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김민구의 마지막 인사 "코트 위에선 늘 최선, 후회 없고 행복했어요"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최선을 다한 뒤 찍은 마침표
전문에서 말했듯 김민구의 은퇴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올해 자유계약선수(FA) 신분도 아니었고, KBL의 2021-2022시즌 국내선수 등록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갑작스레 전해진 소식이었다. 1991년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 31세인 그는 최근 몇 시즌 동안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계약 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유니폼을 내려놓을 거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몸이 보낸 신호를 외면할 수 없었다.
Q. 은퇴 소식을 전한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네요. 아직 여운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은퇴인터뷰를 시작하는 느낌이 어떤가요?
아직 100% 실감이 나질 않아요. 제가 은퇴를 결정한 이후에 푹 쉬고 있었으면 더 빠르게 공허함이 찾아왔을 것 같은데, 지금 곧장 스킬 트레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했거든요.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보니 은퇴를 했다는 사실에 큰 느낌을 받지 않고 잘 지내는 것 같아요.
Q. 다소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어요. 은퇴에 대한 생각을 언제부터 했던 건가요.
‘안 되겠다, 그만 둬야하나’라고 생각한 건 매년 그랬죠(웃음). 다치고 난 이후에는 늘 그랬던 것 같은데, 지난 시즌에 그 생각이 유독 커졌던 것 같아요. 시즌 후반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죠. 전체적으로 보면 몸은 좋아지는 흐름이긴 했어요. 근데 무릎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또, 보통의 경우엔 고액연봉자인 선수들도 은퇴 시기에는 하락세를 느끼며 은퇴를 생각하잖아요. 그런 게 싫더라고요. 그러다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됐고, 원래 갖고 있던 지도자의 꿈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됐죠.
Q. 현대모비스와는 어떤 대화를 통해 마침표를 찍게 됐나요.
시즌 도중에도 은퇴 생각을 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어요. 제 소속팀이 있기 때문에 코트에서 만큼은 최선을 다해야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도 경기장에서는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거든요. 구단에는 연봉협상을 하면서 사무국장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게 됐죠.
Q. 작년에 FA로 현대모비스에 새 둥지를 틀 때 유재학 감독님이 이적의 큰 이유 중 하나였잖아요. 그랬던 감독님과는 마지막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감독님이 그때 미국에 계셨어요. 은퇴를 결정하고 또 한 번 전화를 주셨는데 제가 못 받았거든요. 그랬더니 긴 문자 하나를 보내셨더라고요. 제가 갑작스럽게 은퇴를 하게 돼서 당황스러웠는데,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한 것 같아서 한편으론 마음이 놓이신다고요. 하고자 하는 일 꼭 성공하고 언제든지 놀러 오라며 응원해주셨어요.
Q. 갑작스럽게 은퇴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 당시 본인의 감정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아쉬웠죠. 제가 다치지 않은 상태로 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했어도 아쉬움은 느껴졌을 거예요. 그래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늘 생각했던 게 미련과 후회를 최대한 줄이자는 거였어요. 다행히 은퇴를 결정할 당시에는 미련과 후회가 정말 적었던 것 같아요.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거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Q. 공교롭게도 은퇴가 알려진 날이 생일이었어요.
전화만 100통이 넘게 왔더라고요(웃음). 메신저도 터지는 줄 알았고, 연락이 계속 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소셜미디어에 먼저 인사말을 올리고, 콜 백을 하기 시작했죠. (김)종규도 그렇고, (박)찬희 형이나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은 정말 많이 반대했어요. 그래도 고심 끝에 결정한 일이니 응원한다고도 말해줬고요. 최부영 감독님도 찾아뵙고, DB에서 함께했던 이상범 감독님, 김성철, 김주성 코치님도 만났고요. (이)현민이 형이랑도 얘기를 많이 했어요. 아, (하)승진이 형이랑 (전)태풍이 형도 연락이 왔었어요. 특히 승진이 형은 매일 전화 와서 미쳤냐며 왜 그러냐고 하더라고요. 하하.
Q. 진심으로 걱정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네요. 그런 연락을 받으니 어떻던가요.
은퇴를 결정하고 나서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이렇게 연락을 많이 받는 걸 보니 제가 인생을 나쁘지 않게 잘 산 것 같다고, 보기 좋다고요. 사실 제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사람인데, 나이를 먹으면서 성격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작년에 30대가 되면서 둥글게 살아보려고 했거든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연락 주신 분들에게 더 많이 감사했어요.

유니폼을 내려놨으니 그의 선수 시절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은퇴 소식이 알려졌을 때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그의 이름 앞에 숱하게 붙었던 수식어 중 하나는 ‘아시아 베스트5’였다. 2013년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선수권에서 대회 베스트5에 선정될 정도로 센세이션한 실력을 선보였던 그는 한때 농구대통령 허재의 이름을 소환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됐을 잘못으로 짧지 않은 시간 내리막길을 걷기도 했다. 그렇게 롤러코스터 위에 있던 김민구는 프로에서 7시즌을 뛰고 선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Q. 이제 선수로서의 시간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스스로 돌아보면 김민구는 어떤 선수였나요?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경주마였던 것 같아요. 앞만 보고 주위를 전혀 둘러보질 못했죠. 경주마였을 땐 남의 말도 듣지 않고 내 생각대로 달렸어요. 다친 이후에 조금씩 걸음마를 뗀 느낌이죠. 주위도 조금씩 둘러보면서요. 제가 정말 큰 잘못을 했지만, 다친 이후의 선수 생활은 만족해요. 후회 없이 행복하게 보낸 것 같아요. 시즌과 오프시즌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재활했거든요. 예전에 KCC 때부터 알고 지냈던 홍성홍 트레이너 형이 너무 감사하게 많이 도와줬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트레이너라고 자부할 수 있죠(웃음). 또, 저를 수술해주셨던 교수님도 아직까지 연락하며 제 몸을 체크해주시거든요. 감사한 분들 덕분에 선수 생활을 잘 할 수 있었어요.
Q. 선수 생활을 했던 2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만족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코트 위에 있던 모든 순간인 것 같아요. 평생 잊지 못하겠죠. 국가대표도 하고, 아시아 베스트5에 선정도 되고요. 사고를 쳤던 건 정말 부끄러운 행동이었어요. 다만 프로 생활, 즉 선수로서 코트 위에서 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행복하게 뛰어다녔던 것 같아요.
Q. 아시아선수권대회 베스트5는 선수 인생을 대표해주는 수식어일 것 같아요.
농구를 시작하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 선수로서 뭔가 한 획을 크게 남겨야 하지 않겠냐는 목표가 늘 있었어요. 아시아 베스트5라는 성과는 너무 큰 행복이고, 축복이었죠. 한편으론 독이 되기도 했어요. 자만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땐 제가 짱인 줄 알았죠. 하하. 지금에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그 당시에는 참 철이 없기도 했던 것 같아요.
Q. 예상보다 이른 은퇴인 만큼 가장 아쉬움이 남는 점도 꼽는다면요?
부모님이죠. 저 때문에 정말 힘들어하셨는데 갑자기 은퇴를 결정했으니까요. 항상 불안해하시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했으면 좋겠다며, 더 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셨거든요. 평생 농구를 했으니 부모님 입장에선 아쉬움이 크신 거죠. 저로 인해 인생의 낙을 느끼시는데 제대로 행복을 드리지 못했어요. 이번에 은퇴를 결정하고 부모님이 제 인생을 응원한다며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너무 죄송하더라고요.
Q. 프로 선수 입장에서는 우승 반지 하나가 없는 것도 아쉬울 것 같아요.
KCC에서 유일하게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을 때도 그렇고, 특히 두 시즌 전에 DB에 있을 때 너무 아쉬웠어요. 그때는 저뿐만 아니라 DB 선수단 모두가 우승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단합도 잘 됐고,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조기 종료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 허탈했어요. 그게 정말 아쉽죠.
Q. 결국 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침표는 찍혔어요. 김민구는 어떤 선수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음…. 코트 위에서 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죠. 아마추어 시절에도 후배들에게 농구에 대해 알려주는 게 재밌고 보람 있었어요. 주위에서도 저에게 지도자가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해줬고요. 지도자로서의 꿈은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 첫 발을 프라임타임에서 스킬 트레이너로서 떼게 됐어요. 스틸 트레이너로서의 목표는 어떻게 세웠나요.
저는 뭐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해요. 프라임타임이라는 센터를 명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지금 (박)찬성이 형, (정)주원이 형과 셋이 꾸려나가고 있는데, 형들과 함께 세운 목표거든요. 명품이 괜히 명품이 아니잖아요. 그러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해보려고요.
Q. 지금은 스킬 트레이너로서 정말 맛만 본 시점인데, 트레이닝이 체질에 잘 맞나요?
아직은 조금 힘들긴 해요(웃음). 선수와 일반인을 가르치는 건 또 다르더라고요. 원래 농구를 하는 선수들이 트레이닝을 받으러 오면 익숙해서 금방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아직 쉽지는 않지만, 제가 뭔가를 가르쳐 줄 때 즐거워하는 게 보이면 보람도 느끼고 행복하더라고요.
Q. 잘 맞는 것 같네요. 제2의 인생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응원해준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팬들은 제가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이었어요. 팬들이 있었기에 제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이제 선수로 뵙지 못하게 된 거에 대해선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도 코트 안에서 느꼈던 팬들의 열기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게 아쉽고요. 그래도 여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했으면 좋겠어요. 제2의 인생도 많이 응원해주세요!

2019년 오프시즌, 프로농구계엔 빅이슈가 터졌다. FA 시장에서 김종규를 영입했던 DB가 트레이드를 통해 김민구까지 영입한 것. 2019-2020시즌 중 두경민이 상무에서 제대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DB는 2013년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3순위를 휩쓸었던 경희대 3인방을 동시에 보유하게 됐다. 경희대 시절 4년 동안 93.9%(77승 5패)라는 역사를 남긴 이들은 DB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셋이 함께 뛴 13경기에서 11승을 거두며 농구팬들을 즐겁게 했다. 그랬던 3인방은 한 시즌밖에 함께하지 못했다. 시즌 종료 후 김민구가 FA로 현대모비스로 떠났고, 올해는 트레이드로 두경민이 한국가스공사로 향했다. 더욱이 김민구가 현역 은퇴를 결정하면서, 이제 세 선수가 한 팀으로 코트 위에 서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이젠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게 된 3인방의 농구. 누구보다 당사자들이 더욱 아쉬웠을 터. 김민구가 은퇴 소식을 알린 이후 김종규와 두경민은 자신의 SNS를 통해 김민구의 은퇴에 진심어린 응원과 인사를 건넸다. 두 선수 모두 “함께했던 농구 선수 중에는 네가 최고였다”라고 입을 모으며 말이다.


코트 위의 선수로서는 불가능해졌지만, 언젠가 농구인으로서 경희대 3인방이 다시 뭉치는 모습도 볼 수 있을까. 김민구는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죠. 근데 일단 저희 중에 경민이만 결혼했고, 종규랑 저는 미혼이잖아요(웃음). 언젠가는 꼭 다시 함께할 날도 왔으면 좋겠네요”라며 미래를 내다봤다.

김민구는 제2의 인생을 미리 준비했기에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은퇴를 결정할 수 있었다. 스킬 트레이너로서 그가 꿈을 펼쳐나갈 곳은 박찬성, 정주원 트레이너가 이끄는 프라임타임이다. 특히, 박찬성 트레이너는 김민구와 어린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절친한 사이라고. 김민구는 “찬성이 형은 끝까지 저에게 은퇴하지 말라고 했어요. 근데, 제가 생각이 너무 확고했죠. 형은 어렸을 때부터 워낙 솔직하고 숨기는 게 없어서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만큼 제 은퇴를 가장 안타까워했죠”라며 박 트레이너와의 끈끈함을 과시했다.
인터뷰 날 김민구의 화보 촬영에도 함께했던 박 트레이너는 “휴가 때 민구와 한 달을 붙어있었어요. 보름 정도는 아무 얘기 없었는데, 은퇴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 알고 있었죠. 민구가 만약에 선수를 그만두게 되면 함께하고 싶단 걸 돌려서 말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현실적인 조언부터 해줬어요. 사회에 나오면 뭐든 할 수는 있지만, 원하는 만큼은 할 수 없을 거라고요. 또, 지금 은퇴하기엔 민구의 재능이 아까웠어요. 구단에 미팅하러 들어가는 날 아침에도 만류했는데, 본인이 몸이 안 된다고 하니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죠”라며 김민구와 함께 보낸 고민의 시간을 돌아봤다.
은퇴를 만류하기 위해 당장 프라임타임에 합류시켜줄 수 없다고까지 했다는 게 박 트레이너의 말. 그는 “계속 농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결국 은퇴 결정을 하고 왔을 땐 함께 멋있게 해보자고 했어요. 민구는 어릴 때부터 참 활발하고 친화력 좋은 동생이었어요. 가끔 너무 들이대서 오해할 수도 있지만(웃음), 거짓말 못하는 친구였죠. 선수로서는 트레이닝에 단 한 번도 소홀하지 않고, 제 퇴근을 괴롭힐 정도로 열심히 했고요. 아마추어 시절에 붙으면 승부욕이 엄청난 선수이기도 했고요. 그 자세를 바탕으로 지금 트레이닝하는 걸 보면 분명 좋은 코치가 될 것 같아요”라고 트레이너 김민구로서의 앞날을 밝게 전망했다.
더불어 박 트레이너는 “민구가 프라임타임에 합류하게 되면서 스킬 트레이닝의 비전, 코치로서의 자세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솔직히 제가 지금 스킬팩토리를 이끄는 (박)대남이 형과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순탄치가 못했어요. 스킬 트레이닝이라는 문화가 자리 잡지도 못했고, 좋지 못한 시선에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거든요. 제가 그런 시간을 겪어봤으니 민구는 겪지 않게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이렇게 함께하게 됐으니 한 번 멋있게 해보고 싶네요”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민구 프로필_
1991년 6월 24일생, 가드, 190cm/81kg, 매산초-삼일중-삼일상고-경희대
2013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KCC-DB-현대모비스)
# 사진_ 유용우 기자, 점프볼 DB(홍기웅 기자), 선수 SNS 캡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