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벤츠와 고트리프 다임러는 최초로 가솔린 엔진을 이용해 자동차를 만든 이들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라는 세계적 브랜드도 이들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죠. 하지만 이 삼각별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 두 사람 외에 빼놓아선 안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렸듯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가면 칼 벤츠와 고트리프 다임러 흉상과 함께 당당하게 자리한 빌헬름 마이바흐의 흉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이 자동차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는데요. 인생 선후배, 직장 상사와 직원의 관계를 뛰어넘었던 고트리프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의 우정이 없었다면, 메르세데스-벤츠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빌헬름 마이바흐는 기관에 위탁된 채 학업을 이어갑니다. 그의 남다른 손재주는 기계공장에서도 발휘됐고, 당시 부루더하우스라는 기관의 기계공장 책임자였던 고트리프 다임러 눈에 띈 빌헬름 마이바흐는 다임러와 발명가로, 사업 파트너로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빌헬름 마이바흐의 진가는 엔진 제작에서 특히 두드러졌죠. 다임러가 세운 자동차 회사 DMG는 그가 죽은 해인 1900년 큰 전환점을 맞습니다. 에밀 옐리넥이라는 사업가의 제안 때문이었는데요. 자동차 경주에 관심이 많았던 에밀 옐리넥은 DMG에 자신이 요구하는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어줄 수 있겠느냐고 문의합니다.
그때 DMG의 기술 파트를 책임지고 있던 빌헬름 마이바흐는 제안을 받아들여 35마력짜리 최초의 4기통 엔진을 개발합니다. 결과에 만족한 에밀 옐리넥은 이 차에 자신의 딸 이름을 넣었고, 이 이름 ‘메르세데스’는 가장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회사를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고트리프 다임러가 없는 DMG와 갈등을 겪던 빌헬름 마이바흐는 1909년 DMG를 나와 슈투트가르트 근처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마이바흐 엔진 제작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DMG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던 큰아들 칼 마이바흐와 회사를 함께 이끌게 되죠.
마이바흐 엔진 제작 회사는 그라프 체펠린이 만든 유명 비행선이나 기차, 그리고 항공기, 선박 등에 들어가는 엔진에 집중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자동차를 만들 생각을 빌헬름 마이바흐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들 칼 마이바흐는 달랐죠. 그의 주도로 1919년 처음으로 완성차 시장에 뛰어들게 되는데요. 1920년부터 1941년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약 1,800여 대의 마이바흐 엠블렘이 장착된 자동차가 생산됐습니다.

오늘 찾은 박물관은 현존하는 약 160여 대의 마이바흐 모델 중 16대가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안나와 헬무트 호프만이라는 수집가 부부의 열정이 빚어낸 결과물이었죠. 두 사람은 꾸준히 마이바흐 자동차와 그 관련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결국 노이마크트(Neumarkt)라는 작은 도시에 박물관을 세웁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제작하던 익스프레스-베르크사의 공장 자리에 들어선 마이바흐 자동차 역사박물관의 첫인상은 ‘깔끔하다’ 였습니다. 규모는 작았지만 곳곳을 신경 썼는데, 좀 이상한 얘기인지 몰라도 그 중 화장실 디자인이 가장 독특하고 멋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이용 중이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안마당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매표소 및 안내 데스크가 있습니다. 이곳을 바라보고 우측이 마이바흐 자동차 전시실이고, 좌측에는 결혼식이나 모임이 가능한 홀, 그리고 그 홀과 함께 익스프레스-베르크가 만들었던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있는 작은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습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오래된 마이바흐 모델 하나가 방문객의 시선을 끕니다. 1930년대 후반쯤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DS8 체펠린은 도색이 다 벗겨진 채로 전시돼 있었죠. 전쟁 후 소련군이 가져가 버스로 사용이 되는 등, 매우 험하게 이용됐습니다.. 부품은 전부 러시아 것들로 교체가 되는 등, 몸체만 일부 원형을 유지한 채였고, 1991년까지 실제 사용이 된 것으로 박물관 측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마이바흐 자동차는 역사가 짧은 만큼 만들어진 모델이 다양한 편은 아닙니다. 간단히 라인업을 살펴보면, 우선 1919년 만들어진 프로토타입 W1부터 시작됩니다. 2년 후인 1921년 베를린모터쇼에 출품된 첫 번째 마이바흐 W3이 첫 번째 판매용 모델이었습니다. (W2는 엔진이었음)

5년 후에는 6기통 엔진의 W5가, 그리고 마이바흐의 12기통 엔진 시대를 연 마이바흐 12가 1929년에 생산됐죠. 이후 12기통 라인업은 체펠린 비행선용 엔진을 개발 납품하던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DS7 체펠린, DS8 체펠린 등, 체펠린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말 그대로 마이바흐를 상징하는 모델입니다.

DS는 더블 식스, 그러니까 6기통 엔진이 두 개라는 것을 나타내며, 7은 7리터, 8은 8리터급 배기량을 의미합니다.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격벽이 설치된 풀만(Pullman) 세단으로 판매되는 등, 화려함을 뽐냈지만 너무 비싸고 고급스러웠기에 돈을 벌 수 있는, 판매량을 늘리는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가격 부담을 줄인 6기통 모델 DSH(Double Six half)가 생산되는데 이는 1935년부터 마지막 해인 1941년까지 생산된 SW 시리즈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SW(Schwingachswagen)는 스윙 액슬 서스펜션이 적용된 자동차를 뜻합니다. 가장 많이 팔렸고, 그래서 가장 대중적이던 것이 바로 SW 시리즈였습니다. 체펠린보다 저렴했다고는 하나 웬만한 사람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는 것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DS8 체펠린 옆에는 붉은색의 마이바흐 DSH가 세워져 있습니다. 박물관 측 설명에 따르면 해당 모델은 1934년에 생산된 모델입니다. 마이바흐 DSH는 12기통 마이바흐만을 인정하던 당시 분위기 때문에 50대만 만들어진, 나름 귀한 모델입니다. 현재는 그중 단 3대만이 남아 있는데, 그 3대 중 한 대가 바로 이 모델이라고 했습니다.
차가 붉은색인 이유는 특이하게도 지역 소방대가 소유를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1960년 한 수집가가 다시 구매를 한 뒤 50년을 잠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2017년에야 박물관 측이 사들여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됐습니다.
붉은색 DSH 뒤로는 정말 다양한, 그리고 소소한 마이바흐와 관련한 서류나 사진 자료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거, 라이타, 재떨이, 시계 등 마이바흐 이름이 새겨진 다양한 당시 제품들도 함께 전시돼 있습니다. 브랜드가 너무 이곳저곳 막 사용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전시된 소품과 자료들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사진과 함께 복원된 마이바흐 자동차를 보게 됩니다. 그중 카브리올레 한 대에 시선이 멈췄는데요. 처음 이 차를 발견했을 때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분해되고 망가져 있었다고 합니다. 하체에 새겨진 시리얼 번호 1450을 통해 이 차가 1937년쯤 제작된 마이바흐 DS8 체펠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V12 엔진, 200마력, 그리고 최고 시속 170km/h까지 달릴 수 있었던 최고급 모델은 누락된 부품 등을 다시 살려내는 등, 오랜 복원 작업 끝에 원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벽에 걸린 사진은 1931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디자인 경연대회에서 DS8이 우승한 것을 기념해 찍은 것이라고 합니다.



멋지게 복원된 체펠린 카브리올레를 보고 나면 접근을 막아놓은 중앙 전시 공간에 다다릅니다. 이곳에선 쭉 늘어선 10여 대의 마이바흐 SW 시리즈를 볼 수 있죠.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습니다. 복원된 SW 시리즈들을 찬찬히 훑다 보면 짧았지만 화려했던 마이바흐 자동차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되고,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마이바흐가 계속 자동차를 생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마이바흐 엔진 제작 회사는 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자동차를 더는 생산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전쟁 후인 1960년, 그러니까 칼 마이바흐가 사망한 그 해에 자동차 부분을 다임러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그 외의 엔진 제작 부분은 항공기와 선박 용 엔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다른 회사에 넘기게 되죠. 그렇게 마이바흐 가족 회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도 다행히 다임러는 마이바흐와 그들이 만든 자동차의 가치를 되살렸습니다 중간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다임러는 지금의 자신들이 있게 해준 마이바흐라는 이름을 붙잡고 갈 것입니다. 여전히 마이바흐는 최고에 어울리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글/이완(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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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기본 정보>
박물관명 : 마이바흐 자동차 역사 박물관 (Museum für historische Maybach-Fahrzeuge)
브랜드명 : 마이바흐
국가명 : 독일
도시명 : 노이마크트(Neumarkt)
위치 : Holzgartenstraße 8, 92318 Neumarkt in der Oberpfalz
건립일 : 2009년
휴관일 : 월,화요일
이용시간 : 오전11:00~오후 5:00
입장료 : 성인 8.50유로 (6세 이하 어린이 무료), 사진 촬영비 2,50유로 별도
홈페이지 : automuseum-maybach.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