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타임머신 ②] 첼시를 들어올린 '작은 거인', 졸라

조영훈 2020. 4. 2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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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타임머신 ②] 첼시를 들어올린 '작은 거인', 졸라

(베스트 일레븐)

코로나19바이러스로 세계의 축구 시계가 멈춰 섰다. <베스트 일레븐(b11)>이 축구가 고픈 이들을 위해 새로운 연재물을 준비했다. 해외 클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레전드들을 소개하는 기획, 이름 하여 <레전드 타임머신>이다. 매주 화·목요일에 연재되는 <레전드 타임머신>을 통해 클럽을 이끌고 지탱해 온 여러 전설들의 이야기를 만끽하시라. 두 번째 주자는 현재와 달리 중소 클럽에 불과했던 첼시를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지안프랑코 졸라다. / 편집자 주


히스토리(‘He’Story)

이탈리아 출신 졸라의 시작은 미약했다. 1984년 이탈리아 세리에 C2(4부) 소속 누오레세에서 데뷔했다. 데뷔 첫 시즌에는 네 경기에 출장하며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팀은 세리에 D(5부)로 강등됐다. 세리에 C2 소속 팀 사사리 토레스는 졸라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냉큼 영입했다. 이적 후 30경기 여덟 골을 기록한 졸라는 팀의 세리에 C1 승격을 이끌고 두 시즌 동안 활약했다. 어느덧 23세가 된 졸라에게 하부 리그는 작은 연못이었다. 마침 디에고 마라도나의 활약으로 전성기를 내달리던 SSC 나폴리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졸라는 나폴리에서 네 시즌 동안 활약하고, 1993-1994시즌 신흥 강호 파르마로 향해 세 시즌 반 동안 활약했다.

1996년 어느덧 서른 줄에 접어든 졸라 인생에 큰 변곡점이 찾아왔다. 유로 1996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한 졸라는 이 대회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소속팀 파르마에서도 경기력 부침을 겪었다. 고민하던 그에게 루드 굴리트 당시 첼시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1996-1997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첼시행을 택한 졸라의 나이는 30세.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지금 첼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넘어 전 유럽에서 손꼽히는 강호지만, 당시에는 지금의 크리스탈 팰리스 정도 위상을 가진 별 볼 일 없는 팀이었다.

그러나 졸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첼시 공격의 선봉장이 됐다. EPL 데뷔 시즌부터 30경기에서 12골을 터트리는 기염을 토했다. 덩달아 첼시도 함께 상승세를 탔다. 직전 시즌 11위로 시즌을 마쳤던 팀은 리그 6위까지 올랐고, FA컵 우승 트로피까지 차지하는 경사를 누렸다. 졸라는 이 활약으로 1996-1997시즌 종료 후 축구 기자단 선정 EPL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했다. 이는 겨울 이적 시장에 합류한 선수로는 최초였다. 졸라는 36세까지 일곱 시즌 동안 첼시에서 활약하며 311경기에서 80골을 넣었다. UEFA 컵위너스컵 1회, FA컵 2회 등을 차지하며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을 강호의 반열에 올려놨다.


왜 최고인가

졸라는 득점에 집중하는 골잡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빼어난 기술과 드리블·패스·슛을 모두 갖춘 판타지스타에 가까웠다. 졸라의 영입으로 첼시는 기술에 있어서만큼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덩달아 팀 순위도 크게 뛰었다. 1992-1993시즌부터 졸라 영입 이전 네 시즌까지 중하위권(11위·14위·11위·11위)에 머무르던 첼시는 1996-1997시즌 6위를 기록하기 시작하며 가파르게 순위가 올랐다. 졸라가 몸담았던 일곱 시즌 동안 첼시는 단 한 번도 6위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이때 다져놓은 기틀은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인수 이후 첼시가 세계 유수의 클럽으로 올라가는 발판이 됐다.

졸라는 첼시의 전설이 됐다. 뛰어난 드리블과 테크닉을 살려 상대 수비를 농락하기 일쑤였고, 키핑 능력도 탁월해 여간해서는 그의 공을 빼앗을 수 없었다. 양발을 모두 사용하며, 중거리 슛으로 상대 골문을 직접 타격할 줄 알았다. 넓은 시야를 살려 동료를 활용하는 플레이도 훌륭했으며, 나폴리 시절 마라도나에게 배운 프리킥을 잘 활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훌륭했던 점은 바로 그의 성격이었다. 스타 반열에 올랐는데도, 소박하고 성실한 성품으로 선수들의 모범이 됐다. 이 성격은 그가 30대 후반까지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던 비결이었다. 첼시는 졸라 이후 어떤 선수에게도 그가 달았던 25번을 배정하지 않으며 결번으로 남겨두고 있다.


영광의 순간

졸라의 영광의 순간은 팀이 리그 컵 우승과 UEFA 컵위너스컵 우승을 동시에 차지한 1997-1998시즌, 48경기 15골을 터트리며 첼시 올해의 선수에 등극한 1998-1999시즌, 그리고 36세의 나이로 두 번째 첼시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첼시에서의 마지막 2002-2003시즌으로 추려진다. 첼시 이적 다음 시즌인 1997-1998시즌, 졸라는 UEFA 컵위너스컵 우승을 손수 이끌었다. 컵위너스컵은 1998-1999시즌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대회로, 유럽 32개국 컵 대회(잉글랜드 FA컵, 스페인 국왕컵 등) 우승팀이 참가하는, UCL 버금가는 대회였다. 졸라는 이 대회에서 총 네 골을 넣었는데, 특히 슈투트가르트와 결승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는 첼시가 27년 만에 거둔 유럽 대항전 우승이었다.

1998-1999시즌은 팀보다는 개인 차원에서 빛난 시즌이었다. 졸라는 48경기에 출장, 15골을 넣으며 팀 내 최다 득점자로 올라섰다. 첼시 올해의 선수상은 덤이었다. 직전 시즌에 비해 화려하지 않았을 뿐 팀도 훌륭한 성적을 거뒀는데, EPL 3위와 UEFA 슈퍼컵 우승 트로피를 동시에 차지했다. 특히, 슈퍼컵에서는 당대 최강이던 레알 마드리드를 1-0으로 꺾으며 우승했다. 첼시에서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2-2003시즌에도 졸라는 ‘졸라다운’ 활약을 펼쳤다. 36세 노장이 됐는데도, 46경기 16골을 넣으며 다시 한번 팀 내 최다 득점자와 첼시 올해의 선수상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했다. 레전드라는 호칭에 걸맞은 마지막 불꽃이었다.


영혼의 파트너

졸라가 첼시에서 뛰는 일곱 시즌 동안 그의 짝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만큼 당시 첼시는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졸라가 첼시에 당도했을 때는 마크 휴즈와 지안루카 비알리가 있었고, 2000-2001시즌을 앞두고 아직까지 전설로 회자하는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와 아이두르 구드욘센도 영입됐다. 그런데도, 졸라와 함께 합을 맞춘 최고의 단짝은 이들 모두 아닌 노르웨이 출신의 토레 안드레 플로였다. 한국 팬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플로는 졸라와 함께 단 세 시즌을 뛰었지만, 환상적 호흡을 자랑했다.

졸라가 피치 위를 드리블과 기술로 휘젓는 동안, 193㎝의 큰 키를 갖춘 정통 스트라이커 플로가 골을 노렸다. 전형적 ‘빅 앤 스몰’ 조합이었다. 플로는 마치 올레 군나르 솔샤르 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처럼 슈퍼 서브로 활약했는데, 첼시에서 163경기에 출전해 80골을 터트렸다. 졸라-플로 조합은 첼시가 1998-1999시즌 UEFA 컵위너스컵 4강과 1999-2000시즌 UCL 8강에 오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제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졸라였어도, 빼어난 실력을 지원해 줄 확실한 득점원 플로가 있었던 덕분에 마음껏 활개 칠 수 있었다.


글=조영훈 수습 기자(younghcho@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래픽=박꽃송이·김주희(www.bestelev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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