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간 아웃백서 펑펑 울었다"는 연대 의대 새내기 글에 용기 낸 '가난 극복' 릴레이

장혜원 2020. 4. 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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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의 서울 신촌캠퍼스 교정 전경(왼쪽 사진)과 연세대 구성원의 익명 기고 글을 모아 놓은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 대나무숲’에 지난 10일 올라온 글. 연합뉴스, 페이스북 갈무리

“오늘 아빠가 아웃백을 사줬다. 그것도 4인 랍스터세트로. 언니와 내가 스파게티, 스테이크, 랍스터까지 먹는 모습을 본 아빠는 또 울었다.”

극심한 가난과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학업에 전념해 연세대 의대 정시전형에 합격한 새내기가 고백한 가정사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지난 10일 연세대 구성원들이 기고한 익명 글을 모아 둔 온라인 커뮤니티인 ‘연세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연대숲 #67450번째 외침’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에 따르면 그는 5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었으며, 당시 일용직 노동자로 근무하던 아버지는 8살, 5살배기 딸 둘을 키우기 위해 이른바 ‘노가다판’을 전전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힌 글쓴이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공주 같은 구두를 신고 누군가가 잔뜩 신경써준 머리를 하고 등교한 내 짝의 외모에 홀렸고, 그의 집에 놀러갔다”며 “그때 처음 알았다. 집 벽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 수 있단 것을, 신선한 과일이 준비되어 있단 것을, 미끄럼틀을 놓을 수 있단 것, 그리고 내가 가난하단 것을”이라고 어린 시절 자신을 둘러쌌던 가난했던 환경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놨다.

그의 언니는 취직을 위해 일찌감치 상고에 진학했고, 중학교에 진학한 글쓴이는 전교 1등의 성적 더분에 지역에서도 상위권으로 꼽히는 고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가 큰 사고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는 위기를 맞았다고 고백한 글쓴이는 “나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단 것을 깨달았다”며 “당장 나 하나 일을 안한다면 일 년에 한 번 새해를 맞아 다 같이 모여 먹는 두 마리에 8000원짜리 바싹 마른 전기구이 통닭을 못 먹게 되는 정도의 가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엄청 울었다”며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쉴 때까지 울었다”고 전했다.

이에 언니는 글쓴이가 학업을 지속하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해줬고 덕분에 고3까지 공부를 지속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와 지구과학에서 각각 1문제씩만 틀린 가채점표를 받은 글쓴이는 정시 전형을 통해 연대 의대에 입학했다고 전했다.
아웃백 홈페이지 갈무리
 
글쓴이는 입학 후 세달 동안 열심히 과외를 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밀린 월세 300만원을 갚고도 400만원을 남겼다고 한다. 이 돈을 언니와 아버지에게 반반씩 나눠줬고, 아버지는 그 돈으로 언니와 자신에게 외식 프랜차이즈 전문점 아웃백에서 4인 랍스터 세트를 사줬다고 전했다.

아웃백을 처음 가봤다고 고백한 글쓴이는 “아빠가 울어서 나랑 언니도 또 울었다”며 “울면서 4인 세트의 모든 음식을 다 먹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배가 찢어지게 부를 때까지 음식을 먹어 본 것은 처음”이라며 “앞으로 아웃백에 가서 4인 세트를 마음껏 먹는 인생을 언니와 아빠에게 선물해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 글의 반향은 엄청났는데, 13일 오후 3시24분 현재 42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1100여개의 댓글이 달렸으며 4300여회의 공유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1일 ‘연대숲 #67466번째 외침’과 12일 ‘연대숲 #67471번째 외침’(아래 사진)을 끌어냈다.

이들 글을 쓴 이들은 각각 원글(#67450번째 글)의 지은이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적 생활고와 더불어 불우했던 가정사를 털어놨다. 두 사람은 아버지를 먼저 떠나 보낸 악조건에도 공부를 지속해 연세대에 입학했던 사연을 털어놔 다시금 구성원들의 큰 호응을 끌어냈다.

특히 고액을 요하는 사교육을 받은 잘사는 집안의 자제들이 많이 입학한다는 명문 사립대에도 이런 편견을 깨는 감동적인 사연이 있다는 게 널리 알려져 더욱 시선을 모았다. 
 
다음은 연세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67450번째 외침’ 전문.
연대숲 #67450번째 외침:
오늘 태어나서 처음 아웃백에 갔다.
나는 엄마 얼굴을 잘 모른다.
내가 5살이 되던 해, 엄마가 죽었다.
빠듯했던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식당 일을 나가고 돌아오던 길에 차에 치였다고 한다.
엄마가 죽고 난 후 일용직 노동자- 소위 말하는 노가다꾼인 아빠는 8살배기, 5살배기 딸 둘을 혼자 키웠다.
우리를 없게 키우지 않기 위해 아빠는 피눈물을 흘렀지만, 애석하게도 아빠의 피눈물의 대가는 크지 않았다. 그냥 나와 내 언니와 아빠, 세 식구가 죽지 않고 살 정도였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너무나도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공주같은 구두를 신고, 누군가가 잔뜩 신경 써 준 머리를 하고 등교했던 내 짝의 외모에 홀려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집에 놀러갔다. 그 때 많은 것을 처음 알았다. 집 벽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 수 있단 것을, 집에 신선한 과일이 준비되어 있을 수 있단 것을, 집에 미끄럼틀을 놓을 수 있단 것을, 그리고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언니는 집이 가난했기에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해 상고를 갔다. 빨리 취직하고 싶다나. 나도 당연하게 언니처럼 될 것이라 생각했다. 미래에 대한 꿈이란게 없었다. 꿈을 꿀 형편이 아니었기에.
학교수업은 열심히 들었다. 그냥 심심해서, 할 일이 없어서, 아니 어쩌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의 재능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 줄까 하는 기대감에 들었다. 결과는 전교 1등이었다. 내 재능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라는 희망이 현실로 다가온 첫번째 순간이었다.
중학교 시절을 ‘공부 잘 하는 아이’로 보낸 나는 지역에서 공부 잘 하기로 소문난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고등학교에 갔더니 성적이 팍 떨어졌다, 이런 진부한 클리셰가 아니었다. 첫 고등학교 시험에서 전교 2등을 했다. 자부심이 컸다. 학원 하나 안 다니고,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문제집 야금야금 사서 전교 2등을 했다는 게.
계속 공부하면 되겠다, 우리 가족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 줄 수 있겠다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런데 아빠가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났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나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나 하나 일을 안한다면, 일 년에 한 번 새해를 맞아 다 같이 모여 먹는 두 마리에 8000원짜리 바싹 마른 전기구이 통닭을 못 먹게 되는 정도의 가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엄청 울었다.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쉴때까지 울었다. 언니가 나를 안아줬다. 그리고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을 해줬다. 어떻게든 언니가 돈 벌어올 테니, 너는 공부 해서 개천에서 용 한번 제대로 나 보라고. 언니가 너무 고마웠고 너무 미안해서 죽을 지경으로 공부했다.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문제집을 샀고 언니가 보태준 돈으로 인터넷 강의 무제한 수강권을 샀다.
힘들어하고 슬퍼할 겨를이 없는 고3을 보냈다. 나에겐 두 번의 기회는 절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리고 아빠가 싸준 기름범벅 김치볶음밥을 싸들고 수능장으로 향했다.
수능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 채점을 할 때까지 계속 다리를 떨었다. 언니랑 아빠가 나를 위해 희생해준 것이 아무 소용 없어질까봐.
심호흡을 하고 채점을 했다. 국어 2점짜리, 지구과학 2점짜리에 X표가 쳐져있는 가채점표를 붙들고 온 가족이 목놓아 울었다. 아빠가 엉엉 울며 언니와 나에게 사과했다. 언니와 내가 그렇게 가자고 조르던 아웃백 한 번 못 데려다 준 못난 애비 밑에서 잘 커줘서 너무 미안하다고.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연세 의대생이 됐다. 현역 정시 연의라는 여섯 글자가 참 대단한 것이더라. 근 세달 열심히 과외해서 밀린 월세 300을 갚고도 400만원이 남았다.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언니와 아빠에게 반반 나눠 줬다.
그리고 오늘, 아빠가 아웃백을 사 줬다. 그것도 4인 랍스터 세트로. 언니와 내가 스파게티와 스테이크와 랍스터까지 먹는 모습을 본 아빠는 또 울었다. 아빠가 울어서 나랑 언니도 또 울었다. 울면서 4인 세트의 모든 음식을 다 먹었다. 배가 찢어지게 부를 때까지 음식을 먹어 본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배가 찢어질 때까지 음식을 먹어 본 아빠와 언니의 모습도 처음이다. 정말 좋아보였다. 인생의 한 줄기 빛이 열린 우리 모두의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다짐했다. 우리 아빠, 우리 언니에게 생일이 아니라, 새해 첫날이 아니라,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먹고 싶으니까 아웃백에 가서 4인 랍스터 세트를 시켜 먹을 수 있는 인생을 선물해 주기로.
 
장혜원 온라인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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