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멋쟁이냐, 문신충이냐

정상혁 문화부 기자 2020. 4. 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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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예술로 자리 잡은 문신, 의지의 표상이자 각성의 방편
문신과 태도가 일치해야 '멋'.. 위화감과 존재감 헷갈리면 지능 의심받거나 무시당할 뿐
정상혁 문화부 기자

팔뚝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늦은 밤마다 빈약한 이두근을 움직이며 쇠질을 시작한 이유다. 코로나 사태로 전국 헬스장이 잠정 휴장하기 며칠 전 새벽에도, 나는 아파트 단지 안 허름한 헬스장에 있었다. 마스크 쓴 채 헉헉대며 아령을 당기는 찰나, 웬 지방질의 남성이 나를 불렀다. "저기요." 그는 근엄한 목소리로 "조용히 운동할 것"을 요구했다. 위협적으로 티셔츠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측면삼각근 부위에 자리한 시커먼 문신을 내보였다. 입 벌린 도깨비 같기도, 대림동 시장에서 파는 중국 월병(月餠) 같기도 한 난감한 무늬였다.

문신을 입묵(入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몸에 먹물을 집어넣었다는 의미다. 일종의 재봉틀처럼 피부 위를 바늘이 탁탁 지나가며 원하는 선(線)을 그려 넣는다. 아프기도 하거니와, 그 반영구적 디자인이 사람을 자칫 영구처럼 만들 수도 있기에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완력이 드센 상상의 동물이 즐겨 새겨지는데, 그 상징에 힘입어 분별없는 용맹을 유발하기도 한다. 지난해 헬스장에서 문신으로 가득한 상반신을 모조리 탈의한 채 큰 소리 내며 운동하던 한 40대 남성이 업무방해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시간에 걸쳐 군중 앞에서 이 같은 육체미를 과시했다고 한다. 현란한 무늬로 자신의 유독성을 드러내는 한 마리 무당개구리가 떠오른다.

문신의 역사는 유구하다. 3000년 전 이집트 미라의 몸에서도 꽃과 동물 문신이 확인된 바 있다. 종교적 이유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원시 부족의 용맹함, 노예 표식 및 형벌 징표 등으로 문신의 역할은 변신해왔다. 과거 조폭이나 윤락 여성의 전유물 같던 문신은 이제 패션과 예술의 영역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서양에서는 거의 일상 수준인데, 이탈리아의 경우 인구 10분의 1 이상이 문신을 한 것으로 지난해 조사되기도 했다. 이제 문신은 대단히 별스러운 취향이 아니다.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는 왼쪽 종아리에 첫 아들의 손자국과 이름을 새겼다. 문신이 좋아 아예 가게까지 차린 웹툰 작가 김용키는 손목에 부모님 생년월일을 기록했다. 대기업 다니는 직장인 친구 하나가 얼마 전 동화 '피터팬' 속 팅커벨의 날개를 목덜미에 그려넣었다. 그는 "꼰대가 된 것 같을 때마다 문신을 보며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했다. 문신에 관대한 그들 대부분은 멋에 민감한 멋쟁이지만, 그들이 멋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문신이 아니라 생각과 태도에서 오는 것 같다.

의지의 표상으로서 문신은 때로 고결해 보인다. 가령 오른팔에 '왼팔'이라 새기는 방식으로 유머를 건넬 수도 있으며, 이는 세계의 모순을 유쾌하게 비트는 표어가 되기도 한다. 다만 어떤 유행이나 허세에 혹한 이는 추후 지능을 의심받게 될 공산이 크다. 위화감과 존재감을 혼동해 전신에 단청을 수놓거나 잉어나 사자 따위의 짐승을 잔뜩 들여놓을 때, 그 몸은 축사(畜舍)처럼 보일 뿐이다. '문신충'(蟲)이라는 멸칭도 피하기 어렵다. 간혹 도로에서 무리한 끼어들기를 시도하며 운전석 밖으로 문신 가득한 팔토시 같은 좌완을 슬쩍 내미는 경우가 있다. 그게 꼴 보기 싫어 양보는커녕 '풀액셀' 밟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착하게 살자' 써놓고 막살면 기만이고, 팔뚝은 야차인데 하는 짓이 햄스터라면 제 살점에 면구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내면과 정체성을 솔직히 드러내는 시도는 장려돼야 한다. 솔직함은 위선보다 언제나 낫고 인간을 향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바보입니다'라고 문신한 사람을 나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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