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에 빠진 직장인 "'금수저' 취미? 말 타려고 돈 벌어요"

[퇴근 후 변신하는 직장인들] (2) 말 타고 싶어서 열심히 일합니다

"이거 하려고 오늘도 버텼다!"

취미생활은 힘든 일상을 지속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어떤 직장인들은 퇴근 후에 ‘변신’한다. 가방에서는 슈퍼히어로 망토 대신 운동복이 나오고, 요술봉 대신 붓을 잡으며 ‘또 다른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취미활동 하는 재미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취미에 진심인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승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고급스러움, 날렵하고 멋진 복장, 우아함… 언젠가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나도 한 번 해 보고 싶은 막연한 동경 속 바로 그 취미다. 정말 승마는 재벌3세쯤 돼야 즐길 수 있는 금수저 전용 취미일까? “말 타려고 돈 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승마를 사랑하는 직장인 ‘로미(닉네임)’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말을 타는 '로미' 씨. 그는 유튜브 채널 '로미Lusi' 에 승마 기록영상을 올리고 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주말에 승마 하기 위해서 돈 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말 타는 게 삶의 일부이자 낙인 ‘로미’ 입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고요. 평일 5일은 강남역 빌딩숲에 파묻혀 살고 있어요.”

‘승마’ 하면 아마 다들 고급스럽고 멋진, 이색 취미라고 생각할 텐데요. 많은 취미 중 승마를 택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워낙 좋아했고 특히 말을 좋아했어요.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면 동네에 말 타는 놀이기구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고, 놀이공원에 가서 말을 보면 ‘집에 데려가서 키우자’며 떼를 쓰는 통에 놀이공원 가기가 무서울 정도였다고 하세요. 방에는 공주인형보다 말 모형이나 조각상이 더 많았고요. 이렇게 말을 좋아했던 아이였는데 사회인이 되어 스스로 돈을 벌게 됐으니 ‘진짜 타야겠다’ 생각한 거죠.

동물과 교감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운동이라는 점이 승마의 매력이에요 아무래도 살아 있는 동물과 함께하다 보니 돌발 상황도 많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말과 함께 호흡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즐거워요. 말이 사람의 스승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말에게서 배우는 점도 많고요.”

전국 승마장 지도. 사진=한국마사회 '호스피아' 홈페이지 캡처

마음 먹은 바가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움직이는 편이라는 로미 씨는 ‘승마장’을 검색하자마자 주말에 바로 승마장을 찾아갔다(한국마사회 '호스피아' 사이트에서 전국 승마장을 검색할 수 있다).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몇 개월씩 쉰 공백기간을 제외하면 실제로 기승(말을 타는 것) 할 수 있었던 기간은 대략 2년 정도다. 평일에 일하는 회사원이다 보니 주말 이틀 중 하루만 승마장에 가고, 한 달에 2~3번 말을 탄다. 스스로 평가한 기승 실력은 ‘초~중급’ 이라고.

비용이나 장소 등 진입장벽이 높지 않나요.

“승마 장벽 중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비용 문제예요(한숨). 저는 승마를 위해서 다른 지출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어요. 요즘은 그나마 대중화되었다고 하지만 고급 기술을 배우려면 그걸 가르쳐 줄 수 있는 코치님과 말이 있어야 하잖아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비용을 들여야 배울 수 있는 게 현실이에요. 비용, 이동 거리, 시간 투자 등 솔직히 노력이 많이 필요해요.”

승마의 기초를 배우는 데는 6만원 정도가 들지만 고급 기술로 넘어가면 30~50분 레슨 한 번에 10~23만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장비도 비싸다. 로미 씨는 헬멧, 마장마술 부츠, 안전조끼를 통틀어 450만 원 정도에 구입했다. 개인 안장과 등자(발받침)를 구입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처음에는 승마장에서 대여해 주는 장비를 사용하고, 승마를 오래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면 좋은 장비를 구입하라”고 추천했다.

돈도 많이 들지만 멀리 떨어진 승마장까지 가는 것도 문제다. 승마를 시작하기 전에는 연극·뮤지컬·영화·전시 관람, 겨울에는 스노보드 타기 등 취미가 다양했던 로미 씨도 이제는 무조건 승마를 1순위로 놓고 스케줄을 짜고 있다. 차가 막혀 아까운 시간을 길에서 허비해야 할 때 특히 속상하다고.

승마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아무래도 말과의 추억이 많죠. 가장 마음이 가던 말이 먼 마장(馬場)으로 떠나게 되어서 슬펐던 기억도 있고요(그래도 개인 소유로 갈 때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친해지면 저 멀리서부터 제 발소리를 알아듣고 아는 척 하거나 턱으로 저를 끌어당겨 안아 주기도 해요. 원래 의심이 많아서 간식을 안 받아먹던 말이 어느 새 제가 주는 간식을 넙죽넙죽 잘 먹을 때 등등 기억나는 순간이 참 많아요.”

말의 매력을 묻자 로미 씨는 기다렸다는 듯 말 칭찬을 시작했다. 외형이 아름답고 멋진 것은 물론 애교도 있고, 머리가 좋아(사람으로 치면 6~8세 수준이라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좀처럼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한 번 가본 길을 기억하고 되돌아오는 귀소본능도 뛰어나다.

지능이 높고 ‘감’도 좋으니 사람의 감정을 읽는 능력도 탁월하다. 자기 등에 탄 사람이 초보자인지 말 좀 타 본 사람인지 순식간에 파악한다. 말마다 성격이 달라 누구에게든 유순하게 맞춰 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장난기 많은 녀석은 사람을 놀리듯 행동하기도 한다고. 주변 환경에 예민한 초식동물이지만 일단 기승자와 교감해 신뢰가 쌓이면 주위가 어떻든 사람을 믿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도 말이라는 동물의 큰 매력이다.

그의 설명을 들을수록 사람이 일방적으로 말을 훈련시켜 탑승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존중하고 호흡을 맞춰 움직이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살아 있는 동물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 위험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승마 하면 아무래도 낙마 사고 걱정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말 타다 다칠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승마를 정말로 사랑하지만 저도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경속보를 막 배우기 시작했던 때 해변 외승(승마장이 아닌 야외에서 말을 타는 것)을 따라갔는데요. 의도와 달리 마구 질주하던 말 위에서 그만 겁에 질린 나머지 제 스스로 고삐를 놓고 일부러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굉장히 위험했었는데 지금도 그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낙마가 두려워요.

그런데 승마에서 제일 무서운 건 낙마 그 자체보다 치료하는 동안 말을 못 탄다는 점이에요. 낙마한 사람들이 의사에게 제일 먼저 하는 질문이 다 똑같은데요. 다들 “그래서 말은 언제부터 탈 수 있나요?” 라고 묻는다더라고요. 아픈 것보다 말에게 받는 행복이 더 크기에 승마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웃픈’ 질문이죠. 하하.

안전하게 승마를 평생 즐기려면 교육이 잘 된 마필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승자 스스로 안전장비를 철저하게 착용해야 합니다. 첫째도 헬멧, 둘째도 헬멧이에요. 헬멧은 반드시 써야 해요. 안전조끼는 여름을 제외하곤 꼭 착용하는데 솔직히 저도 여름엔 너무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헬멧은 반드시 착용해요.”

승마장에서 지켜야 할 예절이나 승마장 문화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초식동물이다 보니 말들은 대체적으로 겁이 많아요. 그래서 큰 소리 내거나 갑자기 달려가면 안 되고 천천히 조용조용,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해요. 기승할 때 규칙은 우측통행입니다. 마주 오는 말을 만날 경우 또는 앞질러야 할 상황이 생기면 우측으로 가면 돼요. 그리고 타인의 기승 실력을 본인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도 매너랍니다.”

기본 체력이 안 좋은 사람들도 승마를 할 수 있나요.

“말에서 안 떨어지려면 무릎에 힘을 주고 버티거나 근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놀랍게도 승마는 힘을 빼야 하는 운동이에요. 힘을 쓰는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말의 움직임을 방해하거든요. 제가 마장마술을 배우면서 가장 고치기 힘들었고 지금도 노력하는 부분이 바로 ‘힘 빼기’예요. 코어를 제외하고 불필요한 힘을 뺀 채 균형을 잡으면서 하는 운동이에요. 단, 외승은 체력이 필요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 승마를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가끔 말을 감정 없이, 기계 다루듯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러면 말도 힘들고 사람도 힘들어 보였어요. 그리고 간혹 ‘승마는 동물 학대 아니냐’ 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요. 승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 복지에도 관심이 정말로 많아요. 하루에 한 번만 타기(1일 1마), 식단 관리, 위생관리, 방목과 산책 등등은 물론 말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승마인이 많습니다.”

‘안전하게 오래오래’ 말을 타고 싶다는 로미 씨는 현재 마장마술을 배우고 있다. 말을 타고 규정에 따라 멋진 동작과 기술을 선보이는 마장마술은 ‘모래 위의 피겨’라고도 불리는 종목이다. 아직 초보 단계라 욕심이 나지만 예산 관리를 잘 하면서 차근차근 배워 가기로 결심했다고. 말을 사랑하는 ‘주말 승마인’이 마장마술 고수가 되는 날이 마냥 멀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