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8명 "AI시대, 빈부격차 더 벌어질 것" [탐사기획 - 노동4.0 별 '일' 없습니까]


그러나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각 응답자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AI가 인간의 노동을 얼마나 대체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함을 알 수 있다. 현재 AI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 대기업 엔지니어는 “일자리는 줄어들 것 같다”면서도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으려면 인간에 준하는 지능과 판단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하는데, 돌발 상황이나 상식에 의한 판단 혹은 윤리 문제로 논리를 뒤집는 결정을 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반면 한 국책 연구기관 소속 정보학자는 “AI로 인해 신산업과 새로운 사업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는 일에 따라 일자리의 미래, 노동의 내일에 대한 걱정은 강도를 달리했다.

반대로 인간이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예술·서비스 및 여가 관련 서비스업(75.7%), 출판·영상·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47.1%),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38.6%) 순으로 나타났다.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응답자들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화·예술 분야의 상당 부분이 AI에 대체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인공지능 기업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는 “우리가 보기에 예술은 창의적일 수 있지만, 정말 창의적이어서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건 전체 예술 직군의 10%밖에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머지 90%는 반복노동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창의력보다 규칙적으로 기존의 것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문화 콘텐츠라면 AI가 인간보다 더 빨리 배우고 제작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AI의 도입으로 어느 세대가 가장 큰 타격을 볼 것인지를 두고는 10대(27.1%)와 20대(22.9%)가 높게 나타났다. 현재도 일자리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놓고 AI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말이다. 기술 진보를 인정하면서도 대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이 아닌 다음 세대’로 생각하는 경향으로도 풀이된다.

◆“‘일자리 수’와 ‘일의 양’, 구분해 생각해야”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어느 정도로 대체할지에 대해선 ‘30∼40%’라는 응답자(25.7%)가 가장 많았다. 아울러 ‘20∼30%’라고 본 응답자(20.1%)와 ‘50∼60%’라고 본 응답자(15.7%)가 뒤를 이었다. 전체 응답자 중 32%는 전체 일자리 중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응답자들은 일자리를 ‘일자리의 수’로 보는지 또는 ‘일의 양’으로 보는지에 따라 엇갈린 의견을 갖고 있었다. 일례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들 사이에서는 “AI 자체가 노동 효율화를 위해 개발된 것”, “자동화의 영향으로 수작업이 줄어든다”며 일의 ‘양’이 줄어들 것이라고 본 시각은 물론, “기계가 사람 업무를 대체하고 있어 일자리 감소는 시간문제”라며 일자리의 ‘수’를 중심으로 생각한 답변도 있었다.
전 원장은 이를 두고 “일자리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일자리 총량이라는 게 일의 양인지, 일자리의 숫자인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의 양은 줄어들 것이고, 일자리 숫자가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응답자의 82.9%는 빈부격차가 지금보다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줄어들 것이라는 반응은 5.7%에 불과했다. 학계와 AI업계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회 미래연구원 여영준 박사는 “임시·일용직 등 불안정한 고용계층일수록 반복적 업무를 수행하는데, 코로나19의 영향이 이들 계층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로봇을 가진 자본가의 이윤이 급증하고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하는 소득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면서 “기술에서 동떨어진 사람들의 불평등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확인이 됐고, 그것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일 대표도 “소득 격차가 커질수록 하위 10%의 불행감과 박탈감은 더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응답자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의식한 듯 기본소득 도입 필요성에 대해 77.2%가 매우 또는 대체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정부의 취업정책에 대해서도 “일자리 유연성을 키우고, 대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응답(81.4%)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법무법인 케이앤파트너스 전별 변호사(노동법 박사)는 “가장 시급하게 사회안전망의 보호가 필요한 건 실업 문제”라면서 “일자리가 많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대체하는 것들이 현실적으로 안 보이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에 앞서 선별적인 복지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현수 연구위원은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본소득을 전 생애에 걸쳐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특정 몇 년에 걸쳐서 받거나 특정 세대가 됐을 때, 중장년층이 되었을 때 받고 노후를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영준 박사는 “노동시장 진입과 역량 축적, 평생 학습을 뒷받침하는 (사회안전망) 설계가 이뤄진다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사회보장시스템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그 공감대가 형성됐으니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우리에게 놓인 과제”라고 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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