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꼬꼬무-지강헌 사건' 공범 김성진 "총 강탈했는데 쏠 줄 모르고..버스 탈취했는데 몰 줄 모르고"(인터뷰)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2020. 6. 1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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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유전무죄, 무전유죄”

14일 밤 ‘SBS스페셜’ 파일럿 프로젝트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3부작 중 1부가 방송됐다. 이날 방송은 지강헌 사건과 그 뒷이야기를 다뤘다. 88서울올림픽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1988년 10월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주택가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이른바 ‘지강헌 사건’이다. 교도소 이감 도중 호송 버스에서 탈주한 지강헌 일당은 북가좌동 가정집에서 일가족 6명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였다. 이들이 당시 외친 말이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 당시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

지강헌 일당이 벌인 인질극은 TV로 생중계됐다. 선글라스를 쓴 주범 지강헌은 록밴드 비지스의 ‘홀리데이’ 카세트테이프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행동은 영화 ‘홀리데이’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인질 외에도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여럿 있다. 지강헌 일당 중 일부가 그들이다. 기자는 지강헌과 공범으로 수형생활을 거친 김성진씨와 15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김성진씨는 1988년 10월. 이송 중 탈옥한 미결수 12명 중 한 명이다. 이들은 몇으로 나뉘어 지강헌 등은 서울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였고, 김성진씨는 다른 루트로 움직이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기자와 김성진씨가 알게된 것은 2006년 영화 ‘홀리데이’의 제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자는 관련 기사를 썼고, 교도소에서 그 기사를 본 김성진씨가 연락을 취해오면서 묘한 긴장감 속에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김성진씨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역에서 아파트 안전관리 일을 하고 있다”며 “방송은 보지 못했지만, 그 사건이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좌표를 준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출소 후 2014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강헌씨는 주범이 아니고 내가 탈주 사건의 주범이다. 교도관에게서 총을 빼앗은 것도 나다. 지강헌씨는 호송차에서 몸싸움이 있을 때도 앉아 있었다 ”며 “늦었지만 지강헌씨에게 미안하고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과거의 극단적인 행동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이 사건으로 25년 간 복역하고 출소한 상태였다. 그는 그 때 “다시는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 오늘날까지 그 다짐을 지켜오고 있다.

■ 알려진 것과 다른 사건의 전말

사건 당시 인질극을 벌이던 지강헌씨는 경찰에게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를 요구해 틀어놓고 유리 조각으로 자해하던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그는 이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함께 인질극을 벌이던 한의철·안광술씨는 사건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한 3명을 포함해 탈옥한 12명 중 김성진씨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재범으로 다시 수감되는 등 안정적 생활을 해 오지 못하다. 김성진씨는 탈주자 중 출소 후 유일하게 재범을 저지르지 않았다.

김성진씨는 작심한 듯 “내가 가장 나쁜 놈이다. 범행 모의도 저와 강영일이 시작했다. 당시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지강헌씨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지강헌사건의 주범은 나다. 애먼 사람이 나로 인해 죽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탈옥을 기획했고, 탈옥을 주도적으로 실천했으며, 탈옥을 한 목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가정집 인질사건은 그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함께 모의했던 강영일씨는 가정집 인질 사건 중 유일한 생존자다.

김성진씨는 “당시 전과 3범으로 난 무기수였고, 강영일은 15년형을 받아 미래에 희망이 없었다”며 “그 상황에서 5공 시절 새마을운동중앙회 총재로 있던 전경환이 수십억원의 공금 횡령과 탈세 혐의로 구속되고도 가벼운 형량을 선고 받았다는 소식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은 탈옥을 모의하게 된,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낀 박탈감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당시 지강헌씨의 형기는 17년이었다.

■ 지강헌 사건…‘범죄의 재구성’

D데이는 1988년 10월8일. 법무부 호송차 한 대가 재소자 이감을 위해 서울 영등포교도소를 떠나 충남 공주교도소로 향했다. 호송차에는 그들이 타고 있었다. 김성진씨는 호송차의 맨 앞에 앉아 있었다. 김성진씨는 호송차 안에서 교도관들과 몸싸움을 벌여 총기를 뺏는 역할을 맡았다.

그 유명한 탈주극은 그러나 일면 코미디적 요소를 숨기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탈주는 ‘치밀한 탈옥, 어설픈 탈주’로 요약할 수 있다. 몇가지 에피소드가 그것을 증명한다.

김성진씨가 맨 앞 교도관의 얼굴을 때리고 총을 빼앗는 것을 신호로 포승줄을 미리 풀어 놓았던 나머지 탈옥 모의자들이 교도관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몸싸움으로 교도관의 이가 부서졌고 얼굴엔 유혈이 낭자했다. 지강헌이 가졌던 권총과 5발의 총알은 교도관들에게서 뺏은 것이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총을 누가 가질 것인가에 대한 에피소드는 어이가 없다. 호송차 점거 과정에서 뺏은 권총의 처리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뺏은 권총은 총알과 따로 보관돼 있었다. 그러나 군대 경험이 없는 이들은 그둘을 어떻게 장착하는 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마디로 총을 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덤&더머와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총의 소유는 연장자인 지강헌의 몫이 됐다. 사용할지 모르니 욕심 내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권총과 5발의 총알은 지강헌에게 전달됐다. 이 총은 오래지 않아 탈옥범 일부의 자살 도구가 됐다.

김성진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경찰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해 여의도에 있는 방송사 중 한 곳을 점검한 후 우리 의사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행 할 수 있는 동력은 어설펐다.

■ 치밀한 계획과 어설픈 실행

호송차 탈취 후 이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서로 뿔뿔히 흩어졌다. 거기에도 이유가 있다.

그들은 호송차를 폭력으로 점거했다. 그 과정에서 유혈은 낭자했고, 호송차 안은 아비규환이 됐다. 12명의 탈주범은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됐다. 호송차의 새로운 주인이된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동수단도 확보한 셈이다.

그런데 12명의 탈주범들은 그간 범죄에 전력을 다하느라 어느 누구도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무면허 탈주범의 탈주극은 수많은 차들와 접촉 사고를 내며 운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이들이 삼삼오오 흩어지게된 것은 운전면허증 하나없는 탈옥범의 사회적 능력의 한계에 기인한다. 그래서 흩어지기로 한 것이다.

다시 모이기로 한 성북구 드림랜드가 경찰에 포착돼 무리는 다시 합류할 수 없었다. 이후 김성진씨를 비롯한 8명의 탈주범들은 서울 곳곳에서 검거됐다.

김성진씨는 한남동 지하 주점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지강헌 일행과 달리 한남동으로 숨어든 김성진씨는동행한 탈옥범과 함께 호기롭게 룸사롱에서 양주를 들이켰다. 이 자리에서 동행한 탈옥범이 호스티스에게 탈옥 사실을 영웅담처럼 얘기했고 경찰에 신고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결국 그들은 양주 썸싱스페셜 2병을 먹고 경찰에 잡혔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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