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부터 코로나까지 .. 전염병 시대를 그린 영화들
[시네마&] 역사 속에서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병은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가난한 자와 부자를 가리지 않고 퍼지고 사회 시스템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대혼란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 본성이 많은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대중문화 활동이 위축된 지금, 전염병을 다룬 영화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작 '컨테이젼'과 2013년작 '감기'의 IPTV 이용 순위는 각각 4위, 6위까지 올랐다. 극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설 방문을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영화를 보는 행위가 온라인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오래전 영화가 역주행하는 이유다. 코로나 사태가 잦아들기를 바라면서 외출을 자제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이를 모티프로 한 영화들을 모아봤다.

콜레라는 기원 전부터 존재한 질병이지만 대유행은 1817년 인도에서 시작됐다. 1860년까지 인도 대륙에서 콜레라로 인한 추정 사망자는 1500만명에 달한다. 1820년대엔 동아시아로 번졌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백성 150만명 이상이 콜레라로 사망했다. 1830년대엔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산됐다. 유럽에선 1854년 영국 런던에서 의사 존 스노가 오염된 물이 문제라는 것을 밝혀낸 뒤 1884년 독일 생물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콜레라균을 규명하면서 진정됐지만 그 외 지역에선 20세기까지도 수시로 확산이 계속됐다.
콜레라 유행이 워낙 오랫동안 지속된 탓에 이 시대를 묘사한 작품 속엔 콜레라가 일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콜롬비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국 마이크 뉴얼 감독의 영화 '콜레라 시대의 사랑'(2007)은 188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콜레라가 창궐한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한다. 한 여자를 무려 51년9개월 동안 기다린 가난한 남자의 순애보 혹은 순애보를 가장한 용의주도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콜레라는 콜롬비아 사회의 전근대성을 상징한다. 남자가 평생 사랑한 여자와 결혼한 부유한 의사 우르비노는 콜레라 퇴치와 공중보건 확립을 추진하는 매우 이성적인 인물인데 직관을 따르는 주인공과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다. 전염병보다는 사랑을 테마로 한 작품이지만 박멸되지 않는 콜레라에 대한 두려움이 일상이었던 당시 시대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괴질은 결코 요괴의 장난이 아닙니다. 섣부른 미신에 빠지지들 마십시오. 물은 반드시 끓여먹을 것이며 가래침과 대변은 반드시 파묻으시고 가싯물을 함부로 버리지 말 것이며 찬밥과 새 밥을 섞지 말고 흘린 밥일랑 주워 먹지 마시고 누구에게든지 먹던 밥이나 헌 반찬을 대접하지 마시고 밥을 지을 때 지성으로 씻으시오. 그리고 몸을 자주 닦으시오."
발열과 함께 설사와 구토를 동반하는 콜레라의 원인이 물에 있음이 밝혀지면서 콜레라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공중위생이 확립되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당시 사람들 사이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에 대한 공포도 늘어갔다.


1918년 5월 처음 발견된 이래 1년 동안 전 세계에서 6억명 이상을 감염시키고 최대 1억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은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도 780만명이 감염돼 14만명이 사망했다.
명칭이 '스페인 독감'이어서 스페인에서 유래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유럽에 파병하기 위해 징집된 미군 부대 혹은 프랑스에 주둔한 영국군 부대가 근원지로 유력하게 꼽힌다.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당시 제1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유럽 국가들이 언론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 언론이 독감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일본 뇌염, 홍콩 독감 등 국가명이 들어간 다른 전염병에 비해 스페인은 억울할 수 있겠다).
스페인 독감은 유독 젊은 층에게 치명적이었고 폐렴을 유발했다. 처음엔 원인이 세균이라고 여겨졌으나 나중에 바이러스가 원인임이 밝혀졌다. 2005년엔 한 연구진이 스페인 독감이 조류독감과 같은 유형의 인플루엔자임을 규명했다.
스페인 독감 창궐은 제1차 세계대전 종식 계기가 됐고 전쟁이 끝나면서 잠잠해졌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이후에도 살아남아 1968년 홍콩 독감, 200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21세기 첫 팬데믹으로 선언한 신종플루(돼지독감), 2013년 조류인플루엔자 등으로 변형돼 계속되고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미니시리즈로 만든 '더 스탠드'(1984)는 스페인 독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드라마는 정부의 비밀 연구시설에서 생화학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슈퍼플루'가 연구실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전 세계 인구의 99%가 사라진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아침에는 이상이 없었던 사람들이 밤에 사망하는 등 증세는 급격하게 악화돼 드라마는 초반부터 관객을 공포의 한복판으로 몰아넣는다.

1974년 수단에서 처음 보고된 이래 잠잠하던 이 바이러스는 1995년 봄 아프리카 콩고를 시작으로 인근 가봉, 자이르 등으로 번지면서 인류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콩고 에볼라강 유역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에볼라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2013년에도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에서 재발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75%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로 감염되면 피부가 벗겨지고 급성 출혈을 동반한다. 이 때문에 에볼라 바이러스를 모티프로 한 영화들은 그 끔찍한 증상을 과장한 경우가 많다.
볼프강 페테젠 감독의 영화 '아웃브레이크'(1995)는 에볼라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치사율 100% 바이러스가 아프리카에 창궐한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자이르 오지에서 에볼라보다 더 빠르게 번지는 모타바 바이러스로 인해 주민이 몰살당한 마을을 발견한다. 이곳의 원숭이 한 마리가 실험용으로 미국으로 오게 되고 여기서 바이러스가 인플루엔자처럼 변이돼 인간에게 전염되기 시작한다. 공기 중 감염되는 이 바이러스는 극장에서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영화가 크게 흥행한 뒤 실제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분노 바이러스처럼 변형돼 급격하게 퍼질 수 있는지에 대해 감염병 전문가가 연구한 적 있었는데 결론은 불가능하다는 쪽이었다. 영화 속 분노 바이러스는 감염된 지 20초 만에 증상이 나타나는데 만약 이 정도로 곧바로 증상이 나타난다면 즉시 격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무증상 잠복기가 길고 치사율이 낮아 숙주에 오래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오히려 확산이 빠르다.

사스(SARS)는 코로나19 이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2002년 11월 중국에서 발병해 유럽과 북미 등으로 번졌다. 치사율 10%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 32개국에서 8만3000명이 감염됐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캐나다에서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사스는 보건위생 개념이 안착된 현대사회에서 한 지역의 전염병이 전 세계로 확산된 첫 사례여서 공포감이 컸다.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며 전파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한동안 금융시장을 마비시킬 정도로 경제적 충격도 컸다. 지금 사스보다 1000배 더 전염력이 강력하고 사회와 경제 시스템을 전방위적으로 마비시키고 있는 코로나19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마르케스의 소설 제목을 차용하자면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영화 '괴물'에서 한강에 사는 돌연변이 괴물은 새로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데 동물을 통해 인간에게 전염된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바이러스 전염에 극도로 민감해져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고 조금만 증상이 나타나도 서로를 의심한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 일상이 된 모습이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 '감기'에선 호흡기로 감염되는 치명적 바이러스가 퍼지자 도시가 봉쇄되고 사면초가에 몰린 사람들은 살아남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기적인 사람, 이타적인 사람 등 대재난 속에서 인간 군상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많은 영화들이 전염병의 원인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굳이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공포 심리를 더 자극하는 것이다.
전염병 영화들 중 IMDB 평점 1위인 테리 길리엄 감독의 SF영화 '12 몽키즈'(1995)도 마찬가지다.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 99%가 죽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지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2035년 미래 사회가 배경이다. 이들은 백신 개발도 포기한 상태인데 최후의 수단은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서 바이러스 창궐을 막는 것이다. 영화는 바이러스보다 종교적인 은유, 시간여행, 인간의 악한 본성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군가 미지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시작하는 좀비 영화 역시 전염병 영화와 같은 맥락에 있다. 좀비 영화의 출발점인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도 시작은 미지의 바이러스였다. 좀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질병에 대한 현대인의 공포를 상징하는 존재다. 가족, 친구 등 누구나 좀비로 돌변할 수 있다는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모든 좀비 영화의 스토리에 내재돼 있다. 현대사회 급증하는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B급 문화 취급받던 좀비를 대중문화의 주류로 만들었다.


조시 맬러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수사네 비르 감독의 '버드박스'(2018)는 '눈먼 자들의 도시'와 '해프닝'을 합친 듯한 영화다.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게 되면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설정이다. 곳곳에서 집단자살이 이뤄지는 가운데 주인공은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난다. 이 영화 속 인물들에겐 마스크보다 안대가 더 중요한 방역 도구였다.

[양유창 기자 sanit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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