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찾지 않는 대성당의 현재는 풀로 덮여버릴 우리 선산의 미래 [다른 삶]

이대한 2021. 9. 1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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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의 연구실 가는 길

[경향신문]

스위스에서 펼쳐진 종교개혁의 주요 도시였던 취리히의 노을. 두 개의 첨탑이 우뚝 솟은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은 대표적인 종교개혁가 중 한 명인 츠빙글리가 주임 목회자로 활동한 종교개혁의 성지이다.

#1. 주말을 맞아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벌초를 막 다녀오신 참이었다. 나는 그제야 추석이 다가왔음을 알았다.

여느 때와 달리 아버지는 한참 동안 벌초 얘기를 하셨다. “선산에 갔더니 봉분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풀이 자라 있더라. 매번 다니던 곳이니까 어디가 묘소인지 겨우 알았지, 아니었으면 찾기가 어려울 것 같더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닌 선산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논과 밭이 펼쳐진 시골에 차를 대고 숲길을 따라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나타나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묻혀 있는 봉분들이 비스듬한 산비탈에 층층이 늘어서 있는 곳.

그 풍경에 넉넉한 시간을 흘려본다. 볕이 들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풀이 자란다. 비바람에 봉분의 곡선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동안 풀은 빠르게 자라고, 낮은 묘목들도 조용히 나무로 커간다. 더 빠른 속도로 시간을 흘려보니 금세 숲과 묘지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진다.

아마도 벌초를 함께한 아버지와 친척들은 선산에서 그런 환영을 보았던 것 같았다. 자신들의 세대가 풀을 베어 숲과 묘지의 경계를 유지하는 이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 아버지는 벌초를 멈췄을 때 이 산비탈에서 일어날 일을 두고 엄숙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했다.

이제 한국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유교적 활동이기보다는 전통문화를 실천하는 것이듯
중세 종교의 흔적이 일상에 스며있는 유럽 젊은이들도 대체로 ‘무종교적’
남성만이 미사를 집전하고, 남편 핏줄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여전히 개혁돼야 할 종교 그리고 관습

#2. 레만호수와 알프스를 마주하고 있는 로잔의 구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그곳에 로잔대성당이라고 불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근엄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700살이 넘은 거대한 고딕 성당은 로잔시의 외곽에 위치한 내 연구소에서도 어디가 구시가인지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위용을 뽐내며 우뚝 솟아있다. 사실 ‘유럽’ 하면 떠오르는 풍경의 상당 부분은 로잔대성당과 같은 중세의 흔적에 빚지고 있다.

근동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는 현대 유럽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의 종교’로 기능했다. 특히 중세는 교황이 종교지도자를 넘어 정치적으로 매우 큰 힘을 가진 권력자가 될 정도로 교회가 유럽 사람들의 삶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갈기갈기 찢긴 영토에서 살아가던 유럽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상과 질서를 만들어냈다. 교회 안에서 혼인을 통해 새로운 가정이 출발했고, 새 생명이 태어나면 세례를 통해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으며, 죽음에 대한 예식 또한 교회가 관장했다. 중세 교회의 권력과 재력은 이처럼 유럽인들이 그리스도교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따라야 하는 질서와 규범의 원천으로 삼은 데서 비롯되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며 불을 지핀 종교개혁은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서유럽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켰다. 박해를 피해 신교도들이 모여든 스위스는 그런 종교개혁의 핵심 무대였다. 루터와 더불어 널리 알려진 종교개혁가인 울리히 츠빙글리와 장 칼뱅이 각각 취리히와 제네바를 본거지로 개혁을 진행했다. 특히 칼뱅의 제네바는 ‘개신교의 로마’라고 불릴 정도로 개신교의 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쪽의 제네바, 동쪽의 취리히 등에서 활발히 진행된 종교개혁 및 그로 인해 파생된 종교전쟁의 결과 스위스의 많은 지역이 ‘신교’ 지역이 되었다. 로잔대성당 또한 신교를 받아들인 베른이 1536년 로잔이 위치한 보(Vaud)를 정복하면서 관할권이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넘어가게 된다.

제네바의 생 피에르 대성당에 개신교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칼뱅이 사용한 의자가 전시되어 있다.

사실 나는 스위스 남단의 벨린초나를 방문하기 전까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로잔대성당이 가톨릭 성당이라고 생각했다. 벨린초나는 티치노 칸톤의 주도인데,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티치노는 인구의 70%가 가톨릭인 칸톤이다.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벨린초나의 중심에 위치한 산피에트로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로잔대성당과는 무언가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압도됐다. 그 이유가 성당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성화’들임을 눈치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경을 중시하는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 성당의 각종 성화와 조각, 장식들을 제거하고 그 대신 설교단을 높고 크게 세우는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로잔대성당 또한 그러한 리모델링을 거치기 이전에 화려한 가톨릭 성당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베른의 정복 당시 로잔대성당에서 제거된 내부 장식의 일부가 현재 베른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3. 종교개혁으로 인한 구교와 신교의 분열과 중세 유럽의 복잡한 국제정치는 비극적인 ‘30년 전쟁’으로 귀결됐다.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마침내 종교의 자유가 공인되고 가톨릭 중심의 질서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스위스 연방은 바로 이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독립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오늘날 유럽 국가들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따르고 있지만, 그리스도교는 여전히 유럽인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위스도 예외가 아니다. 스위스에서 중세의 흔적은 도시의 풍경뿐 아니라 ‘명절’에도 남아있다. 예를 들어 내가 근무하고 있는 스위스 로잔 대학은 공식적으로 8일의 공휴일을 인정하는데, 이 중 5일이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휴일이다. 크리스마스 당일, 부활절 전후 금요일과 월요일을 쉴 뿐만 아니라 ‘예수승천일’과 ‘성령강림일’ 또한 공휴일로 기념한다. 빨간색 바탕에 흰색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강렬한 국기와 공휴일의 구성만 보자면 스위스가 신정일치 국가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각종 종교 관련 공휴일이 무색할 정도로 현실에서 만나는 젊은 유럽인들은 대체로 무종교적이다. 로마 교황청을 품고 있으며 인구의 3분의 2가 가톨릭인 이탈리아에서 온 동료 암브라에게 요즘 젊은이들의 신앙심에 대해 물어보았다. 암브라는 자기 주변 청년들이 어릴 적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장성해서 성당에서 혼인미사를 올리지만, 매주 미사를 꼬박꼬박 챙기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그 답변을 들으니 현재 유럽의 젊은이들에게는 그리스도교가 종교보다는 문화와 전통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 사람들이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이 유교를 따르는 종교적 활동이라기보다는 전통문화를 실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듯 말이다.

실제로 유럽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무교’이며,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분류한 경우에도 미사나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많다는 유럽연합의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가톨릭뿐만 아니라 중세의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 문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유럽인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개신교까지도 오늘날 유럽 청년들로부터 외면을 받으며 위기를 겪고 있다.

#4. 돌이켜보면 명절은 유교적 가부장제를 학습하는 기간이었다.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을 정확한 호칭으로 부르기 위해 아빠와 엄마의 혈족을 각각 ‘친’과 ‘외’라는 불평등한 접두사로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 민족대이동이라 불리는 이벤트를 통해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인간의 서열 또한 익혔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따르는 이동의 질서를 우리 집안도 따랐다. 엄마의 가족들이 모인 ‘바깥집’은 후순위였고, 둘째이지만 장남인 아빠가 있는 우리 집으로 모든 친척이 모이는 데서 남성 우선의 원칙이 연장자 우선의 원칙에 앞선다는 것을 깨우쳤다. 차례 음식을 공들여 준비한 엄마를 비롯한 ‘며느리’들이 막상 차례가 시작될 때에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이상한 예법도 알게 됐다.

핏줄에 따라 인간의 계급이 나뉘고, 여성이 시민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서 만들어진 관습과 질서는 종교와 전통의 형태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아드님’이라고 부르는 종교가 쇠퇴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모른다. 현재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재집권이 큰 우려를 낳는 이유 중 하나도 가부장적인 배경에서 창시된 종교가 여성의 권리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명절이 세대 간, 성별 간 전쟁터가 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유교적 질서가 사람들의 일상과 정신을 통제하던 시대에서 내려온 전통이 성평등, 다양성,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요즘 세대와 불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이 벌초를 하며 선산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 또한 선산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유지해온 가부장제 전통이 더 이상 우리 세대에 의해 계승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셨기 때문일 터다.

유럽에서는 종교개혁도 개인과 공동체의 ‘탈종교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막지 못했다. 칼뱅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외쳤고, 그러한 개신교와 경쟁하기 위해 가톨릭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등을 통해 개혁에 힘썼지만 새로운 시대를 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것은 아닐까. 예컨대 가부장적인 종교제도는 종교개혁 과정에서 타도 대상이 아니었으며, 가톨릭은 여전히 남성만이 신부가 되어 미사를 집전한다.

어쩌면 로잔의 청년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대성당의 현재는, 풀과 나무로 덮여버릴 선산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예수승천일 휴일을 즐기는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하느님의 ‘아들’이 승천한 것을 기념하지 않는 것처럼, 벌초와 차례가 사라진 추석은 이미 많은 집안에서 현실이 되었다.

내 딸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 명절은 어떤 모습일까. 바라건대 설날과 추석이 구시대적인 가부장제의 잔재로 남는 대신 ‘명절 개혁’을 통해 평등과 상호 존중,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새로운 문화양식을 획득하여 ‘명절 증후군’의 원흉이 아니라 누구나 기다리는 ‘즐거운 명절’로 거듭났으면 한다.

▶이대한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작은 벌레를 연구하며 청춘과 박사학위를 맞바꿨다. 연구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은 청년이었지만, 박사가 되었음에도 생명과 생물학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태평양 건너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3년 동안의 연구를 마친 후, 대서양 건너 스위스 로잔대학에서 초파리를 해부하며 뇌의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이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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