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 암스테르담은행 설립

네덜란드의 풍요는 어디에서 왔을까. 16~18세기의 고성장 덕분이다. ‘네덜란드의 황금기’로 불리는 이 시기 동안 연평균 성장률은 2%대 초반. 두 자릿수 성장률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한국인의 눈에는 낮은 성장률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다른 나라들은 1% 미만의 성장에 머물렀다. 200년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한 네덜란드의 성장동력은 진취적인 사고와 허례보다 실질과 신용도를 중시하는 습성에 있다. 네덜란드의 성장을 상징하는 회사도 둘 있다. 영국보다 먼저 생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와 암스테르담은행. 둘은 대조적이다. 모험적인 전자와 달리 후자는 태생적으로 ‘안전’을 추구한다.
1609년 1월31일 설립된 암스테르담은행의 공식 명칭은 비셀방크(Wisselbank)로 교환 또는 환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설립을 주도한 시 의회는 주화 간 공정한 교환을 위해 이 은행을 만들었다. 국제금융의 새로운 중심도시로 부상한 암스테르담에서 통용되던 주화는 무려 1,000여종. 합스부르크 왕가에 맞서는 독립운동의 와중에 중앙집권적인 정치 시스템도 없어 함량이 떨어지는 주화를 주조하는 민간 주전소도 활개를 쳤다. 1604년 민간 금융업자를 전면 불법화하는 조치까지 발동했던 의회는 결국 지급결제의 독점권을 갖는 암스테르담은행 설립에 이르렀다.
암스테르담은행은 예금 수취와 결제 서비스뿐 아니라 통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공개시장 조작에도 나서 간혹 최초의 중앙은행으로도 간주된다. 근대 경제학의 시조 격인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1776년)’에서 암스테르담의 ‘은행화폐’가 갖는 이점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암스테르담은행이 네덜란드 황금기를 이끈 요인이었는지 혹은 그 결과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두 가지다. 네덜란드 경제와 함께 쇠퇴하며 1819년 파산했으며 잉글랜드은행 등 현대적 중앙은행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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