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비밀] 불륜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그림, <그네>

풍성한 초록의 숲 속

분홍빛 옷자락을 흩날리며

경쾌하게 그네를 타는 여인.

화면 중앙의 선명한 분홍색이

주위의 짙은 녹색과 대비되어 시선을 끌죠.

한 떨기 꽃송이처럼 펼쳐진 레이스치마와

장난스레 벗어던진 신발.

전원 속 여유를 즐기는 듯한 여인의 미소가

그림의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런데 시선을 여인에게서 돌리면

그림 속 숨겨진 등장인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누워있는 젊은 청년과,

어두운 그늘 아래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성.

비밀스러운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동상까지.

아름다운 그림 속

숨겨진 다양한 인물들.

이 그림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18세기 로코코 회화의 정수로 불리는 작품

<그네>입니다.

프라고나르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그림 구석구석에 여러 상징물들을 감춰 놓았는데요.

이 그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그림이 그려졌던

당대 분위기를 알아야 합니다.

프라고나르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 유럽사회에선

정략 결혼이 성행했습니다.

서로가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상대와 결혼하는 것이 흔했죠.

하지만 1761년 한 책이 세상을 뒤엎습니다.

루소의 소설, <누벨 엘로이즈>인데요.

이 책은 서로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인해 결혼할 수 없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죠.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책이 담고 있는 자유연애에 대한 열망은

당시 자유를 꿈꾸던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줬습니다.

1761년, 루소의 소설 <누벨 엘로이즈>가

이러한 프랑스 사회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자유연애사상이 급격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죠.

당시의 독자들은 원치 않던 결혼과

지켜야 할 미덕 속에서 갈등하던

여주인공의 상황에 공감했고,

그들에게 씌워진 인습의 굴레에서

감정적인 해방을 느꼈던 것이죠.

책은 폭발적 반응을 얻었고,

이 열기는 미술계에까지 전파됩니다.

실제로 당시 그려진 많은 작품 속에서는

자유연애 풍조를 담아낸 작가들이 많았는데요.

프라고나르도 그중 한명이었죠.

이 작품은 프라고나르의 또다른 명작 <추억>입니다.

이 작품은 <누벨 엘로이즈>의 주인공을 모티브로 하고 있죠.

연인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네>는 이러한 프라고나르의 생각을

조금 더 발전시킨 작품입니다.

다름 아닌 ‘삼각관계’라는 도발적인 소재를 통해서죠.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

그리고 그의 화려한 치맛자락 아래에는

귀족으로 보이는 늘씬한 젊은 남성이

여인의 발치에서 시선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남성은 스칠 것처럼 가까이 올라온

여인의 다리를 잡으려는 듯,

팔을 길게 뻗고 있는데요.

이 남자는 바로 여자의 애인입니다.

그의 가슴에 꽂은 분홍색 꽃은

여인의 드레스 색과,

여인이 가슴에 꽂은 하늘색 꽃은

남자의 웃옷 색과 일치하죠.

사랑스러운 연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화색이 넘치고,

몹시 상기되어 있는 그의 표정에서

그들이 매우 뜨거운 연애를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뒤에서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 남성은 누구일까요?

바로 그녀의 남편입니다.

밝은 빛 속에 있는 두 남녀와 달리

나무 기둥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이는 남편.

남편은 아내가 젊은 사내와

비밀연애를 하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환한 미소로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데요.

변치 않는 사랑의 상징인

거대한 나무둥치 옆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

남편은 그의 어린 아내를

몹시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네>는 이처럼 당시의 전형적인 삼각관계를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냈는데요.

그네는 이쪽 저쪽을 변덕스레 오가며

밀고 당기는 사랑놀음의 상징이었습니다.

즉, '불륜'을 상징하는 메타포였죠.

그네라는 제목에서부터

그림의 주제가 드러난 셈입니다.

그네 앞쪽으로는 사랑과 욕망의 신, 큐피드 동상이 보이는데요.

이 은밀한 연애 사건을 높이서 지켜보며

마치 이를 눈감아주듯

지그시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계가 ‘침묵'이 요구되는

비밀스러운 관계임을 확인시켜주면서,

이 장면을 지켜보는 관객들까지도

이를 비밀로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죠.

그들의 관계가 불륜이라는 증거는

이 뿐만이 아닌데요.

여인이 한 쪽 발을 앞으로 내미는 바람에

분홍빛 구두가 날아가 맨발이 드러납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구두를 신지 않은

여성의 맨발은 곧 알몸을 상징했습니다.

드레스를 들어 발목을 보이는 것은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 중 하나일 정도였으니까요.

때문에 여인이 신발을 휙 던진 것은

의도된 바가 명확했죠.

자신의 애인에게 구두를 주워 와

둘만 있는 장소에서 다시 신겨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여인의 벗겨진 맨발,

그리고 애인의 쭉 뻗은 왼쪽 팔은

차후 두 남녀 사이에서 벌어질

관계를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죠.

수풀 조경이 화려한 이 정원에는

인물들 외에도 여러 상징물이 등장하는데요.

여인 뒤에는 아프로디테를 수행하는

사랑의 중재자, 푸티가

아기천사 동상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왼쪽에 있는 푸티는 젊은 연인들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금지된 사랑의 장면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하죠.

오른쪽 푸티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워낙 어두운 그늘에 가려져

분명하게 모습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남편 곁에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강아지는 유럽 미술에서

정절과 신의를 상징하는 매개체였는데요.

신혼부부 사이에 그려지거나

초상화에 인물과 함께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남편 옆의 강아지는 울상을 짓고 있죠.

믿음을 저버리는 잘못된 상황을 지켜보며

남편에게 이를 경고하는 듯합니다.

또한 그들이 유희를 즐기고 있는

몽환적인 숲 속은 마치

연기처럼 피어오르도록 표현하였는데요.

멀리 건물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숲은 어느 귀족의 대저택에 딸린

정원인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당시에는 기존의 엄격하고 대칭적인 정원 대신

실제 숲 속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원이 선호되었는데요.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의미로 이를

‘픽쳐레스크’정원이라고 불렀습니다.

프라고나르는 그림 속에 이 그림 같은

‘픽처레스크 정원'을 그리는 것을 즐겼는데요.

정원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면서

우거진 수풀 속에서 감정과 행동들을 감출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죠.

그림 속 자연은 주인공들의

사랑놀음이 벌어지는 배경일 뿐 아니라,

그들의 사랑을 자극하고 도와주는

매개체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그림을 주문한 사람 또한 은밀한 사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을 주문했던 이는

당시 악명 높은 바람둥이였던 줄리앙 남작이었는데요.

그는 자신의 정부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그림을 주문했죠.

그는 여러 가지 세부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요구했는데요.

높이 그네를 타는 정부의 모습,

정부의 다리 근처에서 유희를 즐기는 자신의 모습과

그네를 미는 가톨릭 주교를 그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성직자의 세금 징수를 담당하던 남작은

부패한 주교를 고발함과 동시에,

자신과 연인의 달콤한 모습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프라고나르는

주교를 묘사하는 것을 과감히 생략합니다.

대신 그네를 타는 여인에 초점을 맞춰

연인들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드러내는

풍속화로 주제를 바꿔버렸는데요.

다소 가벼우면서도 로맨틱한 이 그림은

귀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관능과 쾌락,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던

귀족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은 그림은

프라고나르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죠.

프라고나르는 ‘로코코’양식의 선두주자로 불립니다.

로코코는 장식용 인조 돌에서 따온 용어인데요.

화려함과 장식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로코코 양식은 당시의 귀족 계급만큼이나

사치스러운 경향을 보인 동시에 우아한 감각을 뽐내는데요.

로코코 이전에는 왕족의 초상이나 신화,

성경 속의 엄숙하고 진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부터 기존 권위에 대한 의심과 함께

유쾌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각광받았는데요.

로코코 미술은 더 이상 엄숙함과 권위로 가리지 말고

본연의 감정과 일상을 아름답게 바라보자는 인식을 담고 있죠.

프라고나르는 <연애편지>, <사랑의 과정>, <빗장> 등

풍부한 색채와 몽환적인 배경 속 각종 상징이 자리한 그림을 주로 그려,

로코코 시대의 대표 화가로 자리잡습니다.

각종 파티와 자유연애,

일상 속의 즐거움을 풍부하게 그려낸 그림들이

전국적으로 큰 유행을 타게 되었죠.

로코코 양식은 더 아름답고 풍부하게 그리는 것을 중시했던 만큼

그의 그림 속에서도 풍부함을 위한 디테일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화려한 드레스와

섬세하게 새겨진 레이스, 알록달록한 원단이 대표적입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프라고나르가 이 그림을 통해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 만연했던 사치 풍조를 보여 주기도 하는데요.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는 귀족들의

경박한 삶의 모습이 그림 전면에 드러내죠.

여인의 날아가는 신발을 통해 불륜 관계를 암시할 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허울뿐인 품위를 풍자하기도 하였는데요.

귀족의 체면과 정숙함을 의미하는 신발을 공중으로 날려 보냄으로써,

귀족들의 정숙함 또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냈습니다.

당시 귀족들과 로코코 미술은

그 지나친 장식성과 쾌락주의, 그리고 도덕적 해이로 인해

관능적인 것을 넘어 경박하다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는데요.

넓은 정원에서 아무 고민없이 희희낙락하는 세 사람의 모습은

귀족들이 아닌 일반 서민들에게는

분노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1789년, 프랑스 민중들은 왕실과 귀족의 향락을 참다못해

대혁명을 일으킵니다.

후원자들이었던 부유한 귀족계층들은 이슬로 사라지고

프라고나르는 순식간에 화가로서 모든 것을 잃게 되죠.

그는 잊혀진 작가가 되어 궁핍한 말년을 보냅니다.

<그네>는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의 산물로 전락하였고,

그가 그림 속에서 표현해냈던 인간적인 욕망과 사랑은

덧없는 찰나가 되어버렸죠.

사치라 비난 받아온 로코코 미술은

현대에 이르러서 그 솔직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재평가되기 시작했습니다.

딱딱한 관념과 형식의 틀을 벗고

사랑의 즐거움을 추구한 이 그림.

오늘날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그림의 아름다움과 유쾌함을 통해 잠시 일상을 벗어난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네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코믹한 장면 앞에서

감상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재미있는 결말을 상상해보기도 하죠.

화려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재밌는 상상을 만들어낸 프라고나르의 그네.

여러분들은 이 그림을 보며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