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예술·과학 꿰뚫는 '다빈치 코드'는 인체의 비례였다 [서양고전학자 김동훈의 물질인문학]
[경향신문] ㆍ다빈치의 ‘인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인체의 근육, 신경, 골격, 내장 기관 등을 아주 자세하고 꼼꼼하게 그렸다.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자 해부학은 빠른 진전을 보였고 의학자, 예술가, 철학자, 문학가를 막론한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호기심을 상당 부분 채워주었다. 해부학은 르네상스의 예술, 건축, 철학을 인간중심주의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수십종의 ‘비트루비우스 인체도’를 낳게 했다. 그것들 중에는 다빈치가 그린 ‘비트루비우스 인체도’가 있다.
■ 인간은 ‘소우주(Mikrocosmos, minor mundus)’다
고대부터 우주, 건축, 사원 등은 신체 일부로 비유되었다. 산의 각 부분이 산허리, 산머리, 산등이라 불릴 때라든지, 자동차의 특정 부분이 핸들이니 페달이라 일컬어지고, 의자의 각 부분이 등받이, 팔걸이, 다리 등으로 칭해질 때도 신체의 특정 부분이 호명된다. 집단의 지도자가 ‘우두머리’이고, 그의 최측근이 ‘오른팔’ ‘왼팔’로 호칭되는 것도 같은 예이다. 그러니까 신체가 이해되는 방식으로 온갖 사물이 인식되었다는 증거가 무심코 내뱉는 언어 습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17세기에 토머스 홉스(1588~1679)가 보여주었듯이 국가도 신체와의 상응관계로 이해된다.
또한 신체 구조가 우주 구조까지 반영한다는 사실은 원과 정사각형 안에 사람을 그려 넣는 전통 속에서 나타난다. 1300년경에 제작된 ‘램버스 궁 세계지도’를 보면 원과 정사각형 안에 한 사람이 들어가 있다. 원은 천체를 상징하고 정사각형은 지구를 상징하는데, 이 지도는 하늘과 땅을 포함한 우주를 인간이 반영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생각을 ‘인간 소우주론’이라 하는데 수세기 동안 유럽의 종교, 과학, 미술사상을 주도하면서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마디로 르네상스의 인간관은 고대부터 있었던 ‘인간 소우주론’의 확장 버전이다.
특히 르네상스의 장인들은 도제 관계에 있었던 견습생들에게 ‘인간 소우주론’을 익히도록 했다. 이들은 주문에 따라 다량의 예술품을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들 기술과 거의 맞먹는 도제들이 필요했고 자신들 지시에 따라 정확하게 작업을 하도록 그들을 교육해야 했다. 열네 살의 다빈치도 견습생으로 지냈던 공방에서 ‘인간 소우주론’을 배웠다. 다빈치가 배운 첸니노 첸니니(1370경~1440경)의 <예술서>에 따르면, 얼굴은 삼등분되어야 하며, 신장은 두 팔을 옆으로 뻗은 길이만큼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상적 인체 비례”를 설명했다. 이것은 약 1500년 전 비트루비우스가 말했던 인체 비례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피렌체 공방들에서 세대를 거듭해 인체 비례로 작업을 해왔던 것처럼 도제 생활을 하던 다빈치도 ‘인간 소우주론’에 입각한 인체 비례를 익히고 있었다.
■ 화가는 인체 우주를 관찰하는 천문학자다
견습생이었던 다빈치가 큰 영향을 받은 또 다른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1404~1472). 그는 ‘인간 소우주론’에 매력을 느낀 철학자이자 건축가로 인체 탐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가가 인체의 형태를 탐구하는 동안, 철인이 별만 보고 안 것을 전부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달았다.(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모무스>)』
다빈치, ‘인간 신체구조가 우주 구조 반영한다’는 인간 소우주론 탐구
머리 크기 등 68가지의 신체 치수 기록한 알베르티 ‘인체지도’에도 영향받아
알베르티는 몸 어느 부분이든 탐구한 결과를 수치로 남기길 원했다. 그래서 인체를 높이, 너비, 깊이의 삼차원 좌표로 기록한 ‘인체 지도’를 제작했다. 또한 이 좌표를 측정하는 장치 ‘피니토리움’을 만들어 신장과 벌린 팔의 길이, 머리 크기와 각 부분 등 68개의 신체 치수를 기록해 ‘인체 지도’를 만들었다. 이것을 통해 르네상스 화가들은 이상적인 신체 비율을 간편하게 알 수 있었다.
다빈치는 견습생 시기부터 알베르티의 ‘인체 지도’를 보았으며 본인도 그와 같은 책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는 점토 조각상에서 얻은 특정 신체의 치수들을 대리석상에 옮기는 방법으로 ‘인체 지도’를 활용하기도 했다. 다빈치는 비례와 관련된 인체의 신비를 철저히 밝힐 수만 있다면 세상 만물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인체의 비례와 그 원리는 단순히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빈치가 보기에 육체는 철선과 도르래, 톱니바퀴와 지렛대로 이루어지고 온갖 역학적 방법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기계(machina)였다. 마찬가지로 기계도 역시 인체의 원리와 분리된 도구가 아니었다. 기계의 각 부분이 특정한 비율로 결합되어 작동된다면 인간처럼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신체였다. 그래서 다빈치는 인체를 세심하게 탐구할 때 기계의 작동원리를 터득할 것으로 기대했다. 결국 지리학, 수학, 기하학 등 그 모든 학문들 속에는 일종의 비례 관계가 있었고, 그 원리를 깨우치는 열쇠가 비트루비우스의 인체에 있다고 생각했다.
■ 모든 예술과 법칙은 인체에서 나온다!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가 살았던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공사가 진행되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기원후 14)가 로마를 새롭게 재건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제국의 수도 로마를 완벽한 도시로 만들고자 비트루비우스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비트루비우스는 인간의 몸은 세계의 축소판이자 소우주라는 고대 사상으로 건축학 개념을 집대성했다. 이를테면 도시의 수맥과 상하수도는 인간의 피, 젖, 땀, 소변, 눈물 등의 다양한 체액에, 도시의 암석과 나무는 인체의 뼈에, 정원과 거리의 식물들은 머리카락과 손발톱에 비유하는 식이었다. 그의 이런 개념을 담은 <건축에 대하여> 열 권은 15세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필사돼 전해졌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원본 그림들이 소실되어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빈치는 서른다섯 살(1487)부터 인체와 인체 비례를 엄밀히 연구하면서 해부학과 건축학을 연결시키고 있었다. 그는 조화를 만들어내는 비례의 모든 암호가 육체에 담겨 있다고 깨달았다. “모든 예술과 모든 법칙은 훌륭한 구도와 비례를 갖춘 인체에서 나온다.” 화가였던 그가 밀라노에서 도시설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런 깨달음 덕이었다. 다빈치는 단지 도시설계를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과 자연, 우주에 이르는 기본원리를 도시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 다빈치는 우선 동물 해부학을 시작했고 거기서 모든 운동과 생명의 근원이 척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2년 뒤 그는 인체 해부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두개골에 매달리게 되었다. 아직까지 스콜라주의의 영향을 받은 대학에서 신체와 영혼을 구분한 채 몇 백년 동안 공허한 주장만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다빈치는 “영혼의 판단이란 신체의 감각이 서로 만나는 부분에 자리 잡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체 해부를 통해 작동 원리뿐만 아니라 영혼의 원리도 알아낸 것이다.
비례와 관련된 인체의 신비 밝히면 세상 만물 알 수 있다 확신
다빈치, 비트루비우스가 쓴 ‘건축에 대하여’ 토대로 1492년 인체도 완성
이런 상황에서 1492년 다빈치는 건축학자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 마르티니(1439~1501)에게 자극을 받아 그동안 미뤄왔던 ‘인체도’를 드디어 완성했다. 프란체스코는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126개의 인체도를 그렸다. 그 이론의 핵심은 원과 정삼각형과 같은 하나의 기하학 도형에서부터 전체 도시들에까지 인체의 비례가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프란체스코는 “교회(바실리카)는 (그리스도) 몸의 비례와 형상을 갖고 있다” “소우주라 불리는 인간은 그 안에 대우주의 완벽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등의 인간관을 중심으로 ‘인체도’를 그린 인물이었다.
다빈치는 프란체스코처럼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에 대하여>의 설명을 토대로 벌거벗은 한 남자를 원과 정사각형 안에 놓았다. 원에 내접하는 인체는 양팔을 머리 높이로 뻗어 올리고 양다리는 두 어깨 너비로 벌렸는데 그 중심점은 배꼽이 되었다. 반면 정사각형에 내접하려면 이번엔 양팔을 어깨높이로 벌리고 다리는 가지런히 모아야 했다. 이때 중심점은 생식기 부분이 된다. 원과 정사각형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것은 천체와 지구의 중심이 인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천-지-인’에 대한 고대의 깨달음이 비트루비우스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 다빈치를 통해 인체도로 구현된 것이다.
■ 너 자신을 알라
일부 연구가들 “인체도의 남성, 다빈치 자화상” 주장
주장 맞다면 다빈치는 자신의 비례 중심으로 온 세상 이해하려 시도한 것
일부 연구가들은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체도’가 다빈치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벌거벗고 있는 자신의 신체를 천체와 지구의 상징인 원과 정사각형의 중심에 위치시켰다.
연구가들 주장이 맞다면, 다빈치는 자신의 신체 비례를 중심으로 온 세상을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결국 다빈치에게 자신을 아는 것은 곧 우주를 이해하는 길이었다.
다빈치의 인체도를 자화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르네상스 공학의 거장이었던 마리아노 디 야코포(1381~1455경)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그는 비트루비우스식 인체도를 그려놓고 그 아래에 소크라테스가 한 말, “너 자신을 알라”를 약간 변형해서 “자신을 아는 사람은 온갖 것을 안다”고 했다. 추측컨대 다빈치도 이런 의미 때문에 자신을 모델로 삼아 인체도를 제작했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너 자신을 알라”는 육체가 배제된 영혼이나 이성 차원의 자기인식이 아니었다. 자신의 육체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탐구하면서 거기서 얻은 깨달음으로 사물과 세상을 꿰뚫어 보는 것이 곧 자기인식이었다.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고대에는 흙과 인간의 몸은 하나로 이해되었다. 그 시대가 끝나자 흙과 몸은 분리된 듯했지만, 르네상스인들은 살아 있는 자신의 몸을 관찰하면서 흙을 비롯한 모든 물질을 신체와 관련시켰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사이보그,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많은 논점은 결국 우리 신체가 사물이 되고, 사물은 육체가 된다는 말로 요약된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인간을 닮기 위해 맹렬히 추격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생체 안에는 최신식 보강물들이 이식되고 있다. 이제 육체라는 물질을 통해 과학, 철학, 예술, 문학, 종교가 모아지는 그 방식으로 인간과 물질의 경계를 넘어 우주까지 확장되는 시대가 또다시 열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자기 몸의 구석구석을 잘 알지 못한다. 설령 건강에 관심이 있다 해도 헬스 기구나 정해진 운동 코스에만 신경을 쓰거나 다른 사람의 멋진 몸매를 눈요기할 뿐이다. 자신의 육체를 깊은 곳까지 샅샅이 알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방식과 기준을 따라 하느라 욕구불만은 커져만 간다. 마치 알지도 못한 사이 최첨단 수술 도구를 배안에 넣은 채 봉합한 후 그 녹슨 쇠붙이로 고통스러워하듯 아무리 좋은 처방과 보철물들이라도 자신의 몸에 맞지 않으면 살갗 속에서 썩어 들어갈 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도’의 그 남자는 타인이 아니었다. 다빈치가 마흔 살이 되어 원과 정사각형 정중앙에 자신을 놓았듯이, 우리는 이제 조용히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자기인식 없이는 아무리 좋은 것들도 부작용을 초래한다. 거기서 인간과 물질의 경계를 아우르는 그 신비한 비율을 탐구하자.
김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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