시기를 놓치면 이제 성인이 돼서도 고생을 하게 된다. 돈은 훨씬 더 많이 들어가고. 너무 아파 치과에 가보니 치료비는 어렸을 때보다 몇 배 더 올라 있는 거다.”
한동헌 “치아는 20대, 30대, 40대 순으로 순차적으로 빠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 안 좋았던 부분들이 50대부터 서서히 나타나다가 60대를 넘어서면서 급격히 상태가 악화된다.”
이정옥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저소득층을 위한 진료소가 전 세계적으로 문을 많이 닫았다. 셀프발치키트가 암암리에 퍼져나갔다는 이야기도 접했다. 스스로 이를 뽑는 영상을 공유한다고도 하더라. 마취를 안 한 채 앓던 이를 빼는 거다. 너무 아프니까.”
한동헌 “확실히 보험으로 본인 부담금이 줄어들면 치과에 가는 비중이 늘어난다. 이건 통계로 보인다. 틀니가 대표적인 예다. 만 65세 이상 틀니에 보험을 적용하니까 저소득층도 틀니를 하러 치과를 전보다 많이 찾았다.”
이정옥 “사실 치과에 간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 복합적이다.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물리적 거리, 소득 등이 모두 맞물려 있다. 이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쉽게 치료를 포기할 수 있다.”
한동헌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월평균 소득이 세후 기준으로 25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괜찮은 일자리라고 불리는 게 대기업·공기업 정도다. 이런 일자리가 대략 5~10%뿐이라고 하면, 사실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수만 치과에 오는 걸 수도 있다. 치과는 가면 비싸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상황에서 절반 넘게 치과는 안 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형성 “‘나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라고들 많이 말씀하신다. 여기까지만 하고, 내년에 또 하겠습니다, 이렇게. 그런데 결국 이렇게 치료를 미루고 미루다 보면 마지막 결정은 발치다. 치과에서 뽑는 게 아니라 이가 상해버려 빠진 채로 치과에 온다. 빠진 이의 잇몸도 무너져 있다.”

-한국의 구강 건강 불평등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한동헌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정부의 장기 정책 목표 중 하나다. 그런데 구체적인 전략이 없다. 통계도 없다. 통계는 목적을 갖고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확히 치과 치료에 관련된 불평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명확한 지표가 없다. 조사항목의 질문부터 불평등을 확인하기 위해 짜야 하고, 조사하는 항목부터 별도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이 없다.”
이정옥 “치아 관리를 잘하도록 하는 부분에 의료보험이 됐으면 한다. 아픈 걸로 치과의사들이 돈 벌게 하는 것보다 예방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면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건강보험 보장 확대 논의 자체가 대부분 치료 위주다. 제도적으로 스케일링만이라도 1년에 한 번은 받게 건강보험공단에서 알림 메시지를 보내면 어떨까.”
김형성 “임플란트나 치아를 예쁘게 하는 건 우리가 세계에서 손에 꼽히게 잘한다. 반면 임플란트는커녕 치과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건강보험에서 치과 보장성을 넓히는 건 중요하다. 다만 보장성만 넓히면 치과는 저소득층을 치료로 이끄는 데 한계가 있다. 건강보험에서 치료비 상당 부분을 부담을 해줘도, 그 비용마저 부담스러우면 치과를 안 찾게 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아동 치과 주치의 사업처럼 정부가 먼저 다가가 예방 위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이정옥 “지금 아동 치과 주치의 사업을 보면 구성이 잘 짜였다. 이 닦기 교육만이 아니라 불소도포와 같은 예방 진료, 일부는 건강보험이 되는 치료까지 직접 해준다. 어렸을 때 구강관리를 해주고, 습관을 들이면 성인이 돼서도 나빠질 확률이 크게 준다. 현재는 일부 지역에서만 진행 중인데 전국적으로 확 늘려 시행하면 더 좋겠다.”
이동정 “노인이 많아지면서 치과를 찾는 노인도 늘어났다. 노인의 구강관리가 중요해졌다. 일본 요양병원에 가서 들었던 이야기가 구강관리를 했더니 폐렴이 줄었다는 거였다. 노인의 사망 이유 중 하나가 폐렴이다. 입안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균이 폐로 넘어가 폐렴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그래서 문턱을 지날 때마다 이를 닦게 했고, 그랬더니 폐렴에 걸릴 확률이 줄었다고 한다. 구강 건강에 소홀해질 수 있는 분들에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같은 곳에서 먼저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다.”
김형성 “치과의 건강보험 보장 범위가 많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필수 치료에 가까운 것들이 비급여로 남아 있다.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학생들 대상으로 치과 주치의 사업을 하는 것처럼, 19세 미만에게는 미용 목적을 제외한 치과 치료 가격을 확 낮추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고 본다. 어려서 관리가 되면 나이가 든 뒤에 오히려 치과 찾는 일이 줄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조금씩 치과도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만족하지 말고, 여전히 누군가는 배제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정책을 집행했으면 좋겠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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