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낭만적 묘사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사실적 일상 담아내 [박상현의 일상 속 미술사]
그뿐 아니라, 총을 맞고 쓰러져 있던 인물은 곧바로 죽지 않고 계속 피를 흘리며 신음을 낸다. 대부분의 영화라면 컷을 해도 한참 전에 했겠지만 타란티노는 이 장면을 심할 정도로 길게 끌고 가면서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을 깨버린다. 그 바람에 이 영화는 사실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그 전에 나온 영화들이 틀에 박힌 묘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흔히 사실적(realistic), 혹은 사실주의(realism)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사실주의는 문화 속에 다양한 형태로 퍼져 있다. 영화와 미술 같은 시각예술뿐 아니라 문학에도 사실주의가 존재한다. 도대체 무엇이 사실적이며, 무엇이 사실주의일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영문으로 대문자 ‘R’를 사용하는 리얼리즘(Realism, 사실주의)은 특정시대의 유파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라는 사실이다. 특히 미술에서는 ‘만종’을 그린 장 프랑수아 미예(밀레), 귀스타브 쿠르베, 오노레 도미에 같은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들을 가리켜 사실주의라 불렀다. 이전 시대에 유행하던 감정적이고 낭만적인 묘사, 혹은 역사적인 소재를 그리던 습관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 그들 작품의 특징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다 보니 유독 더러운 옷과 지저분한 환경이 자주 등장한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얕은 욕조에서 힘겹게 몸을 씻는 장면은 여신이나 요정이 아름다운 포즈(라고 하지만 결국 남성관객들의 시선을 만족시키는 포즈)를 취한 과거의 그림들과 크게 다르다. 따라서 전통적인 회화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드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낯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현대인들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포즈일 뿐이다. 드가의 관심은, 그리고 많은 19세기 유럽화가들의 관심은 과거에 그려진 형식, 혹은 스키마(schema)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그리는 데 있었다. 물감을 덕지덕지 칠한 흔적이 그대로 살아있는 클로드 모네의 ‘해돋이의 인상’이 인물이 살아 숨쉬는 듯한 신고전주의 작품들보다 ‘사실주의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결국 미술에서의 사실주의는 그 결과물이 사진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사용되어 왔던 오래된 묘사의 틀을 거부하고 아티스트의 눈으로 본 것을 묘사하겠다는, 전통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오르낭에서의 매장’이 깬 것은 성직자에 대한 존경만이 아니다. 길이가 6.6미터나 되는 대작이지만, 과거의 대작들이 가지고 있는 엄중하고 성스러운 주제는 찾아볼 수 없다. 우선 제목부터가 오르낭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매장, 즉 하관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목에서 죽은 사람의 이름조차 알 수 없다. 화가는 ‘나는 삶과 죽음, 내세와 같은 거창한 주제는 물론이고, 죽은 사람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는 태도인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거창한 의미에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주의적인 태도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을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이전의 화가들이 관심이 있었던 주제들이 대개 역사와 종교 같은 무거운 주제였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풍경화를 제외하면 대개의 그림은 (심지어는 정물화까지도) 중요한 주제를 갖고 있었고, 특히 인물이 등장할 경우 관객은 그 주제를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쿠르베는 그런 관습과 분명하게 단절을 선언했고,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오르낭에서의 매장’이다. 관객이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하관식을 굳이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얼마나 과격하게 전달하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큐브릭의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는 장면은 그냥 일상의 모습일 뿐이고, 특별한 성적인 암시나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여성이 손을 그곳에 가져 간다는 것만으로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은 쿠르베의 작품이 성직자와 조문객이 참석한 하관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작품에서 삶과 죽음,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쿠르베가 이 그림을 그린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드가의 사실주의가 관습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면,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관습적 사고로부터의 탈피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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