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이 배석판사에 보고하랴?"..합의 수시로 깨는 '합의부 재판'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법농단, 법정의 기록(23)]
[경향신문] ㆍ합의부 재판의 현실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여러 공소사실 중 특이한 게 있다. 방창현 판사의 공소사실이다. 방 판사는 2015년 전주지방법원 행정2부 재판장으로 있을 때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이 낸 지위확인 소송을 심리했다. 검찰은 방 판사가 법원행정처 연락을 받고 배석판사와 ‘합의’ 없이 판결문을 법원행정처 입맛에 맞게 고쳤다면서 직권남용죄를 적용했다. 재판부 바깥 사법행정조직인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이 주된 쟁점인 사법농단 사건에서 재판부 안에서 발생한 재판권 침해가 문제 된 사례는 이것이 유일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진행되는 방 판사 재판에서 공개된 증거들, 증인신문 내용에서는 원칙과 어긋난 합의부 재판의 현실이 드러난다. 원칙에 따르자면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는 판사들의 합의로 판결해야 하고, 판결 선고는 판결 원본을 갖고 해야 한다. 법 어디에도 경력, 근무 연차에 따라 판사의 발언권을 차등해 부여한다거나 판결 선고 후 판결 내용을 고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선배 법관이라는 이유로, 업무가 과중하다는 이유 등으로 법에 없는 관행들은 종종 정당화돼왔다.
■ 재판부는 3명인데 2명만 합의
합의부는 형량이 높은 범죄 사건이나 청구 금액이 많은 소송을 심리한다. 지방법원의 합의부는 통상 15년 이상 경력의 부장판사(재판장) 1명과 그보다 경력이 적은 평판사(배석판사) 2명으로 구성된다. 법원조직법은 합의의 방법을 상세히 규정한다. 66조 1항은 “합의심판은 헌법 및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과반수로 정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은 판사 3명이 모두 합의에 참여하고, 이들은 동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해석된다. 그렇지 않으면 ‘과반수로 정한다’는 말이 성립할 수 없다.
현실은 어떨까. 방 판사가 재판장이던 전주지법 행정2부는 ‘2인 합의’를 했다. 재판장과 사건의 주심을 맡은 배석판사 1명만 합의하는 체제다. “3인이 함께 판결 주문 및 세부 토론을 거친 다음 합의하는 게 원칙이고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보면 대부분의 합의 재판부는 재판장과 주심, 2인이 토론을 거쳐서 핵심 쟁점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주심이 판결문 초고를 작성해 재판장에게 인계합니다. 재판장이 검토하면서 수정할 게 있으면 주심과 이야기해 선고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방 판사 측 변호인의 말이다.
통진당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
재판장으로 심리한 방창현 판사
법원행정처 입맛에 맞는 판결로
합의 없이 고친 혐의로 기소돼
‘재판부 내’ 일어난 재판권 침해
사법농단 사건 중 유일한 사례
통진당 사건의 주심이었던 임모 판사는 증인으로 나와 방 판사와 자신이 합의가 잘 안될 때는 다른 배석이었던 강모 판사에게 기록을 검토하게 한 뒤 의견을 들어 결정했고, 이를 부당하게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합의를 하다가 안돼서 방 부장님께서 (주심이 아닌) 강 판사에게 기록을 보고 의견을 말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가장 기록을 적게 본 비주심 의견에 따라 결론이 정해지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다음부터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부장님이 이건 재판 진행에 대한 것이라 ‘내가 결정한다’고 하셨습니다.”(임 판사) 임 판사는 전주지법 외의 법원에서도 ‘2인 합의’를 한 적은 있다면서도 “대부분은 3인 합의로 진행했다”고 했다.
■ 주심판사 모르게 바뀐 판결문
당시 사건 주심이었던 임모 판사
“판결문 수정하며 합의 없었고
어떤 변경 있는지 모른 채 선고”
방 판사는 검사 질문에 외려 반문
“읽어보고 서명 안 하면 되지 않나”
배석판사와 묵시적 합의 주장
발단은 법원행정처였다. 2015년 9월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이었던 심경 판사(현 변호사)가 방 판사에게 연락했다. 통진당 사건은 방 판사가 임 판사와 이미 판결 내용에 대한 합의를 하고, 그달 16일 1심 선고기일이 잡힌 상태였다. 심 전 판사는 증인으로 나와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요청을 받고 방 판사에게 연락했다고 증언했다. 심 전 판사는 “명시적으로,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텐데 법원행정처에서 검토한 자료가 있으니 필요하면 보내주겠다, (각하가 아니라) 본안 판단을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 정도의 이야기를 (방 판사에게) 한 것 같다”고 했다.
통진당 사건에서 법원행정처가 주목한 부분은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에 따라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의 지위가 자동 상실되는지, 법원이 상실 여부를 별도로 판단할 권한을 갖는지였다. 법원 위상을 높이려면 법원에 판단 권한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법원행정처 기조였다.
한 차례 선고가 연기된 후 2015년 11월24일 임 판사가 방 판사에게 판결문 초고를 보냈다. 초고에는 법원의 판단 권한에 대한 분명한 문구는 없었다.
민사소송법 206조는 “판결은 재판장이 판결 원본에 따라 주문을 읽어 선고한다”고 규정한다. 즉 판결문은 선고 전에 작성되는 게 원칙이고, 판결문이 완성되면 재판부 판사들이 모두 전자서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방 판사는 전자서명을 하지 않은 채로 11월25일 오전 통진당 사건의 판결을 선고했다. 판결 원본 없이 선고했지만 선고 조서에는 원본으로 선고했다고 기재됐다.
민사소송법에는 “판결은 선고로 효력이 생긴다”(205조)는 조항도 있다. 방 판사는 선고를 마친 뒤 판결문을 수정했다. 방 판사가 수정한 판결문에는 ‘삼권분립의 원칙상 헌재 결정으로 해산된 정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 및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의 퇴직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법원행정처 기조에 부합하는 내용이었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보고’ 문건에는 이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이 담겼다.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선언한 부분은 권력분립 원칙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헌재의 월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적절함. 향후 법관을 상대로 한 헌법교육 과정에서 활용하는 방안 검토”라는 대목이다.
방 판사는 고친 판결문을 임 판사에게 보냈고, 임 판사와 강 판사가 전자서명 후 법원 내부 시스템에 등록했다. 검찰은 방 판사가 법원행정처 연락이 온 사실을 임 판사에게 숨기고 합의도 없이 마음대로 법원행정처 기조에 맞게 판결문을 고친 게 직권남용죄라고 본다. 재판부의 업무처리를 감독하고 배석판사에 대한 평정의견을 낼 수 있는 합의부 부장판사의 직무권한을 방 판사가 남용해 임 판사의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재판권이란 ‘합의부 구성원으로서 합의에 참여해 의견을 낼 수 있는 권한’이라고 검찰은 정의한다.
■ “배석판사가 명시적·묵시적 합의”
임 판사는 평소엔 판결문 초고를 출력해 갖다주면 방 판사가 연필로 수정해줬지만, 통진당 사건은 이례적으로 판결문 파일을 넘겨받아 수정했다고 증언했다. 또 임 판사는 방 판사가 수정한 판결문 내용에 관해 합의를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만 자신이 항의를 안 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증인은 주문과 이유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확정됐는지, 초고에 어떤 실질적 변경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판결 선고 절차에 임하게 된 것입니까?”(검사)
“네. 그렇습니다.”(임 판사)
“판결 내용을 확정하고 그것을 기초로 선고했다면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아무런 피드백 없이 (방 판사가) 그대로 선고해버렸다면 실질적으로 판결 주문을 구성하는 논거는 전혀 합의하지 못한 것 아닌가요?”(검사)
“이 사건의 경우 논거를 (애초에) 합의한 것으로 기억되지 않기 때문에 (방 판사가 그대로 선고한 게) 제 의사에 반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장님께서 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제가 동의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임 판사)
방 판사는 검찰 조사 때 말했다. “저는 16년간 판사 생활을 하면서 원본 선고를 안 하는 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 특별히 주문이 바뀐 것도 아니니까 이유 구성은 (주심에게) 안 보여줘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가 고친 다음에 선고했습니다. 제가 거의 다 고쳤고, 재판장이 써서 배석판사에게 보고하는 꼴이 되는데 그것도 웃기잖아요.”
그래도 배석판사와 협의했어야 되지 않느냐는 검사 질문에 방 판사는 외려 반문했다. “서명할 때 (판결문을) 읽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의 제기하면 되지 않나요? 서명을 안 하면 되지, 그냥 서명하는 것은 판결 쓰는 기계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 본인들이 서명을 하고서 아무런 의견 개진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이의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배석판사들의 재판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배석판사와의 사이에 명시적·묵시적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방 판사는 법원행정처 영향으로 판결문을 수정한 것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임 판사의 초고가 ‘양도 적고 설득력도 약했다’고 판단해 독자적으로 고쳤다고 했다. 하지만 방 판사는 한 번 수정한 판결문을 또 수정했다. 이번엔 ‘비례대표 국회의원’ 문구가 빠졌다. 검찰은 헌재와 갈등이 커질까 우려한 법원행정처가 방 판사에게 해당 문구를 빼달라고 요구하고 방 판사가 응했다고 보고 있다.
방 판사 공소사실의 의미는 공교롭게도 재판개입 혐의를 받은 임성근 판사에 대한 1심 판결문에서 찾을 수 있다. 임 판사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판결문에 합의부와 법관 독립의 의미에 대해 적어놓았다. “부장판사가 재판업무에 관해 배석판사의 상관은 아니며, 합의부의 모든 구성원은 구체적 사건의 결론 도출에 동일한 임무와 책임을 갖는다. (…) 판결문 초고를 수정하는 것 또한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사이에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 뿐, 부장판사가 초고를 배석판사와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배석판사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재판부 내에서도 법관 독립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한 이 재판부는 정작 이런 이유로 임 판사가 재판개입을 할 수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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