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 골퍼] 'Big Three'의 시대, 아놀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게리 플레이어
잭 니클라우스를 거쳐, 위대한 삼두마차의 시대 즉 바이런 넬슨, 샘 스니드, 그리고 벤 호건의 시대를 거친 이후에 골프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골프에 있어 ‘카메라’를 이용한 미디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Big Three 라고 불리는 3명의 골퍼가 등장하게 됩니다.
작가 소개: 골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즐기며, 누군가가 저로 인해 한 타를 줄였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는 골프 칼럼니스트 김태훈입니다.
<’The King’ – 아놀드 파머>
카메라의 등장과 더불어 골프에 가장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사람은 단연 아놀드 파머입니다. 아놀드 파머는 골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그리고 1950년대에 시작된 ‘텔레비전 시대’에 있어서 최초의 슈퍼스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놀드 파머 이전의 골프는 뭔가 귀족적이고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였다면, 아놀드 파머 이후의 골프는 더욱 대중적으로 친근하게 다가서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이는 아놀드 파머의 성장 배경과도 연관이 있는데, 코스트 가드 즉 해안 경비대의 일원으로 군복무를 했고, 그의 아버지 역시 철강 노동자를 거쳐 골프 프로가 된 이력이 있습니다. 즉 미국인들에게 있어 아놀드 파머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더욱 친근함을 느끼고 응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놀드 파머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Arnie’s Army’ 입니다. 바로 아놀드 파머를 응원하는 팬덤을 부르는 용어인데, 후에 그가 만든 자선 재단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의 자랑인 BTS의 팬을 뜻하는 Army 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확인해 보니 다른 의미더군요.)
안타깝게도 아놀드 파머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이룩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끝까지 공략하지 못했던 대회가 바로 PGA 챔피언십인데, 이 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커리어 동안 PGA 투어 통산 62승을 기록했으며, 이 중 7승을 메이저에서 따냈습니다.
아놀드 파머는 또한 PGA 투어에서 최초로 상금액 순위에 있어 100만불을 돌파한 골퍼입니다. 아놀드 파머 어워드는 현재는 그 해에 가장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신인에게 주는 상이지만, 과거에는 가장 많은 상금을 획득한 골퍼에게 주는 상이었습니다. 아놀드 파머의 상금 경력이 아무래도 이러한 상을 만드는데 기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아놀드 파머는 그의 이름을 ‘브랜드화’ 시킨 골퍼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이 들어간 여러 사업모델을 만들어서 꽤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대회인 Arnold Palmer Invitational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가 열리고 있으며, 이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아놀드 파머를 기리는 의미로 붉은 색 카디건 스웨터를 수여합니다. 참고로 아놀드 파머의 손자는 현재 PGA Tour에서 활약 중인 샘 손더스 (Samuel Palmer Saunders)입니다.
<’세기’의 골퍼 – 잭 니클라우스>
잭 니클라우스를 이야기할 때 ‘Player of the Century’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즉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골퍼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만큼 골프에 있어서 그의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만약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가 동시대에 활약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 모두 더 많은 승수를 올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잭 니클라우스는 사실 아놀드 파머에 비해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뒤쳐져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골프 팬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서는 아놀드 파머에 비해서, 잭 니클라우스는 조금 무뚝뚝한 외모와 더불어 자신의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기 때문에 그런 경기 외적인 부분에 의해서 저평가를 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많은 골퍼들이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이제 다승 부분에서는 타이거 우즈가 잭 니클라우스를 넘어서서 공동 1위에 올라있지만, 잭 니클라우스가 이룩한 메이저 대회 18승의 기록이 깨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좀 더 우세한 것 같습니다. 잭 니클라우스는 당연히(?)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였는데, 그의 나이 26세였습니다. (참고로, 타이거 우즈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시기가 24살이었으니, 타이거 우즈 역시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잭 니클라우스는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을 형성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사람이 골프뿐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서로 라이벌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름을 딴 ‘음료’, ‘의류’ 회사를 가지고 있었고, 골프 코스 디자인에서도 서로 경쟁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붙이진 않았지만, 메모리얼 토너먼트는 잭 니클라우스가 만든 인비테이셔널 대회로,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보다는 조금 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놀드 파머가 대회를 만든 이유가 잭 니클라우스와의 경쟁심리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그 라이벌 의식이 얼마나 더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잭 니클라우스는 골프 코스 디자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도 그가 설계한 골프장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이 붙은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미스터 피트니스 – 게리 플레이어>
마지막으로 소개할 골퍼는 바로 게리 플레이어입니다. 앞서 설명한 두 골퍼와는 달리 미국인이 아닌, 남아공 국적의 골퍼입니다. 게리 플레이어는 사실 조금은 불행한 골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전성기에 거대한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입니다. 게리 플레이어는 PGA 투어에서 24승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두 선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승수가 적어 보이긴 하지만, 그가 다른 투어에서 활약한 성적까지 합치면 100승이 넘는 성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메이저 대회에서만 9승을 올려서, 이 부분에서는 벤 호건과 함께 공동 4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리고 이 메이저 대회에 있어 4개의 서로 다른 대회를 우승하면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이룩한 골퍼, 특히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기록한 ‘비(非) 미국인’ 골퍼로 인정받습니다.
게리 플레이어는 사실 일반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골퍼라고 생각합니다. 팔순이 된 나이에도 잘 유지된 몸매를 선보여서 화제가 된 적이 있고, 자신의 신체적인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피트니스를 꾸준하게 연마했다는 점에서 교훈을 줍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 중 하나가 미스터 피트니스 (Mr. Fitness) 입니다. 함께 경쟁했던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와는 달리 168 센티 미터의 단신이었던 게리 플레이어는 피트니스와 식이 요법 등을 통해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몸이 문제라는 핑계는 대지 말아야겠습니다.)
게리 플레이어 역시, 골프 코스 디자인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Gary Player Design’ 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이후에 전세계 곳곳에 약 400여개 이상의 골프 코스를 설계하였습니다.
<Big Three – 메이저 34승, 전세계 주요 투어 377승>
이 세 명의 선수가 합작한 기록은 그저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3명이 기록한 메이저 대회 우승수는 총 34승(이 중 마스터스에서만 13승), 메이저 대회에서의 Top 10 기록이 150회, 메이저 대회 준우승 기록 33회, 전세계 주요 투어에서 377승, 1000 개 이상의 골프 코스 설계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이벌 사이의 선의의 경쟁은 정말 골프에 있어 큰 재미요소임에는 분명합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라이벌들이 기억에 남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