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수목원에 알리움이 활짝 피었습니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0. 6. 1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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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 '색의 향연' 수채화 속을 걷다 / 태안 끝자락 '푸른 눈의 한국인'이 만든 아름다운 정원 / 바이올렛 알리움· 핑크 노랑 절묘한 삼색참죽나무·노랑꽃 창포·연분홍 만병초 인사
연두색 줄기에 얹힌 탐스러운 바이올렛 빛깔. 여러 개의 작은 꽃이 모여 커다랗고 완벽한 둥근 공 모양을 완성했다.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꽃 이름은 알리움. 하지만 화려한 자태와 달리 꽃말은 ‘멀어지는 마음’ 또는 ‘무한한 슬픔’이다. 꽃잎 하나하나가 눈물을 닮아 이런 꽃말이 붙었단다. 이토록 탐스럽고 예쁜 자태를 지녔는데 슬픔이라니. 꽃말을 바꿔야겠다. ‘완벽한 사랑’쯤으로. 바다와 노을, 그리고 한 사람의 열정이 빚은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 사랑스러운 알리움이 활짝 피었다.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 큰연못정원에 바이올렛 빛깔의 알리움과 노랑꽃 창포, 연분홍 폰티악 만병초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신비로운 미지의 숲에 서 있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 신비로운 미지의 숲을 거닐다
천리포수목원 입구에서 명물 삼색참죽나무 플라밍고와 가을이면 화사한 붉은 꽃으로 물드는 배롱나무가 여행자들을 반긴다. 삼색참죽나무는 물이 빠진 듯한 단풍색과 노란빛이 뒤섞여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자연이 비상한 솜씨를 부리는 마법의 나무다. 한에 세례나 옷을 갈아입기 때문이다. 보통 나무들은 봄이 되면 연두빛 새순이 돋아나지만 삼색참죽나무는 다르다. 따사로운 햇살을 따라 잎들은 먼저 밝은 핑크빛으로 물든다. 그 색이 플라밍고로 불리는 홍학의 깃털과 같아서 이런 품종 이름이 붙었다. 여름에 가까워지면 붉은 기운은 점점 옅어지면서 연노란색으로 바뀌고 더위가 절정에 이르면 드디어 초록빛이다. 초여름으로 다가서는 요즘은 핑크와 노랑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세상 어디서도 볼 수없는 수채화를 그려냈다.
천리포수목원의 놀라움은 이제 시작이다. 입구를 지나면 큰연못정원이 펼쳐진다. 연잎이 둥실 떠있는 연못 가장자리는 철쭉과 비슷하지만 더 옅고 순수한 느낌의 연분홍 폰티악 만병초가 화사하다. 곁에는 청초한 노랑꽃 창포 한 무리가 수를 놓았고 이어 알리움이 곳곳에서 하늘거리며 이국적인 정원을 완성한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미지의 숲에 서 있는 착각에 빠져 한참을 바라본다.

만병초는 천상초(天上草)로도 불리는데 꽃들이 만들어낸 풍경이 정말 천국에 서 있는 기분이다. 눈을 감으면 마치 방금 코 주위에 향수를 뿌린 듯 비강이 향기로움으로 채워진다. 만병초 덕분인데 꽃에서 나는 좋은 향이 멀리 퍼져 칠리향(七里香)으로 불린다. 브루스 브릭히르빌, 타우러스, 폰티악, 할렐루야, 해크멘스 플라릭스 등 다양한 만병초가 수목원의 식구들이다.

큰연못 왼쪽은 소나무가 도열한 산책로. 역시 알리움이 길옆 수풀을 장식하며 환상적인 모습을 만든다. 봄이면 목련, 수선화, 동백나무, 마취목, 만병초가 앞다퉈 피어나 장관을 이루는 천리포수목원은 이제 여름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알리움을 시작으로 수국, 수련, 상사화, 노루오줌, 연꽃, 태산목, 원추리가 싱그럽게 장식한다. 작은연못정원 앞이 수국원이다. 여름으로 더 깊이 다가갈수록 연못 주변은 다양한 색의 수국으로 가득 물든다.
천리포수목원 화분 조형물
# 푸른 서해바다, 노을 그리고 나무와 꽃

수목원은 태안반도 끝자락, 천리포해수욕장과 만리포해수욕장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덕분에 탁 트인 서해바다와 노을, 나무와 꽃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푸른눈의 한국인’ 민병갈(미국명 Carl Ferris Miller)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청년은 23살이던 1945년 미국 정보장교로 한국에 파견된다. 그는 태안반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한국에 눌러앉아 새 삶을 시작했다. 1962년부터 천리포의 민둥산을 매입해 나무와 꽃을 심기 시작했는데 목련, 호랑가시나무, 동백류 수집 규모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불어나면서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세계수목원협회에서 인증하는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됐다.

나무와 꽃을 존엄한 생명체로 여긴 민병갈은 인간이 즐기는 곳이 아닌, 오로지 나무를 위한 수목원으로 가꿔 나갔다. 이에 수목 전문가와 후원자들에게만 입장을 허용하다 1970년에야 그의 본명을 딴 밀러가든만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밀러가든은 65㎡이고 수목원 전체 규모는 593㎡에 달한다. 다양한 식물과 나무 1만6000여종이 자라며 매년 4월이면 목련 축제가 펼쳐진다. 전세계에서 수집한 약 840분류군의 목련이 수목원에 심어졌고 밀러가든에서는 그중 110분류군을 봄부터 가을까지 즐길 수 있다.

솔바람길, 오릿길, 민병갈의 길, 꽃샘길, 수풀길, 소릿길로 산책로가 다양하다. 꽃샘길에서는 이른 봄부터 늦겨울까지 다양한 꽃과 열매를 만난다. 설강화, 크로커스, 수선화, 무릇, 석산 등이 무리지어 피어나니 샘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수풀길에서는 작게 부서진 나무껍질을 밟으며 산책한다. 우람한 나무와 초록으로 가득한 수목원에서 가장 고요한 곳으로 새들의 합창을 늘 즐길 수 있다. 소릿길에서는 바닷바람에 잎사귀가 부대끼며 속삭이고 풀벌레가 노래한다.
천리포수목원 whrkrtkd
천천히 사색하며 수목원의 길들을 구석구석 돌아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서해바다에 노을이 내리기 시작한다. 솔바람길로 들어서면 낙조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서해전망대가 나타난다. 연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벤치에 앉아 수목원 앞 낭새섬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없이 평화롭다. 낭새섬도 수목원이 관리하는 곳으로 하루 두 차례 바다가 갈라지며 500m의 길을 내어준다. 천리포 마을 사람들은 섬이 닭 벼슬같이 생겼다고 ‘닭섬’이라 부른다. 바다직박구리는 낭떠러지에 집을 짓고 살아 낭새로 불리는데, 민병갈은 낭새가 이 섬에 살았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새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며 낭새섬으로 이름을 지었다.

전망대 인근 한옥 해송집은 민병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옥을 사랑한 그는 1970년 서울 무악재에서 헐리게 된 한옥 5채를 수목원으로 옮겨 해송집과 소사나무집 등 한옥을 지었다. 깎아지른 해안 절벽 위에 바다를 내려다보고 선 해송집은 수목원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여행자들은 하룻밤 머물면서 힐링할 수 있다. 민병갈의 길에서는 기념관, 흉상, 수목장 나무 등을 만날 수 있고 그가 가장 아끼던 완도호랑가시나무, 초가집 등도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태안=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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