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기아 타우너
1990년대 탄생한 대한민국의 경차는 30년에 가까운 역사 동안 발전을 거듭하며 하나의 세그먼트로서 정립되었다. 오늘날 경차는 그 보다 한 체급 위인 전통적인 소형 승용차들이 처절하게 몰락하는 와중에도 경차만을 위한 다양한 혜택과 저렴한 유지보수비용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또한 높은 접근성과 저렴한 유지비 덕분에 중고차 시장에서도 대접이 좋은 편이다.
대한민국의 경차는 '경승용차'와 '경상용차'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경상용차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 영민한 기동력과 단거리 소규모 화물 운송에 최적화된 구조로 '소상공인의 발'이라 불리며 생명을 이어 오고 있다. 경상용차는 일반적인 1톤급의 소형 상용차보다 현저히 저렴한 가격과 경차의 세제 상 혜택에서 오는 저렴한 유지보수비용, 작은 차체에서 오는 기동성과 취급상의 편리함이 특징이다. 대한민국의 경상용차는 도입 이래 지금까지 영세한 규모의 사업장을 중심으로 수요가 꾸준히 나타나고 있으며, 몇 차례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생계형 자동차'라는 명분으로 오는 2021년까지 생명이 연장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경상용차는 舊 대우국민차(現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다마스(Damas, 밴)와 라보(Labo, 트럭)가 있다. 다마스와 라보는 현재는 경쟁자도, 대체재도 없는, 국내 유일의 경상용차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라이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舊 아시아자동차(現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가 내놓은 경상용차 '타우너(Towner)'가 그 주인공이다.
경상용차 다마스의 유일한 대항마
舊 아시아자동차는 1999년 기아자동차에 완전히 흡수 합병되기까지 주로 대형 상용차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 왔다. 하지만 1991년 등장한 대우국민차의 다마스와 라보가 영세 상공업자를 중심으로 상당한 호응을 얻는 것을 지켜 본 아시아자동차는 경상용차의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마스와 라보가 등장한 이듬해인 1992년, 대한민국의 두 번째 경상용차 모델, 타우너 시리즈를 내놓았다.
아시아자동차의 타우너는 다마스와 라보가 그러했듯, 경상용차의 본고장인 일본 제조사의 모델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타우너는 일본에서 스즈키와 함께 경차 시장의 양대산맥을 이루고있는 다이하쓰공업(Daihatsu, 이하 다이하쓰)의 주력 경상용차, 하이제트(Hi-Jet)의 7세대 모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다이하쓰 하이제트는 다마스와 라보의 원형인 스즈키 에브리(밴)와 캐리(트럭)의 경쟁 모델로, 고향인 일본에서 경상용차의 앙대산맥을 이루는 모델이다.
차명인 타우너(TOWNER)는 마을을 의미하는 '타운'과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er을 더한 것으로, "도시 및 주요 지역에서 활동 중인 자영업자의 경제성과 실용성을 위한 상용차"를 의미한다. 아시아자동차는 출시 당시의 지면광고에서 "적재성, 안전성 및 편의성, 다용도성, 경제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800cc급 상용차의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타우너의 외형은 기본적으로 다이하쓰 하이제트 7세대 모델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전형적인 일본식 경밴/경트럭의 형태를 띈다. 길이는 3,613mm, 폭은 1,400mm이지만 높이는 무려 1,825mm에 이르렀다.
아시아자동차는 타우너의 외관 디자인에 자사만의 디테일을 반영했다. 그 중 하나가 헤드램프다. 원본인 하이제트가 헤드램프와 방향지시등이 분리된 형태의 헤드램프를 사용한 데 반해, 타우너는 헤드램프와 방향지시등이 일체형으로 된 헤드램프를 적용했다. 또한 1990년 등장한 기아자동차 뉴 베스타의 것을 닮은 둥글둥글한 스타일과 회색 테두리로 특징을 잡았다. 범퍼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하이제트의 것을 그대로 사용해 번호판이 측면에 붙어 있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으로는 전면부의 메인터넌스 패널을 들 수 있다. 타우너는 헤드램프 사이의 부위에 냉각수 점검을 할 수 있는 부위를 마련되어 있었다. 이 패널은 조수석측 헤드램프 근처에 위치한 홈을 키나 동전으로 돌려서 열 수 있었다.
내부는 다이하쓰 하이제트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편의장비는 당시 다마스에는 없는 몇 가지 장비들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수동식 선루프와 알로이 휠, 그리고 타코미터(회전계) 등이다. 이틀 편의사양은 대체로 승용 수요를 염두에 두었던 7인승 코치 모델에서 볼 수 있었다. 수동식 선루프는 원본인 다이하쓰 하이제트 밴 모델에도 존재하는 기능으로, 틸팅 기능만 가능했지만 동급에서 유일한 사양이었다. 알로이휠과 타코미터는 다분히 승용으로서의 용도를 의식한 것이었는데, 이는 당시 국내 레저용 자동차 시장이 봉고, 그레이스 등과 같은 1박스카 위주로 형성되기 시작한 데서 기인한다.
엔진은 다이하쓰가 수출용 모델에 사용하는 796cc(0.8리터) ED-10A 엔진을 탑재했다. 초기에는 가솔린 엔진과 LPG 사양이 공존하였으나, 기아자동차에 흡수된 이후로는 LPG 버전만 남게 되었다. 초기형부터 탑재된 ED-10A 가솔린 엔진은 실린더 당 2밸브의 SOHC 방식을 사용하는 엔진으로, 40마력/5,200rpm의 최고출력과 6.0kg.m/4,400rpm의 최대토크를 냈다. 후에 등장한 LPG 사양의 경우, 35마력/5,200rpm의 최고출력과 5.5kg.m/4,4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두 엔진은 모두 수동 5단 변속기와 조합되었으며, 뒷바퀴를 구동했다.
타우너는 다마스/라보의 유일한 대항마로 시장에서 주목 받았다. 또한 아시아자동차는 타우너를 출시한 첫 해,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배우 최진실을 CF모델로 기용해 눈길을 끌었다. 타우너는 2인승 화물 밴과 5인승 밴, 그리고 7인승 코치 모델로 출시되었으며, 트럭 모델은 밴 모델보다 조금 더 나중에 출시가 이루어졌다. 7인승 코치 모델의 경우, 2-2-3 배열의 좌석 구조를 가졌으며, 2열 좌석은 필요시 제거할 수도 있었다. 타우너는 출시 한 달 만에 다마스를 제치고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두 차종이 경쟁을 벌이면서 대한민국 경상용차 시장도 점차 확대되어, 이듬해에는 연간 4만대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94년도에는 기아자동차의 로고가 타원형으로 변경되면서, 타우너 또한 새롭게 변경된 타원형 아시아자동차 로고를 적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도에는 기아자동차의 이름으로 바꿔 달기 시작했다. 2000년도에는 약간의 부분변경을 통해 상품성을 높이는 한 편, 판매량이 저조한 가솔린 모델은 단종시키고 LPG 모델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02년,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여 콤비, 코스모스 등과 함께 단종을 맞았다.
타우너는 1992년부터 2002년의 10년간, 대우 다마스/라보의 독주를 막아설 수 있었던 유일한 경쟁차종이었다. 하지만 타우너는 생산 기간 내내 '다마스의 아류작'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상품 구성과 품질 면에서도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드러내어 갈수록 평가가 나빠지기도 했다. 타우너는 결국 다마스와 라보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타우너가 사라진 지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부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