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탐구생활]작동하지 않는 게 정상인 기계 '램 에어 터빈'

이영준 기계비평가 2020. 3. 3.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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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항공산업 종사자가 아니라면 항공기의 부품 중 램 에어 터빈(ram air turbine·사진)을 보거나 그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램 에어 터빈은 항공기의 동력계통이 작동하지 않는 비상상황에서만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항공기는 조종과 통신, 항법, 조명, 공기조화를 위해 전력을 필요로 한다. 항공기에서 쓰는 전력은 메인 엔진과 동체 끝에 보조동력장치(auxiliary power unit)에서 나온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기계는 언제든 고장이 나서 작동을 멈출 수 있다. 램 에어 터빈은 그때 최소한의 전력을 만들어내는 최후의 장치이다. 아주 간단한 장치인데, 평소에는 동체 속에 숨어 있다가 비상시가 되면 작은 프로펠러가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항공기의 엔진이 꺼져도 한동안은 활강을 하기 때문에 램 에어 터빈은 그때 나오는 맞바람을 이용하여 프로펠러를 돌리고, 그 회전은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램 에어라는 말은 앞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이라는 뜻이다. 이때 만드는 전기는 대단한 양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을 도울 뿐이다. 즉 조종과 항법, 통신을 위한 전기를 만들어 낸다. 보통 여객기의 경우는 50~70㎾를 낼 뿐이다. 그 정도면 업소용 대형 에어컨 석 대쯤 켤 수 있는 전력이다. 참고로 점보제트기가 정상적인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최대전력은 325㎾ 정도 된다.

램 에어 터빈을 크게 만들어서 평소와 같은 정상적인 전력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램 에어 터빈의 프로펠러를 너무 크게 만들면 공기의 저항이 커지고 그러면 항공기의 활강거리는 줄어들게 된다. 램 에어 터빈은 작기도 하고 동체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그 작동을 승객이 볼 일은 없지만 항공기를 살리는 최후의 수단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주 단순하게 생긴 프로펠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최후의 수단으로 쓸 기계장치는 더 이상 고장 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해야 하기 때문이다. 램 에어 터빈을 볼 일이 없는 비행이 행복한 비행이다.

이영준 기계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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