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타임머신 ⓸ 1986년] 이흥실이 이끈 포항제철의 첫번째 봄
(베스트 일레븐)
한창 뜨거워야 할 피치가 아직 차갑게 식어 있다. 코로나19가 이 땅의 모든 축구를 식힌 탓이다. 덩달아 우리들의 가슴도 달궈지지 않아 서늘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언제고 다시 뜨거워질 K리그를 기다리며, 과거 <베스트 일레븐(월간 축구)>이 전한 기사와 함께 지난 37번의 시즌을 돌아봤다. 큰 이슈부터 작은 기록까지 가능하면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당시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잡지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겼다. 아직 숨죽이고 있는 K리그를 기다리는 데 ‘K리그 타임머신’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싶다. / 편집자 주

수퍼리그(축구대제전 수퍼리그)라는 이름으로 지난 두 시즌 동안 운영되어 왔던 프로 축구는 1986년 다시 한 번 탈바꿈에 나선다. 수퍼리그라는 이름을 떼고 그냥 축구대제전으로 시작되었다. 운영 방식은 또 한 번 달라졌다. 이번에는 춘계와 추계로 리그를 나눴고, 마지막에 챔피언 결정전을 도입했다. 2년 전 방식(전후기 리그 + 챔피언 결정전)과 사실상 같은 포맷이었다.
86 축구대제전은 1986년 3월 2일 경주 공설운동장에서 선수 대표 럭키금성 박항서의 선서를 시작으로 개막을 알렸다. 지난해보다 40여 일이나 앞당긴 축구대제전의 첫 지방 개최였다. 이 때문인지 규모나 팬 관심도는 전보다 떨어졌다. 참가 팀 숫자는 직전 두 해보다 두 팀이 줄어들었다. 유공 코끼리, 대우 로얄즈, 현대 호랑이, 럭키금성 황소, 포항제철 돌고래까지 다섯 프로 팀과, 1개 아마추어 팀(한일은행)이 참가했다. 상무 불사조와 할렐루야 독수리는 이번 시즌엔 제외됐다.
지난 시즌과 또 다른 점은 경기 수였다. 참가 팀이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생긴 변화였는데, 24경기나 줄은 60경기만을 소화했다. 대신 지난해 수퍼리그가 끝난 뒤 10월 3일부터 11월 9일까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더블리그로 거행됐던 프로축구선수권대회가 다섯 팀이 총 40경기를 치르는 식으로 열렸기 때문에, 리그 팀들이 한 시즌 소화했던 경기 수는 100경기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금년 역시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 일정 때문에 국가대표 선수들이 소속 팀에서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를 두고 <월간 축구> 1986년 창간 16주년 기념호는 “팬들의 기대를 흡족 시키기에는 어려운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화려한 맛은 줄고 여건은 나빠졌지만 참가 구단들은 개막 분위기에 젖어들 만한 여유가 없다는 듯 개막전부터 열전을 펼침으로써 프로 경기에 목말라했던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키기 충분했다.


4월 20일 강원도 삼척 경기를 끝으로 막을 내린 전기 리그는 여섯 팀이 전국 10개 지방 도시를 순회하며 모두 30경기를 소화하는 일정이었다. 전기 리그 우승 팀은 포항제철이었다. 3승 6무 1패 승점 12를 기록해 ‘디펜딩 챔피언’ 럭키금성(3승 5무 2패, 승점 11)을 간신히 따돌렸다. 대우(4승 2무 4패, 승점 10)부터 현대(2승 4무 4패, 승점 8)까지 네 팀의 승점 차도 2점에 불과할 정도로 팀 간 전력 차가 굉장히 적었다.
5월부터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가 개막됐지만, 아시안게임 관계로 다섯 개 대도시 구장을 사용할 수 없어 지방 순회를 다녀야 되는 것에서부터 3류 지방 대회로 전락했다. 국민의 관심은 월드컵에 집중되었던 터라, 이 대회는 프로 팀 끼리만 묶인 대회라는 점에서 축구대제전보다 더 수준 높을 것이란 당초 전망과 달리, 신인들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월간 축구> 1986년 6월 호는 “선두와 하위 그룹 판도만 뒤바뀌고 신인들 활약이 두드러질 뿐 전체적 경기 내용에서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 시즌의 챔피언은 11월 말에 결정됐다. 전기 리그 우승 팀 포항제철과 후기 리그 우승 팀 럭키금성이 11월 22일과 23일 양일 간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2연전을 펼쳤다. 야구도 아니고 이틀을 연이어 경기한 것이 이색적이다. 어쨌든 이 승부에서 최순호를 내세운 포항제철은 럭키금성을 1승 1무로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포항은 후기 리그에서 다쳐 경기에 못 나온 최순호·박경훈·강태식·이흥실을 전격 기용했고, 전반 21분 오버래핑의 명수 박경훈이 이흥실의 스루 패스를 받아 대각 슛으로 득점하며 1차전을 잡았다.
포항제철은 2차전에선 럭키금성의 거센 반격에 시달렸지만, 돌파력이 뛰어난 조긍연을 전방에 비치하면서 럭키금성의 전진 수비를 막고 역습을 노렸다. 이 전력은 제대로 먹히며 전반 20분 외국인 선수 호샤의 선제 득점으로 앞서 나갔다. 럭키금성은 총력을 다 해 반격을 폈고, 이영진이 머리로 동점골을 넣었지만, 추가 득점에 실패하며 합계 전적 1무 1패로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이 시즌 최우수선수는 지난해 신인왕을 받은 이흥실이었다. 지난해 한양대 졸업 후 입단한 포항제철에서 10골을 터트려 득점 3위에 올랐고, 포항제철 선수 중 유일하게 베스트 11에 올랐던 이흥실은 데뷔 2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등극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17경기에 나서 5골을 넣어 득점 5위를 기록했고, 두 골이 결승 득점일 만큼 기회에 강했다는 점도 최우수선수 선정 요인이었다.
득점왕은 극적 막판 뒤집기를 선보인 대우 정해원의 몫이었다. 정해원은 월드컵 대표팀에도 선발되지 못할 만큼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월드컵 멤버들이 합류한 후기리그에서 엄청난 득점력이 살아나면서 단숨에 득점왕을 차지했다.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한 게 크게 작용했다. 프로축구선수권대회에서 현대의 우승을 이끌면서 득점왕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던 함현기는 신인으로 리그 득점왕까지 노렸다. 그러나 정해원의 맹렬한 기세에 두 골 차로 뒤져 2위에 그쳤다.
리그 베스트 11으로는 최전방에 득점왕을 다툰 정해원과 함현기를 필두로 유공 김용세가 가세했다. 미드필드에는 이흥실이 2년 연속 베스트 미드필더를 꿰찬 가운데, 럭키금성 조민국, 한일은행 윤성효가 한 자리씩 꿰찼다. 수비에는 럭키금성 조영증, 현대 김평석과 최강희, 대우 박노봉이 자리했다. 골키퍼는 김현태가 2년 연속 베스트 GK에 올랐다.
한편, 이 시즌 개인상에서 주목할 또 다른 부분은 어시스트인데, 럭키금성 살림꾼 강득수는 여덟 개 도움 모두 후기리그에서만 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최고 도우미로 우뚝 섰다. 강득수의 활약에 힘입어 럭키금성은 후기리그 우승까지 내달렸다. 강등수는 “금년 시즌부터는 상대 선수의 견제가 심해 득점보다는 득점을 돕는 쪽을 택했습니다”라며 다소 무덤덤한 시상 소감을 밝혔다.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그래픽=박꽃송이(www.bestelev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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