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전지현급 대접받는 펭귄 "펭하, 제가 펭수의 엄마입니다"
EBS 이슬예나 총괄 PD
"펭수도 무명 시절 있었죠.. 믿고 맡겼으면 기다려 주는 미덕이 필요해요"

일년 전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秀)’ 이름을 가진 자이언트 펭귄 ‘펭수’가 유튜브에 나타났다. 열 살짜리 펭수는 뽀로로처럼 스타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한국까지 왔다. 교육방송(EBS)에 연습생으로 들어갔고, EBS 제작진과 ‘자이언트 펭TV’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어린 펭귄, 어딘가 이상하다. EBS 사장 이름 ‘김명중’을 시도 때도 없이 부르고, EBS 때려치우고 MBC나 KBS에 가겠다고 제작진에게 엄포까지 놓는다. 지위와 나이를 막론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펭수는 어린이보다 어른이 더 열광하고 있다.
자이언트 펭TV 1주년을 맞아 자이언트 펭TV의 총괄 PD 이슬예나(35)씨를 만났다. 2011년에 EBS에 PD로 입사한 그는 펭수를 영입해 자이언트 펭TV 방송과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하고 연출했다. '펭수의 한국 엄마'라고 불린다. 그를 만나기 전, EBS 측은 "펭수를 캐릭터나 인형의 탈을 쓴 인간으로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펭수의 세계관을 존중하며 그를 '펭격체'(펭수+인격체)로 대하기로 약속하고 인터뷰를 했다.
EBS에서 이런 걸?… B급 콘텐츠로 허를 찔렀다
지난해 3월 21일 펭수가 유튜브에 첫 동영상을 올렸을 때만 해도 구독자 수가 두 자릿수에 불과했는데, 반년 뒤인 9월 30일 10만 명이 됐다. 11월 27일 100만 명으로 늘더니 올해 1월 29일 200만 명을 넘어섰다. 18일 기준으론 211만 명. 지난 연말 한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올해의 인물' 설문조사의 방송·연예 부문에서 펭수가 20.9% 득표율로 송가인과 BTS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많은 동물 중 왜 펭귄인가? EBS엔 이미 성공한 펭귄 캐릭터 뽀로로가 있다.
"펭귄처럼 이족보행을 하는 동물이 유튜브에 어울린다. 펭수는 처음부터 B급 정서를 지향했다. A급인 뽀로로가 있으니까 그런 특징이 더 부각이 될 것 같았다. B급이 A급보다 만들기 어렵다. 자칫하면 C급이나 D급으로 떨어지기 쉽다."
―공익과 교육을 추구하는 EBS에서 왜 B급을?
"요즘 콘텐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의외성과 리얼리티라고 봤다. 의외성 측면에서 보자면 B급 전략이 다른 방송사보다 EBS라서 더 잘 먹힌다. B급 정서는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고, 내가 사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리얼리티도 있다. 무엇보다 애초에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EBS는 다른 방송사보다 시청률 경쟁이나 압박이 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굳이 다른 것을 만들 시도를 한 이유가 있을까?
"아이부터 어른까지 디지털 플랫폼에서 현실감이 묻어나는 콘텐츠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줘야 한다. EBS가 공신력과 교육적 가치를 갖고 있지만, 시청자와의 정서적 유대감이 약하다. 대부분 아기 아니면 어르신이 보는 채널 정도로 여긴다. EBS가 대중과 소통하려면 예능형 디지털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를 냈을 때 반응이 어땠나.
"'EBS가 왜 그런 걸?' 'EBS가 할 수 있어?'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건 다 쓸데없는 질문이다. 평가는 내부에서 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본 시청자들이 하는 것이다. 요새는 반응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해도 되느냐, 할 수 있느냐는 의문으로 탁상공론을 하는 것보다 일단 콘텐츠를 내놓고 반응을 보며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반대가 없었다는 얘긴가?
"디지털 콘텐츠라는 데 대한 기대감이 있다 보니까 한두 달 안에 뜨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잔소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역시 EBS에선 교육 콘텐츠를 해야 한다거나 펭수가 이상하게 생겼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걸 하나라도 귀담아들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콘텐츠 만드는 사람을 믿고 맡겼으면 좀 기다려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펭수가 예쁘지 않다는 건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눈동자가 너무 작아서 무섭단 얘기도 있다.
"예쁘고 귀여운 애를 뽑았으면 어땠을까? EBS 캐릭터에게 기대하지 않은 모습이라서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펭수 눈이 참 좋다. 초롱초롱한 눈이었다면 놀라거나 화나는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펭수 눈은 희로애락을 다 표현할 수 있다."
자이언트 펭TV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지만, 펭수는 성인, 그중에서도 20~30대에게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다. ‘어른의 뽀로로’란 별명이 붙을 정도다. 펭수가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수록곡 ‘You’ve got a friend in me’를 부른 2분 48초짜리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그의 위력을 알 수 있다. ‘나 진짜 일하다 너무 힘들면 화장실 가서 변기 위에 앉아 (이 노래) 듣고 힘내서 다시 일함’ ‘펭수는 열 살이라 아직 모를 수도 있겠지만 어른이 되면 정말 친구 만들기가 너무 어렵더라. 근데 펭수가 친구라고 이렇게 말해주니 눈물이 왈칵 나는 거야.’
―성인에게 인기가 많다는 걸 언제부터 알았나?
“지난해 7월에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펭수 팬 사인회를 열었을 때다. 번호표 뽑고 침 맞으러 다녀왔다는 어른부터 번호표 못 뽑았다고 우는 아이까지 팬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때 일부 팬이 정성 들여 만든 선물을 가져온 걸 보고 아이돌 문화를 체험한 20~30대가 골수 팬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성인도 같이 볼 수 있는 ‘E육대’(공중파 프로그램 ‘아이돌 육상 대회’를 패러디해 EBS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육상대회)를 기획했는데, 그걸 계기로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왜 어른까지 펭수를 좋아할까?
“열 살짜리 펭귄이 키가 너무 큰데 과체중이면서 연습생을 하겠단다. 게다가 방송에서 보면 못하는 것도, 실수도 많다. 그런데 펭수는 자기 자신을 이상형으로 꼽을 정도로 자기애가 강하고 당당하다. 부족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는다. 직장인들은 ‘사장이 친구 같아야 회사가 잘된다’ ‘잘 쉬는 게 혁신이다’ 같은 속 시원한 발언을 할 때 특히 좋아하더라. 이건 트렌드를 분석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성인 시청자를 겨냥한 것도 아니다. 불완전한 존재가 당당하면 할수록 매력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뿐인데,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잘 맞아떨어졌다.”

―기존 어린이 콘텐츠와 달리 교훈적인 이야기도 적고, 권선징악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다른 TV 프로그램을 패러디한 것도 많고 배경음악은 가요와 팝을 두루 아우르고 있다. 성인 취향에 더 맞는 콘텐츠 같다.
“교육방송에서 제작하는 입장에 서면 아이의 감정을 추측하게 된다. ‘아이들은 아마도 이런 걸 재밌어 할 거야’라고 만들지만 결국 ‘아이들이 이걸 보고 재밌어할까’라고 반문하게 된다. 유아층까지는 이런 예측이 유효한데,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아니다. 이 정도 나이만 돼도 ‘내가 EBS를 왜 봐?’라면서 부모랑 같이 TV를 보거나 유튜브를 이용한다. 나도 그 나이 때부터 어린이 프로그램 안 보려고 했다.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는데, 그 프로그램은 날 애 취급하니까. 어릴 적 부모님과 예능을 볼 때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고, 같은 지점에서 웃었던 기억이 났다. ‘왜 아이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가정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재밌어하는 것을 만들어도 승산이 있다고 봤다.”
―EBS 사장을 ‘김명중’이라고 부르는 것은 원래 대본에 있었던 것인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펭수는 남극에서 온 열 살이고, 한국의 위계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윗사람을 또래처럼 대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대빵’을 찾으면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학교에선 교장과, 정부 부처에선 장관과.”
―김명중 사장이 싫어하진 않았나.
“방송 초반 출근길에서 마주쳤을 때 ‘이제 저 좀 그만 팔아먹으세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은 아주 좋아한다. 얼마 전에 방송에 출연해 펭수가 만든 붕어빵을 맛있게 먹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레몬이 들어가서) 엄청 시고, 차가워서 맛이 없었을 텐데….”
펭귄 탈 쓴 사람이라고?… 펭수는 펭수다!
이날 준비해간 질문 중 한두 개는 이 PD에게 ‘정정’을 받아야 했다. “펭수의 눈동자를 왜 작게 만들었느냐”라는 질문은 “왜 눈동자가 작은 펭수를 영입했냐”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펭수가 실재하는 존재라고 믿지 않으면 인터뷰가 어려웠다. 펭수는 펭귄 인형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냐고, EBS가 만들어낸 캐릭터가 아니냐고 묻는 이들에게 펭팬(펭수의 팬)은 펭수의 대사를 인용해 이렇게 대답한다. “펭수는 펭수다, 눈치 챙겨!”
―리얼리티 예능이라고 해도 작가와 대본이 다 있다. 펭수의 애드리브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 형식으로 만든 방송에선 대부분 대본을 따른다. 현장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녹화할 때는 사전에 흐름이나 구성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펭수가 방송을 이끌어나갈 수밖에 없다. 한번은 펭수한테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들어왔는데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교육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대답하더라. 펭수는 완벽한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그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담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펭수가 그걸 제대로 짚어냈다. 이심전심인 것 같아서 그 애드리브가 기억에 남는다.”
―펭수에겐 성별이 없다.
“실제로 펭귄의 암수 구별이 상당히 어려워서 그렇다. 그런데 왜 암컷인지 수컷인지 결정해야 하는지 내가 묻고 싶다. 이 이상의 대답은 좀 난감하다.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한 다른 기사에 악성 댓글이 달린 적도 있고, 이것 때문에 펭수를 더는 좋아하지 않겠다는 반응도 받았다.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콘텐츠의 성별 구분은 명확했다. 여성 캐릭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색으로 꾸몄고, 남성 캐릭터는 운동을 잘하거나 로봇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세상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닌데 나는 왜 그런 것을 주입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게 나의 바람이다.”
―MBC 연예대상에서 남자신인부문 후보에 올랐다. 항의의 의미로 흰색 드레스를 입고 간 것인가.
“펭수가 시상자로 나서기로 했는데 후보에도 올랐다기에 약간 걱정이 됐다. TV에서 펭수가 남자신인부문 후보에 오른 걸 보고 ‘어어’ 했다. 하아, 원피스는 우연이었다. 그전에 참석했던 골든디스크 시상식에는 턱시도를 입고 머리핀을 꽂았다.”
펭수는 유튜브 100만 구독자를 넘긴 뒤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상업성을 갖게 됐다. 지난해 말부터 보건복지부, 외교부, LG생활건강, 의류 브랜드 스파오, 비발디파크 등과 영상 제작이나 펭수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 출시 등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관장과 동원참치 광고 모델로 나섰고, SPC에선 펭수빵까지 내놨다. 펭수 에세이 다이어리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는 지난 11월 28일 예스24에서 예약판매 개시 3시간 만에 1만 부가 팔려나갔다. 광고계에선 펭수가 유재석·전지현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 ‘탑급’의 광고 모델로 알려져 있다.
―광고나 협업을 많이 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러브콜이 있었다. 나를 비롯해 제작진과 사업 담당자들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계속 전화가 왔다. 그중에서 거르고 걸러서 한 건데, 많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다음 달부터 그 부분을 조정하려고 한다.”
―상업성 때문에 초심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팬도 있다.
“예능형 디지털 콘텐츠를 시작하면서 제작비에 쪼들리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아이템을 맘껏 하려면 제작비는 필수 조건이자 현실이다. 회의하면서 ‘이거 한번 해보자’ 하면 꼭 제작비가 걸린다. 연출자가 영업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콘텐츠가 힘이 있고, 다른 데서 콘텐츠와 협업을 원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되면 내가 굳이 발로 뛰어 영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초심을 잃고 갑자기 돈을 벌자고 이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수익성을 염두에 뒀다. EBS는 콘텐츠 회사니까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것이 당연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후배 연출자와 제작진이 상상력을 맘껏 펼칠 여건을 누구에게 빌리지 않고 자생적으로 만들어가는 시스템을 갖추고 싶다. 협업으로 협찬비가 들어오면 제작비에도 쓴다.”
―EBS가 주목을 받고 광고로 수입도 생겼을 텐데 보너스를 받았나.
“나는 안 받았다. 펭수는 EBS 정규직이 아니라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보너스를 받았다. 펭수가 참치를 좋아해서 월급을 참치로 받아간다. 하하. 꽤 많은 참치를 받지 않았을까.”
이 PD는 펭수를 머리와 가슴으로 낳은 엄마다. 둘이 “할 말은 안 참고 다 하는 성격이 닮았다”고 한다. 자식 같은 펭수 때문에 ‘펭수 한국 엄마’는 운 적이 있을까.
“부산 팬 미팅 때 맨 마지막에 사인을 받은 50대 여성 팬이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 좋아해도 돼요?’라고 하며 울먹였어요. 왠지 모르게 찡해서 눈물을 참으려고 시선을 돌렸는데 작가가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저도 못 참고 울고 말았죠. 펭수가 사람들 마음에 이렇게 커다란 자리를 차지한 존재라는 것이 감격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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