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told] '안필드의 심장' 제라드, 만약 2005년 첼시로 이적했다면?

[포포투=Richard Jolly]
아스톤 빌라의 지휘봉을 잡은 리버풀의 ‘전설’ 스티븐 제라드 감독은 전성기에 첼시로 이적할 뻔했다.
빌라는 지난 2일(한국시간) 2021-22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14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시티에 1-2로 패했다. 제라드 감독 부임 이후 첫 패배였다. 맨시티가 2-0으로 리드를 잡자 맨시티 팬들은 뎀바 바 응원가를 부르며 제라드 감독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제라드와 첼시의 인연은 길고 복잡하다. 2013-14시즌 리버풀의 주장이었던 제라드는 첼시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순간 첼시 공격수 뎀바 바 앞에서 넘어졌다. 뼈아픈 실책은 결국 실점으로 이어졌다. 리버풀은 리그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나 이날 이후 하락세를 겪으며 마누엘 펠레그리니 감독이 이끌던 맨시티에 우승을 내줘야 했다.
이에 앞선 2003년 5월 제라드는 첼시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다. 이날 리버풀은 1-2 역전패를 기록했고 첼시에 4위 자리를 헌납했다. 해당 경기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진출권을 따낸 첼시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당시 첼시가 UCL에 진출하지 못했다면 과연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첼시를 인수했을까?
이외에도 제라드는 2004-05시즌 잉글랜드 풋볼 리그컵(EFL) 결승전에서 첼시를 만나 헤딩 자책골을 터뜨렸다. 이날 리버풀이 78분 동안 경기를 리드했으나 결국 첼시를 이끌던 조세 무리뉴 감독이 잉글랜드에서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다만 두 번의 UCL 준결승에서는 리버풀이 웃었다. 2004-05시즌 리버풀의 루이스 가르시아는 논란의 골로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골문으로 들어가는 공을 첼시의 윌리엄 갈라스가 걷어낸 듯했지만 주심은 득점을 선언했다. 0-1로 패한 무리뉴 감독은 이를 두고 ‘유령골’이라고 표현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후 리버풀은 결승전에서 AC밀란을 만나 0-3으로 뒤지다가 3-3을 만든 뒤 우승을 차지한 ‘이스탄불의 기적’을 썼다.
첼시는 2006-07시즌에도 리버풀에 무릎을 꿇었다. 당시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이끌던 리버풀은 UCL 준결승 1차전에서 0-1 패배를 안고 그라운드에 나섰다. 이날 제라드는 첼시 수비진의 허를 찌르는 땅볼 크로스로 다니엘 아게르의 선제골을 도왔다. 또한, 정확한 슈팅으로 승부차기까지 가볍게 성공시키며 리버풀의 결승 진출에 크게 일조했다.
2013-14시즌을 앞두고 첼시로 돌아온 무리뉴 감독은 2013년 12월 제라드를 다시 만났다. 당시 리버풀은 그토록 바라던 리그 우승에 근접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첼시는 리버풀에 더블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리버풀의 발목을 잡았다.
시간이 흘러 빌라의 감독으로 부임한 제라드는 27일 첼시와 처음 맞대결을 펼쳤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벤치에 앉을 수는 없었지만 빌라는 준수한 경기력으로 첼시에 맞섰다. 제라드 감독이 없는 빌라는 리스 제임스의 자책골을 유도하며 앞서갔지만, 로멜루 루카쿠를 막아내지 못해 1-3 역전패를 당했다.
로만 구단주가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 2004년과 2005년, 첼시는 제라드를 영입하기 위해 리버풀에 전화를 걸었다. 특히 2005년 첼시가 제시한 비전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이적 성사 직전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결국 잔류를 택한 제라드다. 최근 리버풀의 레전드 제이미 캐러거는 제라드를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설로 만든 것은 그의 충성심이라고 이야기했다.
제라드의 높은 충성심은 결국 자기희생으로 막을 내렸다. 그는 리버풀에서의 우승 트로피 한 개가 다른 팀에서의 우승 트로피 여러 개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필드에서의 마지막 10년 동안 제라드가 차지한 트로피는 단 두 개에 그쳤다.
선수 시절 제라드는 폴 콘체스키, 다비드 은고그, 라자르 마르코비치, 찰리 아담 등의 선수들과 함께 뛰었으며 페르난도 토레스, 사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팀을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그는 루이스 수아레스가 자신의 빈자리를 메울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스토크 시티에 1-6 대패를 당할 때까지도 리버풀에 남았다.
만약 제라드가 2005년 첼시에 합류했다면 그는 EPL 우승을 맛봤을 것이다. 심지어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제라드와 무리뉴 감독은 서로를 존경하는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무리뉴 감독은 2015년 제라드에게 리버풀에서의 공로를 치하하는 손편지를 보낸 바 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2005년 전성기를 맞았던 두 사람이 함께했다면 분명 엄청난 시너지를 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무리뉴 감독의 첼시는 제라드와 함께 UCL을 제패했을 수도 있다. 페트르 체흐, 존 테리, 디디에 드로그바, 클로드 마켈렐레, 프랭크 램파드, 히카르두 카르발류, 아르연 로번, 데미안 더프에 제라드까지. 아마 이들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을 것이다. 만약 첼시가 그대로 애슐리 콜을 영입하고 무리뉴 감독이 팀에 남았다면 2000년대 후반 EPL은 맨체스터가 아닌 런던이 지배했을지도 모른다.
램파드와의 호흡도 빼놓을 수 없다. 만일 제라드가 첼시로 이적했다면 무리뉴 감독의 4-3-3 포메이션에서 미하엘 발락, 마이클 에시앙, 티아구 멘데스가 맡던 역할을 수행하며 램파드와 발을 맞출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맨시티가 중원에 케빈 더 브라위너, 다비드 실바, 페르난지뉴를 조합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됐다면 마켈렐레는 훨씬 자유롭게 공격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무리뉴 감독이 잉글랜드 감독들의 난제를 해결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만약 제라드와 램파드가 소속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면 잉글랜드 대표팀은 4-4-2 포메이션을 보다 일찍 탈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기존 포메이션 대신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를 한 명 배치하고 두 명의 메짤라, 이른바 두 명의 ‘8번 롤’을 투입할 수 있었다.
물론 제라드가 첼시로 이적했다면, 그가 언젠가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는 시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지난 2019년 마우리시오 사리 감독을 경질한 첼시는 후임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 램파드가 아닌 제라드에게 접촉했을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제라드는 리그 우승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가 리버풀의 ‘영원한 캡틴’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만일 제라드가 박싱데이 첼시전 벤치에 앉았다면 첼시 팬들은 감독으로 돌아온 제라드를 야유로 환영했을 것이다.
번역=유다현 에디터
사진=포포투 UK
Copyright © 포포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