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에세이]'용길이네 곱창집' 내일은 꼭 좋은날이 올 것 같아

‘용길이네 곱창집’은 못 돌아온 그들의 이야기다. 뜨고 내리는 비행기 소리가 귀를 뚫을 듯 하고, 천장에선 비가 새 대야에 한가득 물이 차는데, 소박한 화로 위엔 지글지글 고기가 타고, 장구소리 한가닥에 “닐리리야”를 부르며 밤이 더 빨리 사라지길 바라는, 어떻게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恨)이다.
전쟁에서 왼팔을 잃은 김용길은 전처 사이에서 얻은 첫째 딸 시즈카, 둘째 딸 리카, 지금의 아내 고영순이 데려온 셋째 딸 미카 그리고 영순 사이에서 낳은 아들 도키오와 함께 곱창집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어린시절 사고로 절름발이가 된 시즈카는 한국서 온 남자 윤대수에게 서서히 마음을 주지만, 엄마 영순은 예쁜 딸이 일본어도 못하는 한국인과 사귀는게 탐탁지 않다. 리카는 대학까지 나온 남편 데쓰오가 일을 구하지 않고 동네 남자들과 어울려 술만 마셔 속상하다. 클럽에서 일하는 미카는 말끔한 남자 하세가와를 만나지만 그는 유부남이다. 막내 도키오는 유명 사립학교에서 다니지만 ‘김치’라고 불리며 이지매를 당한다.
학교만 가면 온갖 폭행에 모멸감까지 받는 도키오가 계속해 결석하자 아내 영순은 용길에게 “조선학교로 보내자”고 하지만, 그는 “우리는 계속 일본에서 살아야 한다”며 허락하지 않는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 이유없이 멸시와 조롱과 폭력으로 가득한 그 운명에 어떻게든 맞서야만 그나마 살 수 있다는 그 억울함을 차마 내 입으로 아들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 마음을 알았을까, 작품의 흐름은 영화보다 연극에 가깝다. 장과 막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개인별 에피소드가 툭 툭 튀어나오면서 이야기는 장면 장면에 집중하게 한다. 관객들이 유추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을 그대로 따라가다보면 웃다 울다가 펑펑 울다가 ‘내일은 오늘보다는 낫겠지’하는 여운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서게 된다. 그게 작품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은 모두 ‘주변인’이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거나, 그 사이에도 못 끼거나. 예쁘고 착실한 시즈카는 다리를 절고, 리카는 바람을 피우고, 미카는 유부남과 사귀고, 도키오는 왕따에···아버지 용길조차 왼팔이 없는 불구다. 곱창집에 들락거리는 이들도 모두 나사가 하나씩 빠진듯한 사람들뿐이다. 나사가 빠져야만 살 수 있다는 그걸 아는걸까, 살다보니 그렇게 된걸까, 아니면 그렇게 살아야 어떻게든 오늘 하루만이라도 버틸 수 있는걸까.
잠깐의 아름다운 석양은 긴 밤으로 바뀌고, 다시 뜨겁게 해가 떠오른다. 순간의 아름다움이 지나면 긴긴 밤이 오듯 잠깐의 헛웃음 뒤에 걷잡을 수 없는 소동과 고통이 되풀이된다. 용길은 말한다.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다 보니 오늘이 됐다.”

신도시 임대아파트에 살던 어린 시절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친구들이 싫었고, 아줌마들 싸우는 소리가 싫었고, 해질 무렵 퇴근해 저만치서 걸어오는 엄마의 무표정한 얼굴이 싫었다. 아니 지금 돌아보면 하늘위로 날아가는 내 홈런볼이 좋았고, 또 다쳤냐며 약 발라주는 아줌마들이 좋았고, 석양 앞으로 찬찬히 걸어오는 엄마는 아주 살짝 웃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한달을 일년을 십수년을 보냈다. 이제는 “좋은 봄날 저녁이다. 이런 날은 내일을 믿을 수 있지. 설령 어제가 어떤 날이었든지, 내일은 꼭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라는 그 말을 듣고 이해하며 감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산다는건 정말 참 좋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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