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 신냉전·빈부격차 심화..러 국민들 "소련 때가 좋았다" [소련 해체 30주년]
[경향신문]

1991년 68년여 만에 해체
독립국 대부분 ‘반러’ 전향
루블화 폭락 등 ‘대혼돈’
1991년 12월25일(현지시간) 구소련 모스크바 크렘린궁 게양대에서 낫과 망치 문양이 그려진 빨간색 소련기가 내려졌다.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를 실현한 나라인 소련은 이튿날 만 68년11개월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후 미국과 함께 세계를 반으로 가르고, 첫 우주비행사를 탄생시키는 등 인류 역사에 중요한 기록을 세운 나라가 무너진 것은 그렇게 한순간이었다.
소련이 해체된 직후 각국 정치인과 외교전문가들은 “냉전은 끝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의 말과 달리 소련이 해체된 지 30년 후에도 냉전은 지속되고 있다.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 틀 안의 경쟁 구도는 깨졌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유럽 동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 ‘세계 최강’ 소련이 무너지다
소련 해체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해체 전 정치권 분열, 연방국의 독립운동 등 조짐이 포착됐다. 특히 경제계획 실패는 소련 붕괴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소련은 국가가 모든 생산품의 생산량과 가격을 정하는 체제를 택했다. 이 때문에 물품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노동 강도는 다르지만 임금이 비슷해 노동 생산성도 떨어졌다.
미국과의 경쟁을 위해 군비증강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점도 경제난을 불렀다. 소련이 1970년대 이후 군비에 투자한 돈은 국내총생산(GDP)의 12%에 달했다. 소련은 1961년 인류 최초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1957년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에 쏘아올렸지만 정작 비누, 치약 등 생필품 공급량은 늘리지 않아 시민들은 수시로 상점 앞에서 줄을 서야 했다. 설상가상 1986년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이던 원유 가격이 급락하고,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도 스스로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그는 공산당 일당 독재에서 변화를 꾀하기 위해 다당제를 제안했다. 일한 만큼 임금을 주고 다른 나라들과 경제적으로 교류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정책에 반대한 공산당 보수파들이 1991년 8월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탈공산주의를 주장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인기를 얻었다. 결국 옐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대표와 함께 소련을 대체할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을 1991년 12월8일 선언했다. 고르바초프의 동의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소련 해체의 여파는 컸다. 독립한 공화국 15개 중 대부분이 반러 성향으로 돌아섰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일부 독립국은 나토에도 가입했다. 미국 달러와 가치가 대등하던 루블화의 가치는 1991년 달러당 5800루블로 폭락했다.

■ 소련 향수에 빠진 러시아
‘세계 2인자’ 자리 내줬지만
미국·유럽과 정치·경제 등
위태로운 기싸움은 진행형
아직도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는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다. 러시아 독립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센터의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소련을 ‘가장 좋았던 시대’라고 답변한 러시아 국민이 75%에 달했다. 지난 19일 열린 아이스하키 채널원컵 핀란드전에서 러시아 선수들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약자 ‘CCCP’가 적힌 유니폼을 입었다. 유라시아 전문 경제매체 비엔이인텔리뉴스는 지금까지도 러시아 상점에서 소련 국영 제과 브랜드였던 ‘빨간 10월’의 제품들이 ‘소련 전통’이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팔려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국민들이 연료와 전기 등 공공요금이 저렴했던 소련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말한다. 러시아 언론인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CNN 칼럼에서 “공정한 사회를 꿈꾸는 러시아인에게 소련 외에 다른 사회체제 모델이 없다”고 분석했다. 미국에 맞설 만큼 국력이 강했던 상황을 그리워하는 시민들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런 향수를 정치적으로 적극 이용했다.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천명한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 자치공화국에 속해 있던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했다.

■ 21세기에도 이어지는 신냉전
소련 붕괴가 ‘냉전 역사의 종언’이라는 평가와 달리 냉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 최대 경쟁자 자리를 중국에 내줬지만 아직 서방 국가들과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둘러싸고, 군사력과 천연자원으로 유럽과 미국을 압박하며 나토의 동진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러시아 병력 10만여명이 배치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를 고리로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쿠바와 같은 남미 국가들에 무기 판매, 에너지 투자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CNN은 “(소련 붕괴 후) 30년 만에 다시 서방과 러시아가 심각하게 대립하는 크리스마스를 맞았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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