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달릴 수가 있었는데 사막 한가운데로 버려진 빨간색 초록색 EV1”. 밴드 자우림의 노래 ‘EV1’의 가사다. 약 20여 년 전 등장한 세계 최초의 양산 전기차 EV1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다. 짧은 생을 살다 사라진 비운의 차지만, 기술력이 부족했던 20세기에 ‘전기 먹는 차’를 양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탄생배경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가 무공해 자동차 생산 법안을 받아들였다. 앞으로 무공해차 생산을 ‘의무화’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미국 51개 주 중 캘리포니아의 공기 질이 가장 낮았기 때문. 이에 미국 자동차 제조사 중 GM이 가장 먼저 개발에 나섰다. 그리고 같은 해, 1990 LA 모터쇼에서 임팩트(Impact)라는 이름의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충전식 납축 배터리 32개를 품었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295㎞이었다.

4년 뒤, GM은 ‘프리뷰(PrEView)’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행 데이터를 기록한다는 조건으로 임팩트 50대를 소비자에게 최대 2주 동안 빌려주는 이벤트였다. 참가자는 차고지 마다 고전압 충전기를 달아야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프로그램 담당자였던 션 맥나마라(Sean McNamara)는 “로스엔젤레스 주에서 참가자 80명을 받으려 했으나, 1만 명이 지원하는 바람에 사전 마감 했다. 뉴욕의 경우, 마감 전까지 1만4,000명이 몰렸다”라고 말했다.
EV1 연대기

프리뷰 프로젝트를 마친 GM은 시제차 50대를 모두 회수한 뒤 폐기했다. 그리고 1996년, 양산형 모델 EV1을 공식 출시했다. 역사상 최초로 ‘GM’ 배지를 달고 나온 차이기도 하다. 총 660대를 생산했으며, 이듬해에 228대가 주인을 찾았다.
고객 인도는 출시 후 12월 5일부터 시작했다. 판매 방식이 독특한데,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 및 애리조나 주민에게만 ‘리스’ 방식으로 차를 넘겼다. 고객은 월 399~549달러(약 39만 원~64만 원)를 3년 동안 지불해야 했다. GM 산하 브랜드 새턴(Saturn)이 계약 및 인도를 맡았다.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137마력을 내는 전기 모터다. 0→시속 100㎞까지 가속을 6.3초에 끝냈다. 최고속도는 시속 128㎞. 차체 아래에는 델코(Delco)가 만든 17.8㎾h 납축 배터리를 깔았다. 1회 충전으로 최대 126㎞를 주행할 수 있었다(1999년 미국 EPA 기준).

EV1은 미래지향적 분위기의 2도어 쿠페다. 라디에이터 그릴 없는 얼굴에 동글동글한 타원형 헤드램프를 달았다. 뒷바퀴는 별도의 패널로 반쯤 덮었다. C 필러까지 모두 삼킨 거대한 뒷유리도 특징이다. 차체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310×1,770×1,280㎜. 색상은 진한 초록색과 빨간색, 은색 등 세 가지를 마련했다.
비록 외모는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하지만, 알루미늄과 경량 플라스틱, 마그네슘 등 값비싼 소재를 듬뿍 썼다. 덕분에 공차중량은 1,400㎏에 그쳤다(초기형 납축 배터리 모델 기준). 또한, 공기저항 계수는 Cd 0.19에 불과했다. 마찰 저항을 줄이기 위해 미쉐린이 개발한 전용 타이어도 끼웠다.

소비자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공개 행사 당시 사전 계약만 40건을 기록했다. 연예인과 경영진, 정치인 등 유명인사도 계약에 나서며 화제를 모았다. 또한, GM이 여러 회사와 협업해 충전소 1,100개를 설치한 덕분에 충전도 어렵지 않았다.
자동차 전문매체들도 칭찬했다. <모터트렌드>는 “임팩트는 GM이 환상적인 자동차를 만들 줄 아는 회사임을 증명했다”라고 보도했다. <오토모빌>은 “승차감과 핸들링이 뛰어나며, 동력 전달이 부드러웠다”라고 전했다.

1999년에는 2세대를 선보였다. 총 457대를 만들었다. 디자인을 그대로 두고 무게와 배터리, NVH를 개선했다. 그중 핵심은 배터리다. 초기 모델은 파나소닉의 18.7㎾h 납축 배터리를 얹었다. 이후 가볍고 성능 좋은 오보닉스(Ovonix)의 니켈수소 배터리로 바꿨다. 용량은 26.4㎾h. 1회 충전 최대 주행거리는 230㎞로 늘었다. 이때부터 샌디에이고와 새크라멘토, 아틀란타 지역까지 판매 범위를 늘렸다. 리스 가격은 월 349~574달러(약 41만 원~67만 원)였다.
갑작스러운 사망 선고...도대체 왜?

그러나 같은 해, GM은 EV1 생산 라인을 폐쇄했다. 2002년까지는 도로에 존재하는 모든 EV1을 없앨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인은 낮은 수익성. EV1을 만들 때마다 내구성 및 주행거리를 위해 배터리를 바꾸다 보니, 생산비가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넘어 적자를 면치 못했다.
배터리의 안전성에 대한 두려움도 한몫했다. 당시 배터리는 충전을 할수록 성능이 떨어졌다. 만약 고객이 주행거리 감소를 눈치 챈다면,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더불어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이 생길 수 있다는 법무부 의견에 따라 EV1을 회수하기로 했다.

당연히 고객의 반발은 심했다. 캘리포니아 GM 트레이닝 센터 앞에서는 차를 가져가지 말라는 시위를 펼쳤다. 일부 오너는 본사에 편지와 수표를 보내며 계약 연장을 요구했다. 유지비를 전부 고객이 부담하되, 심각한 기계적 문제가 생기면 제조사가 계약을 파기해도 된다는 조건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GM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2003년 말, GM은 전기차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중단하고 모든 EV1을 회수했다. 그중 일부는 구동계를 비활성화 하고, 다시는 켜지 않겠다는 조건과 함께 박물관 및 교육 시설에 기증했다. 나머지는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에 모아 폐기했다. 이후 한동안 전기차를 출시하지 않던 GM은 스파크 EV와 볼트 EV를 선보이며 GM 전기차의 계보를 이었다.
글 최지욱 기자
사진 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